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의 본성

옛날 예양(豫讓)이 조 양자(趙襄子)에게 죽음을 당한 것을 두고 선유(先儒)들은 조 양자가 예양을 죽여서는 안 되었다고 말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예양은 양자에게 반드시 원수를 갚고자 하여 다섯 차례 복수를 시도했으나 성공하지 못하였지만, 그의 의지는 원수를 갚지 못하면 그만두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양자는 그를 의롭게 생각하면서도 죽였으니, 죽이지 않으면 또한 끝내 자신이 화를 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닥친 환란을 피하기 위해 의로운 선비를 차마 죽였으니, 사사로움을 좇아 도리를 저버렸던 것인가?


의리로 볼 때도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하겠다. 지금 만약 두 군대로 하여금 서로 싸우게 하면 목숨을 걸고 사지(死地)에 들어가 상대의 장수를 베고 상대의 군주를 사로잡는 것은 모두 충성스러운 일로, 적의 충성심이 고양될수록 우리에 대한 공격은 더욱 급박해질 것이다. 그런데 다섯 걸음 내에서 적이 무기로 공격해 오는 상황에서 “저들의 충성심을 부식(扶植)하지 않을 수 없으니, 우리는 저들의 공격을 조심하며 피할 뿐이다.”라고 말한다면, 또한 어리석은 일이 아니겠는가.


군자(君子)가 권도(權道)로 대처하는 경우에는 본래 느긋할 때와 급할 때에 따라 차이가 있다. 느긋할 때에는 그래도 관용을 과시하며 용서할 수 있지만, 급할 때에는 상황 자체가 충성스러운지 어떤지를 고려할 겨를조차 없는 것이다. 


양자는 예양을 죽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다시 더 권면하였는데, 이러한 행동이 예양으로 하여금 죽이지 않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도록 하여 마침내 원수 갚는 행위를 그치게 할 수도 있다는 주장은 참으로 논할 가치도 없는 말이다. 오히려 예양으로 하여금 권면한 말에 더욱 분발하도록 하였으니, 나는 예양이 양자를 반드시 죽이고 난 뒤에야 그만두었으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양이 양자를 죽이기 위해 변소를 칠하기도 하고 다리 밑에 숨기도 하였으니, 양자가 화를 면한 것은 요행이었다. 그렇지 못해 혹시라도 화를 당했더라면, 이것이 바로 송 양공(宋襄公)이 결국 세상의 비웃음거리가 되었던 까닭인 것이다.


저 예양이라는 사람은 충성을 다하고자 하였지만, 재주가 모자란 사람이었다. 그가 만약 천하를 움직일 만큼 지혜가 있었거나 기습을 성공할 만큼 용맹이 있었다면, 양자가 어떻게 다시 화를 모면할 수 있었겠는가.


예(禮)에 근거하면 “정당한 이유가 있어 살인을 저지른 경우에는 피살된 사람의 자제(子弟)들로 하여금 원수를 갚게 하지 말며, 원수를 갚으면 살인죄로 죽인다.”라고 하였고, 또 “아버지가 죄에 따라 주륙되었는데 자식이 복수를 하면, 이것은 칼날이 오가게 되는 길인 것이다.”라고 하였다. 양자가 지백(智伯)을 죽임에 있어 이미 도리에 위배되는 점이 없었으니, 원수를 갚는다고 칼날이 오가게 한 일개 예양에게 처벌의 법을 적용하는 것이 유독 불가할 리 있겠는가. 그러므로 양자가 예양을 죽인 것이 늦었고, 잘못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옛날 무왕(武王)이 상(商)나라를 이기자 주왕(紂王)이 어질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달아난 도적과 잔당들이 심복(心腹)이 되어 그를 위해 목숨을 바쳤는데, 무왕은 개의치 않고 그들을 처단했다. 그리고 천하가 평정된 뒤에는 주왕의 아들 무경(武庚)이 옛 기반을 회복하고자 마침내 세 감시인과 함께 반란을 일으켰는데, 주왕은 비록 무도했다지만 무경은 극악무도한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음에도 주공(周公)이 주륙하였다. 


무왕과 주공은 어찌하여 창을 거두고 형벌을 감하여 그들의 충효를 널리 권장함으로써 세상의 신하와 자식 된 자를 권면하는 모범으로 삼지 않았던 것인가? 주왕은 일개 사내였는데, 당시에 일개 사내를 편드는 자라면 비록 요(堯) 임금을 보고 짖는 도척(盜跖)의 개처럼 하찮은 정성을 가지고 있더라도 모두 죄를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양자는 진(晉)나라의 권신(權臣)이었고, 비록 상나라와 주(周)나라의 교체기와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지백의 악행은 주왕과 비슷한 부류였다. 위로는 임금을 협박하고 곁으로는 열경(列卿)을 병탄하여 별다른 이유 없이 잔인하게 멸망시켰다. 그러한 지백이 죽음을 면치 못하고 멸망한 지경에 이르렀고 보면, 충성을 다하고자 했던 신하들은 돌봐 준 소소한 은혜에 감복한 잔당들에 불과할 뿐이었으니, 옛날의 이른바 살신성인(殺身成仁)했던 사람들과는 서로 아주 반대되는 부류이다. 그러나 그들은 말하기를 “저분이 일찍이 나를 국사(國士)로 대우해 주었다.”라고 하니, 이 같은 부류들이 국사가 무엇인지 알기나 했겠는가.


