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후회없는 사람은 없다
이 세상에 후회 없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후회스러운 줄을 알아서 진정으로 뉘우치는 사람은 드물고, 후회스러운 줄을 알아서 뉘우친 다음 잘못을 고칠 줄 아는 사람은 더 드물고, 잘못을 고친 다음 전에 뉘우쳤던 일을 다시는 뉘우치지 않을 수 있게 하는 사람은 더욱 드물다.
뉘우치기만 하고 고치지 않으면 그 많은 일을 다 뉘우칠 수 없어서 후회스러운 일을 뉘우칠 것 없다고 생각하게 되므로 도리어 뉘우칠 줄 모르는 것보다 못하다. 뉘우칠 줄 모르면 자책(自責)이라도 없지 않은가?
고치고 나서 또 뉘우치면 그 많은 일을 다 고칠 수 없어서 고쳐야 할 일을 고칠 것 없다고 생각하게 되므로 이는 또 고칠 줄 모르는 것보다 못하다. 고칠 줄 모르면 무심(無心)할 수라도 있지 않은가? 이런 사람은 후회만 하다가 끝난다.
그래서 군자는 뉘우치면 반드시 고치려 하고, 고치면 반드시 다시는 후회 없게 노력하니, ‘자꾸 잘못하여 고치고 고치고 하다가(頻復 빈복)’ 나중에는 ‘완전히 잘못되어 고치지 못하는(迷復 미복)’ 지경으로 빠져들기를 바라지 않는다.
도성 서쪽에 있는 강영휴(姜永休)의 거처에 들렀더니 집의 편액이 ‘만회(晩悔 만년의 뉘우침, 뒤늦은 뉘우침)’였다. 강영휴가 잘못을 뉘우칠 줄 알고 또 뉘우친 것을 고치는 데에 뜻을 둔 것이 반가워 편액을 이렇게 단 까닭을 물었더니 대답이 이러하였다.
“나는 후회가 많소이다. 젊어서는 변변찮은 고을에 살아서 엄한 스승도, 존경스러운 벗도 없었소. 이 때문에 때맞추어 학문의 길에 들어서지 못하여, 일찍 공명(功名)을 얻어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리지 못하였소. 뒤늦게 한양에 올라와 살게 되었지만 이윽고 죽을 날이 멀지 않았다는 탄식이 나오더구려. 게다가 눈앞에 있는 두세 아이들을 교육하여 성취시키지 못했는데 머리털이 다 빠져가고 있으니, 일찍 뉘우치지 못한 탓에 평생 후회하게 생겼소. 이제 와서 후회해 보지만 이미 늦었으니 무슨 소용이 있겠소?”
이 말을 듣고 내가 말하였다. “아니, 그 무슨 말씀이시오? 그대가 뉘우치지 않는다면 모르겠으나 정말로 뉘우친다면 이르고 늦은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소? 설령 그대가 일찌감치 뉘우쳤더라도 잘못을 고치지 않았거나, 잘못을 고쳤더라도 다시는 뉘우칠 일이 없도록 철저히 고치지 못했다면, 모든 일에 후회가 뒤따라서 후회 없는 날이 없었을 것이니 일찍 뉘우친 의의가 어디 있었겠소?
반대로 만약 그대가 늦게 뉘우쳤더라도 진정으로 잘못을 고치고, 잘못을 고쳤으면 다시는 후회가 없도록 노력한다면, 하늘에 달려 있어 어쩔 수 없는 일과 남에게 달려 있어 ☞ 기필(期必)할 수 없는 일은 모르겠으나,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하고 또 할 수 있는 일만큼은 후회 없기를 바라는 순간 후회가 없게 될 것이니 어찌 꼭 늦었다고만 하겠소? 그대의 뉘우침은 늦지 않았소.
《시경(詩經)》에 ‘일찍 일어나고 밤이 된 뒤에야 (잠을)자서, 너를 낳아주신 부모님을 욕되게 하지 말지어다.(夙興夜寐 無忝爾所生)’라는 말이 있고, 또 ‘네 자식을 잘 가르쳐서 좋은 점을 배우게 할지어다.(敎誨爾子 式穀似之)’라는 말이 있소. 이렇게 한다면 후회가 없을 수 있을 것이오만, 실천 방도는 그대 스스로 모색해야 하니 부지런히 노력하시게.”
강영휴가 내 말을 듣고는 이러한 뜻으로 기문(記文)을 써 달라고 청하였다. 강영휴는 사람들이 잘하지 못하는 일에 뜻을 둔 사람이 아니겠는가? -을미년(1775, 영조41) 10월 34일에 무명자(無名子)가 쓴다.
※[역자 주]
1.만회와에 대한 기문(記文) : 작자 나이 35세 때인 1775년 윤10월에 지은 작품으로, 지인(知人) 강영휴(姜永休)의 집 만회와(晩悔窩)에 대해 쓴 기문이다. 본문의 내용으로 보아 강영휴의 만회와는 서울에 있었다. 도입부에서 후회와 개과천선에 대한 일반론을 서술한 다음, 편액의 ‘만년에 후회한다(晩悔)’라는 말에 대하여 강영휴와 주고받은 대화를 기록하였다. 그 대의(大義)는 잘못을 뉘우치는 데에 일찍 하고 늦게 하는 것은 의미가 없고 얼마나 철저히 잘못을 고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으로, ‘晩悔(만회)’의 당사자인 강영휴에게 의기를 북돋아준 것이다.
2.시경(詩經)에: 두 개의 인용문 모두 《시경〈소완(小宛)〉의 구절이다. 주희(朱熹)의 집주(集註)에 따르면, 이 시는 어려운 시기에 형제들끼리 부지런히 노력하여 화(禍)를 면할 수 있도록 서로 당부한 내용이다.
-윤기(尹愭 1741~1826), ' 만회와에 대한 기문(記文):(晩悔窩記)',『무명자집(無名子集)/무명자집 문고 제1책』-
▲원글출처: 한국고전번역원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강민정 (역) ┃ 2013
"분석의 결과 얻어진 모처럼의 통찰(자각)도 그들이 그전에 생활해 오던 실제적인 상황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한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삶의 구체적인 변화 없이는 사실상 아무런 실제적인 효과를 거둘 수 없을 것이다. '삶의 실제와 동떨어진 통찰은 그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에리히 프롬('소유냐 삶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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