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자 존심(君子存心): 군자의 자존심
유(類)를 미루어 의(義)의 정밀한 곳까지 이른다면 나의 소유가 아닌데 취하는 자는 모두 도둑인 것이다. 그러나 어리석고 천한 자를 대하는 데에는 이와 같이 일례(一例)로 책비(責備,남에게 모든 일을 다 잘하도록 요구함)할 수 없지만, 군자의 마음가짐(君子存心)은 스스로 꺼림칙하게 여기는 바가 없어야 한다.
나라에 벼슬하는 자가 의(義) 아닌 재물을 백성에게 취하는 것은 도둑 가운데서도 우심(尤甚 정도가 더욱 심함, 즉 악질적인)한 도둑이다. 가난한 백성들이 부지런히 일하여 재물을 모은 바 그 온 가족의 목숨이 여기에 달렸는데, 아무런 이유도 없이 빼앗는다면 도둑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근래 흉년이 들었는데, 시골의 형편을 살펴본다면 가혹한 조세에 시달려 굶주려 죽는 자가 잇달았으니, 참으로 애통한 일이다. 무릇 애착은 사는 것보다 더한 것이 없고 싫은 것은 죽는 것보다 더함이 없는데, 죽어도 감히 그른 일을 하지 못하는 것은 법이 두려운 때문이다.
그러나 그른 일을 했다고 하여 모두 법에 걸려 죽느냐 하면 꼭 그러지도 않다. 혹은 도둑질을 하고도 아무 일 없이 평생을 부유하게 사는 자도 있다. 그런즉 저 빈곤한 백성들이 어찌 사방으로 광분하면서 남의 재물을 마구 약탈하여 잠시나마 생명을 연장하려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 백척 간두에서도 오히려 양심을 지켜 그대로 굶어 죽으니, 나는 이같은 자는 모두 무던한 사람이라고 한다. 진실로 이 같은 마음으로써 임금을 섬기고 백성의 재물을 차마 도둑질하지 않는다면 나라가 어찌 다스려지지 않겠는가?
-이익(李瀷, 1681~1763), '군자 존심(君子存心)', 성호사설(星湖僿說)제16권/인사문(人事門)-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정지상 (역) ┃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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