지과(智果)는 기미를 알았고, 지국(智國)은 환난을 염려했으며, 치자(絺疵)는 상황을 잘 살폈으니, 예양은 이와 같은 사람들에 낄 수 없다. 그는 단지 팔짱을 끼고 앉아 망해 가는 것을 보고만 있었으며, 지백과 서로 마음이 통한 것이라고는 악행을 함께하여 이루어 준 것에 불과하였으니, 그의 지혜는 칭찬할 것이 못 된다. 


그리고 그가 원수를 갚고자 하였을 때에 그의 행동은 또한 강도(强盜)의 하찮은 행위에 지나지 않았으니, 만약 예양의 계책이 성공하였더라면, 사신(史臣)이 “강도가 양자를 죽였다.”라고 특별히 기록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성공하지 못하고 주륙됨으로써 돌봐 준 소소한 은혜를 갚고자 했던 일개 강도를 제거한 것에 불과한 일이 되었으니, 양자에게 무슨 유감이 있겠는가.


한편으로 또 다른 설이 있다. 지씨(智氏)와 조씨(趙氏)는 모두 진(晉)나라의 배신(陪臣, 대대로 이어진 가신)으로서 국권을 잡았던 가문이므로, 만약 진나라의 법이 제대로 시행되어 두 집안이 재판을 받았더라면 지백은 마땅히 죽어야 했을 것이니, 예양은 감히 원수를 갚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으로 단안(斷案, 전제로부터 미루어 얻은 논리적 결론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함)을 삼을 수 있을 뿐이다.


*[역자 주]

1.양자의 권면 : 처음에 예양(豫讓)이 변소의 벽을 칠하는 죄인으로 변장하여 양자(襄子)를 죽이려고 하다가 사로잡혔는데, 양자가 죽이지 않고 “저자는 의인(義人)이니, 내가 조심하면 된다. 그리고 지백(智伯)이 죽고 후사(後嗣)가 없어 그 신하가 원수를 갚고자 하였으니, 이 사람은 천하의 현인(賢人)이다.”라고 칭찬하며 풀어 준 것을 가리킨다. 《史記 卷86 刺客列傳 豫讓》

2. 송 양공(宋襄公)의 비웃음거리: 송 양공이 홍수(泓水)에서 초(楚)나라와 전쟁을 벌일 때에 인의(仁義)에 입각하여 적의 어려운 사정을 봐주다가 패전하여 세상의 비웃음을 산 일을 가리킨다. 《春秋左氏傳 僖公22年》

3. 요(堯) 임금을 보고 짓는 도척의 개 : 개는 제 주인이 아니면 요 임금과 같은 성인을 보고도 짖는 것과 같이 누구나 각자 자기 주인을 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제(齊)나라의 대부 초발(貂勃)이 항상 안평군(安平君) 전단(田單)을 소인(小人)이라고 비방하자, 전단이 초발을 만나 그 이유를 물었다. 초발이 대답하기를 “도척 집의 개가 요 임금을 보고 짖는 것은 도척을 귀하게 여기고 요 임금을 천하게 여겨서 그러한 것이 아니라, 개는 그 본성이 주인이 아니면 짖는 것이다.” 하였다. 《戰國策 齊策6》

4. 지과(智果), 지국(智國), 치자(絺疵) : 지과가 기미를 알았다는 것은 지 선자(智宣子)가 지백(智伯)을 후계자로 세우려고 하자 지씨(智氏) 일족(一族)인 지과가 지백이 어질지 못하므로 후계자가 되면 지씨가 멸망할 것이라고 예견한 일을 가리킨다. 지국(智國)이 환란을 염려했다는 것은 지백이 지 선자의 후계자가 되어 한 강자(韓康子), 위 환자(魏桓子)와 연회를 벌일 때에, 한 강자를 농락하고 한 강자의 가신(家臣)인 단규(段規)를 모멸하자, 지백의 가신인 지국이 그 사실을 알고는 “주군께서 대비하지 않으시면, 환난이 반드시 닥칠 것입니다.”라고 간언한 일을 가리킨다. 치자(絺疵)가 상황을 잘 살폈다는 것은 지백이 한 강자, 위 환자와 함께 진양(晉陽)에서 조 양자(趙襄子)를 공격할 때에, 지백의 모신(謀臣)인 치자가 사람들의 동태를 살펴서 한 강자와 위 양자가 지백을 배반할 것이라는 것을 알아채고 지백에게 알려 주었던 일을 가리킨다. 《資治通鑑 卷1 周紀》


-이익(李瀷, 1681~1763), '예양에 대해 논한 글(豫讓論)', 『성호전집 제47권/ 잡저(雜著)』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양기정 (역) ┃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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