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책을 읽어내는 방법
고대의 역사(춘추시대)는 선과 악을 공정하게 똑같이 다루었지만(古史善惡 고사 선악), 후대의 역사는 그렇지 못하다.
춘추 시대(春秋時代)에는 혹 사람의 언어(言語)와 지위가 매우 높아서 후세 사람으로서는 미칠 수 없었다. 그러나 행사할 시기에 이르러서는 심히 해괴함이 있어서 후세의 역사와 조금 같지 않다. 그때는 왕택(王澤)이 아직 다하지 않고 순박한 풍속도 오히려 남아 있었는데 인사의 선(善)하지 못함이 도리어 후세만도 못했음은 어째서일까? 이는 후세의 선함이 옛날보다 나은 것이 아니라, 곧 이는 공심(公心)으로 쓰고 저는 사심(私心)으로 썼기 때문이다(이는 공자로 대표하는 춘추시대 의 역사기록자들이 사실만을 공정하게 그대로 기록했고 그 이후로는 그렇지 못함을 의미).
역사란 것은 선을 권장하고 악을 징계하는 것이므로 그 선을 나타내고 악을 숨기지 않은 것은 옛날 역사의 공정함이다. 그런데 후세에 병관자(秉管者, 국가권력을 장악한 자)들은 모든 야담(野談)과 비지(碑志, 기념비, 전적비, 묘비명등의 비문)에 의거하여 국사(國史)를 만든 데에 불과하므로 선을 권하는 말만 있고 악을 징계하는 말은 없어서, 마치 새의 한 날개가 빠지고 수레의 한 바퀴가 없는 것처럼 사심으로 쓰는 상투(常套)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주자(朱子)가 지은 《송조명신록(宋朝名臣錄)》은 국사와 다른 까닭에 선을 다루는 데는 후하게 하였고 악을 다루는 데에는 간단히 하였으니, 역시 의당한 것이다. 《어류(語類)》에 이르러서는 사적으로 서로 일러 준 말에도 모두 그 시비를 숨기지 않았으므로, 호전(胡銓)과 공도보(孔道輔) 같은 무리(이해관계와 생사에 연연하지 않고 바르고 곧은 말을 하는 사람들)를 가끔 크게는 놀라고 작게는 괴이하게 여겨 매우 낭패한 자들이 있었으니, 이것이 바로 공시(公是, 보편성, 즉 모든 사람들이 공히 옳다고 여기는 것)이다.
역사를 짓는 데는 마땅히 본받아야 할 것인데, 후세 사람은 이것으로 핑계를 삼아 무엇을 적으면 자기의 분노를 드러내고 거짓말을 꾸며서 남의 결점만 꼬집어, 남이 보면 피를 토할 만한 문자를 찬란히 만들어서 사람으로 하여금 선악의 실지를 분간할 수 없도록 함은 밉다 하겠다.[출전: 이익, 고사 선악(古史善惡), 성호사설 제19권/ 경사문(經史門)]
역사서를 읽으면 성공과 실패를 가늠할 수 있다(讀史料成敗 독사요성패 )
천하의 일이 대개 10분의 8~9쯤은 천행(하늘이 내린 큰 행운)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사서(史書)에 나타난 바로 보면 고금을 막론하고 성패(成敗)와 이둔(利鈍, 영리함과 어리석음)이 그 시기의 우연에 따라 많이 나타나게 되고, 심지어 선악과 현불초(賢不肖, 어질고 사리에 밝은 사람과 못나고 어리석은 사람)의 구별까지도 그 실상을 꼭 터득할 수 없다.
옛날 사서(역사책)를 편력하여 상고하고 모든 서적을 방증(旁證, 다양하게 두루 증거를 찾음)하여 이리저리 참작하고 비교해 보니, 오로지 한 서적만 믿고서 단정할 수 없겠다. 옛날 정자(程子)는 사서를 읽다가 한 반쯤 이르러서 문득 책을 덮고 한참동안 생각하여 그 성패에 대한 실상을 짐작한 후에야 다시 읽었고, 또 사실이 잘 맞지 않는 곳이 있으면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깊이 생각해 보았다고 한다.
그 중간에 씌어진 사실이 다행히 이루어지기도 하고 불행히 실패된 것도 있으니, 대개 그 사실이 맞지 않는 곳이 많을 뿐더러 맞는 곳도 역시 준신할 수 없다. 그러니 이 사서란 것은 모두 성패가 이미 결정된 후에 지은 까닭에 그 성패에 따라 곱게 꾸미기도 하고 아주 더럽게도 만들어서 그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겼다.
또 선(善)에 대해서는 허물을 숨긴 것이 많고, 악(惡)에 대해서는 장점을 꼭 없애버리는 까닭에, 어리석고 슬기로움에 대한 구별과 선과 악에 대한 보복도 상고할 점이 있을 듯하다. 그 당시에 있어서는 묘책도 끝내 이루어지지 않고 졸렬한 계획도 우연히 들어맞게 되었으며, 선한 중에 악도 있었고 악한 중에 선도 있었다는 것을 도대체 알 길이 없다. 천재(千載, 천년의 세월)나 멀어진 후에 어느 것을 좇아 그 참으로 옳고 그름을 알겠는가?
그러므로 사서(역사책)에 따라 그 성패를 짐작하면 사실과 이치가 그대로 맞는 곳이 많고, 오늘날 목격한 것(현재의 판단과 잣대)을 따라 생각하면 10분의 8~9쯤은 모두 이치에 맞지 않는다. 이것은 다만 나의 지혜가 밝지 못해서 그렇게 될 뿐 아니라 바로 천행(하늘이 내린 큰 행운)으로 이루어지는 점을 이용한 것이 많기 때문이며, 또 오늘날에는 일이 이치에 어긋남이 많을 뿐만 아니라, 옛날 사서(역사책)도 역시 참[眞 진실]이 어려웠던 때문이다.
나는 이 때문에 천하의 일은 시대를 잘 만나는 것이 최상이고, 행ㆍ불행(幸不幸)은 다음이며, 시비(是非)는 최하로 여긴다.[출전: 이익, '독사요성패(讀史料成敗)', 성호사설 제20권 경사문(經史門)]
-이익(李瀷, 1681~1763), '경사문(經史門 )' 『성호사설 제20, 21권』-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김철희 (역) ┃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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