촉견폐일설(蜀犬吠日說)

촉견폐일설(蜀犬吠日說)

세상에 전하기를, '평소에 촉나라의 남쪽은 항상 비가 많이 오는데, 개는 해를 보면 짖는다'고 하였다. 개는 해를 보고 짖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일상과 다름을 보고 짖는 것이다. 이 개는 촉나라에서 태어나고 촉나라에서 자라서 다만 촉나라의 하늘만 보았을 뿐이고, 촉나라 이외의 하늘은 보지 못해서 오직 촉나라의 하늘에는 항상 비가 있다는 것만 알고, 촉나라 밖에 늘 해가 있다는 것은 모른다.

그러니 비가 오는 것이 일상적이고 해가 떠 있는 것은 일상적인 것이 아닌 것이다. 일상적인 것이 아니면 곧 이상한 것이니, 이상한 것이면 그것을 짖는 것은 마땅한 것이다. 왜냐하면, 하늘을 우러러보면 비가 오는 것이 일상스러운 것이고, 어두컴컴함이 일상스러운 것이다. 일상스러운 것은 눈에 익숙하고, 눈에 익숙해지니 마음이 스스로 편해지는 것이다. 그 그늘이 점차 열리고 해가 넓게 구르면서 눈앞에 지나감이 더욱 드물게 되고, 차례로 익힌 것이 아니니, 마음에 스스로 놀라게 되고, 놀라니 어찌 짖지 않겠는가.

 대저 해가 떠올라 천도(天道, 천체가 운행하는 길)에 있으면 일상적인 것이 되고, 세상 사람들의 눈에 있으면 역시 일상적인 것이 되나, 촉나라 개에게 있어서는 일상적인 것이 아니다. 구름이 끼고 비가 일어나는 것은 천도에 있어 일상적인 것이 아니고 천하의 사람들에게 있어서도 역시 일상적인 것이 아니나, 촉나라 개에 있어서는 일상적인 것이다.

개에 있어서는 촉나라의 비는 일상적이어서 마음이 편하며 천하에 해가 떠 있는 것은 일상적인 것이 아니고 이상한 것이다. 천하의 해를 이상하게 여기고 천하의 해를 보면 짖는 것이니, 이 개의 천성은 천하의 개에 비해서 실제로 다른 것이 아니라 그 개가 촉나라에서 태어나 익히고 익숙해져 그렇게 된 것이다.

대저 이상한 것을 짖는 것은 개의 천성이다. 걸(桀) 왕의 개는 요(堯) 임금을 보고 짖으니, 걸의 악행은 큰 것이다. 요임금의 성스러움은 성스러운 것 중에서도 지극한 것이니, 걸왕의 개가 걸을 보고 짖지 않고 요를 보고 짖는 것은 늘 보는 짖지 않는 것이요 늘 보지 못한 것을 짖는 것이니, 어찌 오직 개만 그렇겠는가. 사람에게 있어서는 더욱 심하다.

선이 있고 악이 없는 것이 인심의 본연의 천성이고, 사람의 마음속에 스스로 하나의 하늘이 있고, 본심의 영(靈)은 그 하늘의 밝은 해와 같으나, 기품의 구속됨과 물욕의 가려짐은 구름과 안개가 하늘을 가리는 것과 같다. 그래서 밝음이 어두워지고 영이 갉아 먹혀져서, 완전하던 그 하늘이 작아지고 그 하늘이 어두워짐이 많아져서, 옛날의 더러움에 얽히고 속된 식견에 감겨서, 서로 인하여 구르면서 습관과 성질이 이루어져 한 세상에 둘러져서 어두운 지역으로 들어간다. 혹시 그 천성의 일단을 보존하고, 곧은 말과 바른 낯빛으로 그 사이에 해로 밝게 빛나면서 곧 이상한 것을 비난하고 하늘을 배척하는 것들 가운데 있으면, 이상하게 여기는 것이 시작이요, 놀라는 것이 가운데요, 배격하는 것이 끝이다.

