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자초한 일, 무엇을 탓하랴

혹자가 나에게 “그대가 남이 알아주기를 구하지 않고 세상에 구하는 것이 없음은 괜찮으나, 팔십 연세에 끼니를 자주 거르니, 그도 곤란한 일이 아니오?”라고 묻기에, 나는 대답하였다.


“이는 내가 자초한 일이오. 스스로 만든 재앙은 피하기 어렵고, 스스로 초래한 모욕은 면하기 어려운 법이오. 나는 젊어서 농사일을 배우지 못했고 장성해서는 재물을 늘리지 못한 채 노년까지 이르렀소. 또 성격은 꼬이고 재주는 서툴며 용모는 보잘것없고 말이 어눌하여 시속에 화합하지 못하고 사리에도 밝지 못하니, 사람들이 천하게 여기고 대중들에게 버림을 받았소. 


그러나 그 뜻은 커서 늘 고인(古人)을 부르짖으면서 부정한 사람과 사귀려 하지 않았고, 의롭지 않은 것은 취하려 하지 않았으며, 입으로 세상의 일을 논하지 않고 남을 향해 거렁뱅이의 말투를 짓지 않아, 지금 세상의 모든 비루하고 분주한 기풍에 대해 마치 나를 더럽힐 듯이 여기며 오뚝이 앉아 세월을 보내면서 다만 서책 속의 좀벌레나 되었으니, 이는 참으로 굶어 죽는 법이라 하겠소. 또 내가 비록 미천하지만 이 또한 운명이니, 곤궁도 운명이요 굶주림도 운명이며 죽음도 운명이므로 내가 운명에 대해 어쩌겠소.”


객이 “그대가 이미 벼슬에 올랐으니, 가난을 위해 약간 절개를 굽혀도 되지 않겠소?”라고 물었다. 나는 또 대답하였다.


“내가 벼슬에 나아간 것은 바로 가난 때문이니, 이미 가난 때문에 나갔다면 어찌 가난을 즐기면서 벼슬하지 않을 수야 있겠소. 서자(西子, 춘추시대 월나라의 미인 서)가 이맛살을 찡그려도 더욱 아름다우니, 추녀가 흉내 내어 찌푸리자 온 마을이 추하게 여겨 부자들은 문을 굳게 닫았고 가난한 자는 처자를 이끌고 떠났다고 하였소. 남을 따라 하다가 몸을 지키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나의 본색을 지키는 것이 낫지 않겠소. 


공자께서 ‘부유함이 구할 수 있는 것이라면 채찍을 잡는 일이라도 내 하겠지마는, 만약 구하여 될 수 없는 것이라면 나는 내가 좋아하는 바를 따르겠다.〔富而可求也 雖執鞭之士 吾亦爲之 如不可求 從吾所好〕’라고 하셨으니, 내가 전해 받은 바가 있소.”


객이 “가난은 비록 참을 수 있다 하더라도 죽음도 참을 수 있겠소?”라고 묻기에, 나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에게 달린 것은 행할 수 있으면 행하면 되지만, 남에게 달린 것은 그가 하지 않는데 억지로 할 수 있겠소. 하물며 하늘에 있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데야 더 말할 나위 있겠소. 죽음이란 본래 견디기 어려운 일이지만, 지나치게 견디다 보면 결국 죽을 뿐인 것이오.”


-윤기(尹愭 1741~1826), '한거필담(閒居筆談)'중에서,『무명자집(無名子集)/무명자집 문고 제11책/ 한거필담(閒居筆談)'』-


▲원글출처: 한국고전번역원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 김재식 (역)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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