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릉의 부류: 가치가 전도된 삶을 사는 사람들

공자는 말하기를 “자기를 따져 스스로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엄중하게 하고, 남을 책하는 것은 가볍게 한다.” 하였다. 이는 성현이 능히 감당하는 일이다. 분수에 맞지 않는 자기의 감정이나 욕심 따위를 이성적인 의지로써 눌러 자기를 이겨내고자하는 결단의 용기가 있고, 남에게는 두루 감싸주고자 하는 인(仁)이 있기 때문이다. 


범충선(范忠宣)은 말하기를 “남을 책하는 마음으로써 자기를 책하고, 자기를 용납하고 배려하는 마음으로써 남을 용서하고 배려한다면, 성현의 지위에 도달하지 못할 것을 걱정하지 않게 된다.” 하였는데, 이는 이미 주자(朱子)가 생각한 것을 거쳐서 나온 말이다.


즉 남을 책하는 마음으로써 자기를 책함은 옳은 일이다. 하지만 만약 자기를 용납하고 배려하는 것이 어설픈 사람이 자기를 용서하고 배려하듯이 타인의 불성실함과 나태함을 용납한다면 어찌 능히 성현의 지위에 이르겠느냐?”는 것이다.


무릇 남을 따지고 책하는 데는 밝고 자기를 책하는 데는 어두운 것이 진실로 보통 사람의 정이다. 하지만 가령, 어떤 특별한 사람이 근검절약의 정신이 투철하여 의식(衣食)을 반드시 박하게 하고 거처는 반드시 누추하게 하며, 능히 참을 수 없는 것을 참아 가며 산다고 하자. 자신이 그렇게 산다고 해서 남에게 그렇게 살기를 기대하고 강요한다면, 그걸 잠자코 견뎌낼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는 오릉(於陵)*의 부류라, 그 폐단이 또한 적지 않을 것이다.


내가 진계유(陳繼儒)의 ‘장자언(長者言, 장자(長者) 즉 군자(君子)의 말)’을 읽어 보니 거기에 이르기를, “청(淸, 맑을 청)과 고(苦, 쓸 고)가 아름다운 일이 아닌 것은 아니다. 그러나 천하에 자기 몸을 박절하게 대우하면서 남을 후히 대우하는 일이 어찌 있겠는가?” 하였으니, 이는 뼈를 찌르는 말이다. 스스로 청(淸)ㆍ고(苦)를 좋아하는 자는 마땅히 마음에 새겨 때때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역자 주]오릉(於陵) : 오릉자(於陵子). 곧 제(齊) 나라 때의 은자(隱者) 진중자(陳仲子)의 이칭(異稱). 이름은 자종(子終). 그의 형 대(戴)가 제경(齊卿)이 되어 만종(萬鍾)의 녹(祿)을 먹는데, 중자는 이를 불의(不義)로 여겨 초(楚)로 가서 오릉에 살면서 자칭 ‘오릉중자’라 하고, 아무리 곤궁해도 구차하게 구하지 아니하였다. 《烈女傳 賢明 楚於陵妻傳》


-이익(李瀷, 1681~1763), '장자언(長者言)',『성호사설(星湖僿說) 제9권/  인사문(人事門)』-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신호열 (역) ┃ 1978


[옮긴이 주] 

1. 옮겨온 번역문의 일부를 개인적인 이해를 돕기위해 나름의 쉬운 글로 고쳐 옮겼다.

2. 오릉(於陵)의 부류: 오릉의 부류란, ' 비록 뜻은 좋다할지라도 가치가 전도된 삶 또는 행위를 신념처럼 지키고 내세우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제나라의 진중자는 청렴결백한 지조의 대명사로 일컬어진다. 하지만 맹자는 진중자를 가리켜 말하기를, "중자(仲子)의 지조를 충족시키려면 지렁이가 되어야만 가능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처럼 맹자를 비롯한 후대의 현인들이 여타의 은자들과는 달리 특별히 진중자를 혹평하는 이유를 간추리면, "어머니가 주면 불의하다 하여 먹지 않고 아내가 주면 불의를 따지지 않고 먹으며, 형의 집에는 불의하다 하여 거처하지 않으면서 오릉의 집은 누가 지은 것인지도 모른 채 거처하고 있으니, 이렇게 하고도 오히려 자신의 결벽을 제대로 충족시키고 있다 할 수 있겠는가. 중자와 같은 자는 지렁이가 된 이후에나 자신의 결벽을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이다.”. 즉 자신의 청렴결백을 지킨다면서도 막상 가장 기본적인 인륜의 도리를 도외시하고 천시했기때문이다. 그래서 주석에는 인륜을 모르는 청렴, 지조란 있을 수가 없다고 단언한다. 아무리  지조와 절개가 태산같이 굳고 청렴결백할지라도 그 인간성의 바탕이 덜되먹었다면 허사란 말이 되겠다. 그 자세한 내용은 맹자/등문공하 제 10장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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