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헤로운 여인의 뛰어난 식견과 고결한 안목

당나라 *적인걸(狄仁傑)이 이모(姨母) 노씨(盧氏)를 방문하니, 그 표제(表弟 이종제, 이종사촌동생)가 활과 화살을 끼고 꿩과 토끼를 들고 돌아오고 있었다. 적인걸이 “내가 재상이 되었으니, 아우를 관직에 보임시키려고 하오.”라고 하자, 노씨가 “늙은 몸에 자식 하나만 있으니, 빈천을 달게 여길지언정 여주(女主, 당나라 측천무후를 가르킴)를 섬기고 싶지 않네.”라고 대답하여 적인걸이 크게 부끄러워하였다.


위(魏)나라 *부승조(苻承祖)가 권세를 잡자 친인척들이 달라붙었는데, 종모(從母, 어머니 쪽 여자 형제, 즉 이모) 양씨(楊氏)가 부승조의 어미에게 말하기를 “언니가 비록 한 때의 영광을 얻었지만 제가 근심 없는 즐거움을 누림만 못합니다.”라고 하면서 옷을 주어도 받지 않고 간혹 받으면 묻어 버렸으며, 노복을 주면 “우리 집에는 식량이 없어서 기를 수 없습니다.”라고 사양하였다. 


부승조가 수레를 보내 영접하려고 하니 움직이려 하지 않았고, 안아다 수레 위에 앉히자 크게 통곡하면서 “네가 나를 죽이려 하느냐.”라고 하기에 부씨들은 그녀를 ‘바보 이모〔癡姨〕’라고 불렀다. 후에 부승조가 패망하였을 때에는 홀로 화를 면하였다. 이 두 부인의 빼어난 식견은 참으로 따를 수 없다.


세상의 장부들로 자신의 지식이 남보다 낫다고 자부하는 자들은 대부분 권문(權門)에 달라붙어서 밤낮으로 아첨을 떨어 좋은 벼슬자리를 구한다. 또 자제를 위해 관직을 구하기를 남보다 뒤질세라 두려워하여 근거 없는 모략과 교묘한 참소를 하지 않는 것이 없는데, 하물며 친인척간에 끌어줄 만한 사람이 있다면 더 말할 나위 있겠는가. 비록 스스로 계책이 잘되었다고 생각하지만 필경에 화를 면치 못한다.


세상의 부녀자들은 오직 부귀가 사람을 통해 얻을 수 있음만 알아서 간혹 부정한 지름길이 있으면 온갖 수단으로 아첨을 하고, 남편과 아들에게 이 기회를 틈타 잘 보여서 거스르지 말라고 부추긴다. 만일 조금이라도 자신을 지킬 줄 알아 모닥불에 모여드는 거지 떼*가 되려 하지 않으면, 이내 ‘성품이 빈천을 좋아하니 끝내 굶어 죽을 것이다.’라고 꾸짖는다. 


노씨와 양씨의 풍도를 듣는다면 어찌 부끄럽지 않겠는가. 아, 부끄러워할 줄 아는 자도 드물도다.


※[역자 주]

1. 당나라 적인걸(狄仁傑): 적인걸(狄仁傑, 630~700)은 당나라 때의 명신으로, 자는 회영(懷英)이며 병주(幷州) 태원(太原) 사람이다. 측천무후(則天武后) 때 재상을 지냈으며, 훗날 양국공(梁國公)에 봉해졌다. 이 내용은 《고금사문유취(古今事文類聚)》 후집(後集) 권11 〈이자불원사(姨子不願仕)〉 등에 보인다.

2. 위(魏)나라 부승조(苻承祖): 부승조(苻承祖)는 북조 시대 위나라 약양(略陽) 사람이다. 어떤 일로 인해 환관이 되어 위 문명(魏文明) 풍 태후(馮太后)의 총애를 받아 벼슬이 이부 상서(吏部尙書)에까지 올랐고, 약양공(略陽公)에 봉해졌다. 나중에 부승조가 뇌물로 인해 죽게 되자, 효문제(孝文帝)가 풀어주는 대신 삭직(削職)하고 금고(禁錮)해 놓고서는 패의장군(悖義將軍), 영탁자(佞濁子)라는 칭호를 하사하니, 한 달 뒤에 죽었다. 이 내용은 《산당사고(山堂肆考)》 권98 〈친속(親屬)ㆍ자집노고(自執勞苦)〉 등에 보인다.

3. 모닥불에 모여드는 거지떼 : 권세가에 붙어 관직을 구하는 자들을 비유한 말이다. 당(唐)나라 현종(玄宗) 때 문무백관들이 양국충(楊國忠)에게 아부하여 관직을 구하는 모습을 보고, 장구령(張九齡)이 “오늘날 조정의 관리들은 모두 불가로 모여드는 거지이다. 하루아침에 불이 꺼져 식은 재가 되면 온기가 어디에 있겠는가. 시체가 얼어 터지고 뼈가 구렁에 뒹굴 것이니, 화가 멀지 않을 것이다.〔今時之朝彥 皆是向火乞兒 一旦火盡灰冷 暖氣何在 當凍屍裂體 棄骨於溝壑中 禍不遠矣〕”라고 하였다. 《開元天寶遺事 卷3 向火乞兒》 《古今事文類聚 別集 卷19 性行部 奸邪 向火乞兒》


-윤기(尹愭 1741~1826), ' 부인의 뛰어난 식견〔婦人之卓識高見〕',『무명자집(無名子集)/무명자집 문고 제12책 / 井上閒話(정상한화) 51조목 중에서』-


▲원글출처: 한국고전번역원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 김채식 (역)┃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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