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금수(짐승)만도 못하게 된 것은
순경(荀卿 순자)은 말하기를, “물이나 불은 기(氣)는 있으나 생명이 없고, 초목은 생명은 있으나 지각이 없으며, 금수는 지각은 있으나 의리가 없다. 사람은 기도 있고 생명도 있으며 지각도 있고 의리도 있으니, 천하에서 가장 귀한 존재이다.” 라고 하였다.
이 때문에 《예기(禮記)》에서, “하늘이 낸 것과 땅이 기른 것 중에 사람이 가장 위대하다.” “사람은 천지의 공덕이며 오행의 빼어난 기운이다.” 라고 한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은 진실로 금수의 부류가 아니다.
그러나 어리석고 불초(不肖)한 사람 중에는 오히려 금수만 못한 사람이 있다. 그 어버이에게 효도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란 뒤에 어미에게 먹을 것을 물어다 주는 까마귀만 못한 점이 있다. 임금에게 충성하지 못하는 사람은 여왕벌을 에워싸고 나는 벌 떼처럼 관아에 달려가지 못하는 점이 있다. 부부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는 사람은 쌍쌍이 짝을 이루어 사는 물수리〔雎鳩〕만 못한 점이 있다. 형제간에 우애를 다하지 못하는 사람은 예의를 알아 질서정연하게 나는 기러기만 못한 점이 있다. 벗에게 신의를 보이지 못하는 사람은 시종일관 서로 배신하지 않는 궐(蹷)과 공공거허(蛩蛩駏驉)만 못한 점이 있다.
또 (기린이) 저 살아 있는 것을 먹지 않는 것은 인(仁)인데 사람은 그만 못한 자가 있다. (매가) 발톱으로 위난을 구조하는 것은 의(義)인데 사람은 그만 못한 자가 있다. (양이) 모유를 먹을 때 무릎을 꿇는 것은 예(禮)인데 사람은 그만 못한 자가 있다. (기러기가) 입에 갈대를 물고 날거나 (새가) 기색을 보고 날아가는 것은 지(智)인데 사람은 그만 못한 자가 있다. (닭이) 때를 알아 놓치지 않는 것은 신(信)인데 사람은 그만 못한 자가 있다.
이로써 본다면 어디에 만물의 영장이라는 점이 있겠는가. 그러나 이것은 그 중에 큰 것을 들어 대략 말한 것이다. 작은 것을 가지고 말한다면, 미물이라 할지라도 모두 자기 몸을 보호하고 병을 치료할 줄 아는데 사람은 도리어 그만 못하니, 이는 무슨 이유인가?
《조야첨재(朝野僉載)》에 이런 내용이 있다. “호랑이는 독화살에 맞으면 청니(靑泥, 심해퇴적물, 무기물과 유기물 등이 섞인 진흙)를 먹어 해독하고, 멧돼지는 독화살에 맞으면 모싯대의 뿌리〔薺苨〕를 찾아서 먹으며, 꿩은 매에 의해 상처를 입으면 지황(地黃)의 잎사귀를 물어다 붙이고, 쥐는 독에 중독되어 비틀대면 진흙물을 찾아 마시는데, 그렇게 하면 잠깐 사이에 회복된다.”
《북몽쇄언(北夢瑣言)》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새끼 쥐가 뱀에게 상처를 입자, 어미 쥐가 콩 잎사귀를 물어와 씹어서 붙여주었는데 모두 살아났다. 꿩과 숭어〔秀魚〕는 상처를 입으면 모두 송진을 그 상처에 붙인다.”
《오잡조(五雜組)》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암사슴은 풀을 물어와 그 수컷을 먹이고, 거미는 토란을 씹어 그 배에 문지른다.”
이것은 모두 누가 가르쳐 준 것인가? 또 어떤 약의 성질이 어떤 병에 약이 된다는 것을 어떻게 스스로 알 수 있었는가? 사람은 《소문(素問)》과 《본초강목(本草綱目)》 및 각종 의술을 알지만, 그래도 여전히 통달하지 못하여 독물에 상처를 입었을 때 치료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으니, ‘사람은 통하고 동물은 막혔다〔人通物塞〕’는 것이 또 어디에 있는가.
아, 사람이 어찌 금수만 못하겠는가. 단지 물욕(物欲)에 가려 그 전체의 청명함과 허령(虛靈 잡된 생각이 없이 마음이 신령한 상태)함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오히려 한 점 밝은 곳이나마 가지고 있는 금수만 못하게 된 것뿐이다.
※[역자 주]
1. 궐(蹷)과 공공거허(蛩蛩駏驉) : 《회남자(淮南子)》 〈도응훈(道應訓)〉에 “북방에 궐(蹷)이라는 짐승이 있는데, 앞발은 쥐처럼 짧고 뒷발은 토끼처럼 길어서 빨리 걸으면 넘어지고 달리면 뒤집어진다. 늘 공공거허를 위하여 감초를 가져다주는데, 궐에게 해로움이 있게 되면 공공거허는 반드시 궐을 짊어지고 달아난다.〔北方有獸 其名曰蹷 䑕前而菟後 趨則頓 走則顚 常爲蛩蛩駏驉 取甘草以與之 蹷有患害 蛩蛩駏驉必負而走〕”라는 내용이 보인다.
-윤기(尹愭 1741~1826), '사람은 천지의 공덕이며 오행의 빼어난 기운이다(人者天地之德五行之秀氣)',『무명자집(無名子集)/무명자집 문고 제13책/ 협리한화 65조목〔峽裏閒話 六十五〕』-
▲원글출처: 한국고전번역원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 이상아 (역)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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