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위지생서(答尉遲生書): 문장(文章)이란 반드시 내면에 쌓인 것이 있어야 한다
유(愈, 한유)는 위지생(尉遲生) 족하(足下)께 아룁니다. 이른바 문장(文章)이란 반드시 내면에 쌓인 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군자는 도덕의 수양과 학문의 연마에 성심(誠心, 성실하고 참된 마음, 진정성)을 다하니, 이는 도덕의 수양과 학문의 연마를 잘하고 못한 것이 문장에 그대로 드러나 가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뿌리가 깊으면 가지가 무성하고, 형체가 크면 소리가 우렁차며, 행동이 고결하면 말이 준엄하고, 마음이 순후(醇厚, 순박하고 맑음)하면 기운이 화평하며, 사리에 밝은 사람의 문장은 의심스러운 곳이 없고, 마음이 한가롭고 편안한 사람의 문장은 여유가 있습니다. 지체(肢體, 팔다리와 몸)가 갖추어지지 않으면 완전한(온전한) 사람이 될 수 없고, 문사(文辭, 생각이나 뜻을 문장으로 풀어 표현하는 재주, 문체)가 부족하면 완전한 문장이 될 수 없습니다.
내가 들은 바가 이와 같기 때문에 나에게 묻는 이가 있으면 나 또한 이 말로 대답해주었습니다. 지금 그대가 지은 문장이 모두 훌륭한데, 마치 부족한 듯이 겸양하여 나에게 가르침을 구하니, 내 감히 말을 아끼겠습니까?
그러나 내가 말해줄 수 있는 것은 모두 고인(古人, 옛사람)이 문장을 짓던 방법일 뿐입니다. 고인의 방법은 지금 세상에서 취할 만한 것이 못 되는데, 그대는 어째서 좋아하는 것이 지금 사람들과 다르십니까?
오늘날 위에는 어진 공경대부(公卿大夫, 벼슬과 관직이 높은 사람들)들이 많고 아래에는 새로 진출한 어진 선비들이 많으니, 저들이 관직을 얻은 데에는 반드시 관직을 취한 방법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대도 벼슬하고 싶거든 그들에게 가서 물어보십시오. 모두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단지 고문(古文, 옛글)을 좋아해서 왔을 뿐이고, 벼슬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면 내가 일찍이 고문을 배운 적이 있으니, 오늘 이후로 계속해 말해드리겠습니다.
※[역주]
1. 위지생(尉遲生): 이름이 분(汾)으로 정원(貞元) 18년(802)에 진사과(進士試)에 합격한 한유(韓愈)의 제자이다.
-한유(韓愈, 768~824), '위지생(尉遲生)에게 답한 편지(答尉遲生書)', 『당송팔대가문초(唐宋八大家文抄) 卷5 /서(書)12』-
▲원글출처: 전통문화연구회/동양고전종합DB
※[옮긴이 주]
1.문장(文章): 문장(文章)은 '우리가 생각이나 감정을 완결된 내용으로 표현하는 최소의 언어 형식이다'(교육인적자원부, 2002). 문장은 일정한 구성 방식에 따라 낱말이 결합하여 형성되고, 의미는 일정한 형식으로 구체화되어 나타난다. 즉 하나의 생각을 문자언어로 나타내는 것이 바로 문장이라 하겠다. 문법은 이러한 문장의 최소 개념에 바탕을 두고 형식과 구조를 이루는 규칙과 질서라는 기능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일반적인 문장의 의미는 형식이나 구조적 측면보다 기능적인 차원, 즉 의미적인 측면에 우선한다. 다시 말하면 구조적인 완결을 갖추지 않더라도 의미적으로 완결을 갖추면 문장이 될수도 있다는 말이 되겟다. 이에 따르면 주어와 서술어가 갖추어지지 않은 외마디 말의 표현도 문장이 된다. 예를 들면, “그 말 한 마디 속에 어떤 생각이나 느낌이 덩어리로 나타나서, 주어도 없고 서술어도 없지마는 한 개의 글월과 같은 자격으로 쓰이는 말(이희승, 1956).”, 즉 '네', '아무렴', '아차', 아이쿠',.... 기타등등과 같은 말들이 이에 해당된다. 이는 누구라도 자기 생각이나 느낌 등을 아무런 제약없이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말로 이해해도 되겠다. 한편 구조적 완결을 이루는 언어, 문자표현은 문장과 구별하여 '이야기' 또는 '발화(發話)'의 개념으로 보는 학자들도 있다. 이러한 일반적인 의미의 문장 개념과는 달리, 한유의 글에서 말하는 한자어 문장(文章)의 개념은 약간 다르다. 즉 사전을 찾아보면, ①생각ㆍ느낌ㆍ사상 등을 글로 표현한 것 ②구절(句節)을 모아서 한 문제(問題)를 논술한 글의 한 편. ③또는, 그것을 써 놓는 글. (네이버 사전). 즉 한유가 말하는 문장의 개념은 일반적인 문장의 의미보다는, 사전적 정의, 즉 구조적 완결을 요하는 '이야기( 또는 발화, 논술)'에 가깝다 하겠다. 문장의 개념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면 한유가 말하고자 하는 글의 요지를 이해하는데에 많은 도움이 되겠다.
2.고문(古文): 옛 문장, 주로 진한 이전의 산문형태의 옛글을 말한다. 그 특징으로는 문장이 담백하고 필자의 개성이 뚜렷하여 그 표현 형식이 상투적이거나 획일적이지 않다. 온갖 수식과 수사법을 동원하여 문장을 화려하게, 또는 달달하게, 더욱 폼나게 꾸미는 문장기교가 일절 사용되지 않는다. 그대신 필자만이 가지고 있는 개성적인 표현으로 글의 뜻과 진정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담백한 문장이 그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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