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설(利說):사람의 겉으로 드러난 것만으로는 그 속마음을 알 수 없다
똥을 푸는 자는 그 악취를 싫어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익을 도모하기 때문에 참는 것이며, 신분이 높은 사람에게 아첨하는 자는 그 교만을 싫어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익을 바라기 때문에 감수하는 것이다. 지금 신분이 높은 자에게 아첨하는 것을 보고 치욕스러워하지 않는 것을 비루하게 여긴다면, 이는 똥을 푸는 자를 보고 악취를 모르는 것을 괴이하게 여기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모셔 받드느라 분주한 것은 사랑해서가 아니며, 멀리하고 배척하여 관계를 끊는 것은 미워해서가 아니다. 옳다고 하거나 칭찬하는 것은 흠모해서가 아니며, 그르다고 하거나 비방하는 것은 원망해서가 아니다. 이는 모두 이익이 되는지를 보는 것뿐이다.
그렇다면 설령(雪嶺)이나 묵지(墨池)*는 진경(眞景)이 아니며, 어깨를 곧추세우고 아첨하거나 팔을 내저으며 돌아보지도 않고 가는 것은 실정(實情, 사물에 대해 느끼는 실제의 감정, 즉 거짓이 아닌 참된 마음)이 아니다.
사람의 겉으로 드러난 후한 모습과 깊은 정은 비록 진심에서 나온 것 같아도 그 속마음은 알 수 없다. 오직 군자만이 의리로 이익을 제어할 수 있기 때문에 말이 마음에서 우러나와 표리가 같으니, 남들에게 신뢰를 받는다 하더라도 이 때문에 기뻐하지 않으며, 사람들에게 의심을 받는다 하더라도 이 때문에 노여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여 속마음을 숨기고 가식적인 얼굴로 오직 이익만을 보고 달려가면서도 오히려 시치미 떼고 겉을 가리고자 한다. 그러나 그 자신을 속이고 남을 속이는 것이 군자를 속이기는 어렵고 사람들을 속이기는 쉽다.
보통 사람으로서 보통 사람을 속이니, 보통 사람으로서 보통 사람을 믿는 것은 참으로 당연한 것이다. 성인(聖人 공자)은, “남이 나를 속일까 미리 짐작하지 않고, 남이 나를 믿어주지 않을까 억측하지 않는다. 그러나 또한 먼저 깨닫는 자가 어진 것이다.〔不逆詐 不億不信 抑亦先覺者是賢乎〕” 라고 하였다.
군자는 사람들을 성심으로 대하면서도 이치를 환히 안다. 이 때문에 비록 미리 억측하지 않아도 먼저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만일 속는 자와 속이는 자가 같은 종류의 사람이라면 아무리 미리 억측하는 데 뛰어나다 하더라도 반드시 소인의 간계에 빠질 것이니, 어떻게 미리 깨달을 수 있겠는가.
저 얼굴빛은 근엄하지만 마음이 나약한 자*는 늘 이익에 유혹되기 때문에 의심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의심하고, 믿지 말아야 할 것은 믿는다. 이는 필연적으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으니, 벽을 뚫고 담을 넘는 도둑에 비유한 성인의 말씀이 어찌 나를 속인 것이겠는가.
※[역자 주]
1. 이익에 관하여 : 이 글은 1826년(순조26) 저자가 86세 때 쓴 것으로 추정된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 여부에 따라 남을 칭찬하거나 비방하는데, 이를 받아들이는 쪽에서도 보통 사람들은 이익에 유혹되기 때문에 쉽게 속지만, 오직 군자만은 의리로 이익을 제어할 수 있기 때문에 남에게 신뢰나 의심을 받는다 하더라도 동요하지 않고 거짓에 속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2. 설령(雪嶺)이나 묵지(墨池) : 당(唐)나라 때의 시인 최애(崔涯)가 양주(揚州)의 명기(名妓) 이단단(李端端)에 대해, 처음에는 “황혼에는 말하지 않으면 사람 가는 줄 모르고, 코는 들창코에 귀는 솥과 같네. 귀밑의 하얀 상아 빗만이 곤륜산의 초승달처럼 떠 있구나.〔黃昏不語不知行 鼻似煙窓耳似鐺 獨把象牙梳揷鬢 崑崙山上月初生〕”라고 조소하는 시를 지었다가, 이단단의 애원을 듣고 감동하여 다시 “비단 안장 황류마 고삐 잡고서, 선화방의 단단을 찾아가네. 근래의 양주 미색 모두 수준 떨어지지만, 그녀만은 한 송이 걸어 다니는 하얀 모란 같다네.〔覓得黃騮鞁繡鞍 善和坊裏取端端 揚州近日渾成差 一朶能行白牡丹〕”라는 시를 지어주었는데, 이 시로 인해 거상부호(巨商富豪)가 모두 이단단의 집에 몰려들자 어떤 사람이 “이씨 집 아가씨 까만 연못〔墨池〕에서 나오자마자 하얀 설산〔雪嶺〕에 올랐으니, 어찌하여 하루 만에 검고 흰 것 이리 다를까.〔李家娘子纔出墨池 便登雪嶺 何爲一日黑白不均〕”라고 놀렸다는 데에서 유래한 말이다. ‘묵지’는 ‘까만 연못’이란 뜻으로, 피부가 검었던 이단단을 가리킨다. 최애의 첫 번째 시는 이단단의 피부가 검어서 황혼에는 걸어가고 있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라고 조소한 것이다. 《雲谿友議 卷中 辭雍氏》 《古今事文類聚 後集 卷17 娼妓部 娼妓 娼詩毁譽》
3. 팔을 내저으며 돌아보지도 않고 가는 것 : ‘염량세태’를 이른다. 《사기(史記)》 권75 〈맹상군열전(孟嘗君列傳)〉에 “당신은 저 시장에 가는 사람들을 보지 못했습니까? 날이 밝으면 몸을 비집고 다투어 들어가지만, 날이 저문 뒤에는 지나가는 사람들도 팔을 내저으며 돌아보지 않고 가버립니다. 이것은 아침을 좋아하고 저녁을 싫어해서가 아니라, 기대했던 물건이 이미 다 떨어졌기 때문입니다.〔君獨不見夫朝趨市者乎 明旦側肩爭門而入 日暮之後過市朝者 掉臂而不顧 非好朝而惡暮 所期物忘其中〕”라는 내용이 보인다.
4. 얼굴빛은 근엄하지만 마음이 나약한 자 : 원문은 ‘色厲而內荏者’이다. 《논어》 〈양화(陽貨)〉에 “얼굴빛은 근엄하지만 마음은 나약한 것을 소인에게 비유하면 아마도 벽을 뚫고 담을 넘어가서 훔치는 도둑과 같을 것이다.〔色厲而內荏 譬諸小人 其猶穿窬之盜也與〕”라는 내용이 보인다.
-윤기(尹愭 1741~1826), '이익에 관하여〔利說〕',『무명자집(無名子集)/무명자집 문고 제14 책/ 책(冊)』-
▲원글출처: 한국고전번역원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 이상아 (역) ┃ 2013
'고전산문 > 무명자 윤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 세상에 후회없는 사람은 없다 (0) | 2017.12.23 |
---|---|
민적(民賊): 진짜 큰 도적은 백성의 도적 (0) | 2017.12.23 |
무익한 일을 하여 유익함을 해치는 행위를 경계한다 (0) | 2017.12.23 |
지헤로운 여인의 뛰어난 식견과 고결한 안목 (0) | 2017.12.23 |
세상의 언론이 공정하지 못하면 (0) | 2017.12.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