무리들이 나무라며 함께 지껄이고, 두려워하며 요란스럽게 울고, 짖고 깨물며 이 세상에 용납되지 못하게 한 후에야 그만두니, 한 세상의 어둡고 더러움이 촉나라 남쪽의 항상 비가 내리는 것보다 심하며, 세상 사람들이 사악한 마음을 품고 올바름에 대해 짖음이 촉나라 개가 해를 보고 짖는 것보다 심하다. 이것은 다른 것에 있지 않고 세상 사람들이 다만 사악함에 익숙해져 그 올바름을 모를 뿐이다.

사악하다는 것은 사람의 인성에 거슬림에 있고, 하늘의 이치가 일상스럽지 않다는 것에 있으며, 세상 사람들이 그 일상스럽지 않은 것을 일상스럽게 여기는 것에 있는 것이다. 바르다는 것은 인성에 따르는 것에 있고, 하늘의 이치가 일상스러움에 있으며, 세상 사람들이 일상스럽지 않음에 있게 되고, 일상스럽지 않으면 곧 반드시 이상하게 여기고, 이상하게 여기면 곧 반드시 짖는다.

심하도다. 이 인간에게 있어서 습속의 그릇됨이여. 촉나라의 개가 해를 보고 짖음은 다만 그 스스로 짖을 뿐이며 해에게는 병이 되지는 않으나, 사람이 올바름을 보고 짖는 것은 다만 짖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그 사람에게 병이 됨에 이르니, 가장 영적인 사람이 도리어 치우치고 막힘이 있으니 거듭 탄식하는 것이다. 비록 그렇더라도 개나 사람이나 더럽혀져 그 이상한 것을 스스로 짖게 되더라도 그것이 흰 태양의 밝음과 바른 사람의 도는 오히려 태연자약하니 어찌 상하겠는가?

슬프도다. 하늘은 도리어 일상스러운 것이 이상한 것이 되고, 사람은 도리어 일상스러운 것이 악이 된다. 올바른 것은 일상이고, 올바르지 않는 것이 일상이 아니니, 촉나라의 기후가 항상 비가 오는 것은 일상이 아니나 촉나라 개에게는 일상이다. 세상 사람들이 악을 행하는 것은 일상이 아니나 세상 사람들은 일상으로 여기니, 일상스러움의 반대는 도리어 항상 비가 오는 것이니, 일상스러움의 반대는 상서롭지 못한 것이다. 일상스러움의 반대가 되는 일상스러움은 악이 되고, 그 반대는 역시 상서롭지 못한 것이다.

촉나라의 기후가 항상 비를 내리지 않게 하였다면 곧 개는 해를 짖지 않았을 것이고, 도리어 비를 짖었을 것이다.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악을 행하는 것이 일상이 아니었다면 곧 사람들은 선을 짖지 않았을 것이고, 도리어 악을 짖었을 것이다. 신하가 크게 걱정하는 것은 비가 항상 오는 것이고 악을 항상 행하는 것뿐이다.

평소에 촉나라의 하늘에서 구름이 끼고 흙비 내리는 날씨를 다소 뜸하게 하고 비가 늘 내리지 않게 하며, 한 세대의 날씨를 파악하여 괴이하고 어두운 기운을 크게 쓸어 버리고, 악이 일상스럽지 않게 한다면, 곧 해를 보고 짖고 올바름을 보고 짖어대는 걱정이 함께 끊어질 것이다.

오호라, 해를 보고 짖는 개는 촉나라의 날씨에 있고 사람의 힘이 미칠 바가 아니나, 올바름을 보고 짖는 습성은 군왕이 한번 마음을 바꾸고 옮기는 사이에 있는 것이다. 신하가 이 글을 짓는 것은 하늘 가운데 해가 어두운 흙비에 상하지 않게 하고자 함이고, 올바름을 보고 짖는 개들의 소리가 이 세상에서 영원히 끊어지게 하고자 함이다.(洪聖民, 1536~1594, ‘蜀犬吠日說’ 졸옹집 (拙翁集))

TAGS.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