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교[論交]:사귐을 논한다
옛사람은 친구와 사귈 즈음에 반드시 ‘사귐을 논한다[論交].’라고 했다. 이른바 사귐을 논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함인가? 아마도 눈 앞의 즐거움만을 담론함에 그친 것이 아니고 반드시 서로 저버리지 않는 의리를 강론하였을 것이다.
만약 부귀한 자끼리 서로 만나 즐거움과 명리를 같이하는 경우라면 어찌 친구의 의리를 강론한 후에야 사귀어지겠는가?
《사기》에, “부자가 벗을 사귀는 것은 가난한 때를 위함이요, 귀한 자가 벗을 사귀는 것은 천(賤)한 때를 위한 것이다.” 했으니, 가난하고 천하게 되어도 저버리지 않아야만 비로소 친구인 것이다.
또 옛사람의 말에, “하나는 귀하고 하나는 천할 때에 친구의 정분을 볼 수 있고, 하나는 죽고 하나는 살았을 때에 친구의 정의를 알 수 있다.” 했으니, 이는 천고에 뼛속까지 찌르는 말이다. 친구는 오륜의 하나로서 처음 사귈 때에는 군신이나 부부처럼 반드시 폐백을 받들고 서로 맹세하는 절차가 있는 것이다. 사상견례(士相見禮 《의례(儀禮)》의 한 편명)에 소상히 기록되어 있다.
《풍토기(風土記)》를 상고하면, 월(越) 나라 민요에,
그대는 수레 타고 내가 삿갓 썼거든 / 君乘車我戴笠
다른 날 서로 만나 수레에서 내려 읍하게나 / 他日相逢下車揖
그대가 우산 메고 내가 말을 탔거든 / 君擔簦我跨馬
다른 날 서로 만나 그대 위해 말에서 내리리다 / 他日相逢爲君下
라고, 하였다. 월 나라 사람은 순박하여 처음 친구를 사귈 때에는 일정한 예식이 있어 단(壇)을 쌓고 닭과 개를 잡아 제사를 올렸으며, 위와 같이 맹세한 후에는 조그만 허물이 있다 해서 경솔히 절교하지 않았다. 공자의 말에도, “친구란 친구된 의리를 잊지 않는 것이다.” 했으니, 원양(原壤)의 일에서 볼 수 있다.
오(吳) 나라 노숙(魯肅)은 이미 여몽(呂蒙)과 정분이 두터운데도 벗을 맺고 떠났으니, 벗을 맺을 때에는 반드시 내실에 들어가 어머니에게 절하고 형제의 의(義)를 약속하였다. 지금 사람들이 친구를 형제라고 부르는 것도 또한 옛날부터 전해 오는 의(義)인 것이다.
-이익(李瀷,1681~1763), '논교(論交)', 성호사설 제15권 / 인사문(人事門)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정지상 (역) ┃ 1978
**옮긴이 주: '원양(原壤)의 일', 공자의 오랜 친구인 원양에 대한 일화로 예기(禮記), 단궁하편(檀弓下篇)이 출전이다. 공자가어, 굴절해 편에도 똑같은 내용이 나온다. 요약하면 내용은 이렇다. 원양이 모친상을 당했는데, 원양은 상례를 준비하면서 모친의 시신을 담을 관을 짜려고 준비해 놓은 목재((登木)위에 올라가 스스로 흥을 돋구는 노래를 불렀다. 그 내용은 이렇다. "삵의 머리처럼 나무의 무늬는 아롱지구나. 은근하게 잡은 여인의 손처럼 나무는 부드럽구나". 이를 본 공자가 모른 체하고 넘어가자, 따르던 사람이 따져 물었다. "선생님께서는 저렇게 예에 어긋난 짓을 예사로 하는데도 어찌 그와 절교하시지 않으십니까?". 이에 공자는 대답하기를 " 내가 듣기로는 '친한 자에게는 그 친한 것을 잃지 말고(親者毋失其爲親也친자무실기위친야), 오랜 친구는 그 오랜 것을 잃지 말아야 한다 (故者毋失其爲故也고자무실기위고야).'"하였다(禮記, 檀弓下篇). 어릴 적부터 공자와 원양은 친구사이였다고 전해진다. 논어에 기록하길, 공자는 원양을 보고는, "어려서도 공손하지 않았고, 자라서도 칭찬받을 짓은 한적이 없고, 늙어서도 죽지 않았으니 이야말로 도둑이다.'라고 하면서 원양의 정강이를 툭쳤다."고 전한다."(論語 14편, 憲問)
"벗(朋友)은 같은 무리의 사람이다. 유익한 벗이 셋이요 해로운 벗이 셋이니(益者三友 損者三友 익자삼우 손자삼우), 즉 곧고 믿음이 있고 견문이 많은 벗은 이롭고, 편벽되고(편견과 아집이 심하고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는) 유약하고(심지가 굳지 못하고 변덕스럽고) 아첨하는(눈치를 보며 비위를 맞추는) 벗은 해롭다. 벗이란 그 덕(德)을 벗하는 것이다. 천자에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벗으로 인하여 그 덕을 성취하지 않음이 없다. 그 氣分(기분)이 다소 엉성한 것 같지만, 그 관계되는 바가 지극히 친밀한 것이다. 이런 까닭에 벗을 취함은 반드시 단정한 사람으로 하여야 하며, 벗을 택함은 반드시 나보다 나은 자로 하여야 하다. 요컨대 마땅히 선을 권장하되 믿음으써 하며, 간절하게 굳게 충고하여 잘 인도하다가 더 이상 할수 없어야 그만두는 것이다. 만약 사귀어 놀 때 절차탁마하는 도리로써 서로 친애하지 아니하고, 다만 장난하고 농담하는 일을 가지고 서로 친애한다면 그 사귐의 정은 그 기분이 소원해지면 얼마 가지않아 멀어지고 만다. 옛날에 안자(晏子)는 남과 사귐에에 있어서 오래도록 서로 공경하였는데, 벗 사이의 도리(朋友之道 붕우지도)는 마땅히 이러해야 한다. 공자가 말하기를, "벗에게 믿음이 없으면 윗사람에게도 신임을 얻지 못하리라. 벗에게서 믿음을 얻는 도리가 있으니, 어버이와 뜻에 순종하지 않고 가깝지 못하다면 벗에게도 믿음을 얻지 못하리라. " 하였다 " -'朋友有信(붕우유신)', 동몽선습(童蒙先習) / 오세주 한시감상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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