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이전의 해석 (伯夷傳解)
백이전은 아직 해석이 안 되는 부분이 많이 있으니 학사와 대부들이 병통으로 여긴다. 내가 여러 해석한 글을 베껴 그 의문을 풀어 보겠다.
“순임금이 농촌에 처한 지 30년 만에 요임금이 천하를 양위하고 순임금이 우(禹)로 하여금 수십 년을 관장하게 하고 공효가 흥한 연후에 천하를 양위하였으니 그 전함이 이와 같이 어려운 것이다.”
논설하는 자들은 “요임금이 천하를 허유(許由)에게 양위하였으나 허유가 받지 아니하였고, 하나라의 때에 미쳐서는 변수(卞隨)와 무광(務光)이 있었다.”라고 하였다. 그 말에 정도의 차이가 크게 있어 흡족치 못하여서 태사공 사마천(司馬遷)이 의심하였으나 그 아버지 태사공 사마담(司馬談)이 기산에 올라 허유의 무덤을 보았다는 것 때문에 믿고는 그 아버지 태사공 사마담(司馬談)의 말을 책머리에서 인용하여 허유와 무광의 일을 드러내었다.
공자가 오태백(吳太伯)과 백이 · 숙제가 나라를 사양한 것을 귀하게 여겨 차례로 열거하였는데, 허유 · 변수 · 무광이 천하를 사양하였으니 의리가 지극히 고상하나 공자께서 문장에서 일컬음이 없었다. 이에 태사공 사마천이 허유와 무광의 일이 전해짐이 없음을 슬퍼하여 백이전을 지었으니, 백이를 말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실제는 허유와 무광을 말하고자 한 것이다.
이릉(李陵)을 구하려다가 궁형을 만나자 이에 원망함이 있었으니, 혹은 백이가 때를 만나지 못한 것을 원망함에 견주고, 혹은 허유와 무광의 이름이 전해지지 못하여 세상을 마치도록 자신의 이름이 전해지지 않았음을 미워함에 견주었다. 이 때문에 허유와 무광을 먼저 책머리에 언급하였으니 허유와 무광의 일이 인멸될 것을 염려하여 아버지 태사공 사마담이 기산에 올라 허유의 무덤을 본 것으로 증명하였으니 이는 요임금이 천하를 양위한 것을 밝힌 것이다.
공자께서 “백이와 숙제는 인(仁)을 구하고자 하여 인을 얻었으니 또 무엇을 원망하였겠는가?”라고 하였다. 태사공 사마천은 백이의 심경을 슬퍼하여 일시(軼詩)를 찾아보고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저 서산에 올라 고사리를 뜯네, 폭력으로 폭력을 바꾸었건만 그 잘못을 알지 못하는 구나, 신농(神農)과 요(堯) · 순(舜)은 이미 떠나셨으니 우리는 앞으로 어디로 돌아가야 하나? 오호라! 이제는 죽음뿐이니 우리 운명도 다했구나!’ 하고는 마침내 수양산에서 굶어 죽었다.”라고 하였다. 여기에 어찌 원망함이 없겠는가?
태사공 사마천은 백이가 굶어 죽은 것을 천도(天道)의 돌아감이 어긋났다고 여겼다. 피일휴(皮日休)는 「수양산비(首陽山碑)」에서 “태사공 사마천이 백이가 굶어 죽은 것을 하늘의 탓으로 여겼다.”고 하고는 사마천의 논지를 그르게 여겼는데 나는 이를 믿을 수 없다고 여긴다.
성인은 선한 사람에게 복을 내리고 음란한 사람에게 화를 내리는 것을 하늘의 권능이라 여겼다. 태사공 사마천이 논하는 바가 성인과 어긋나지 않으니 훌륭한 사가(史家)라고 이를 만하다. 백이 · 숙제가 굶어죽고 안연이 일찍 죽은 것과, 행동이 정도에서 벗어난 사람이 평생토록 향락을 누린 것과, 땅을 가려서 밟는 사람과, 길을 갈 때도 지름길로 거치지 않은 사람이 재앙을 만난 것 또한 천도로 돌린 것은 거듭 천도를 의심하여 믿을 수 없다는 뜻이다.
공자께서는 “길이 다르면 서로 도모하지 않는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제각기 자기의 뜻을 좇아서 행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부귀가 찾아서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비록 말채찍을 잡는 천한 일이라도 나는 하겠다. 만일 찾아서 얻을 수 없다면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좇겠다.” “추운 계절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늦게 시든다는 것을 안다.”라고 하였다.
세상이 모두 흐려졌을 때 맑은 사람이 드러난다. 어찌하여 세상 사람들은 저와 같이 부귀한 사람을 중시하고 이와 같이 깨끗하고 맑은 사람을 하찮게 여기는가? ‘도척’ 및 ‘행동이 정도에서 벗어난 사람’이하는 중시 여긴 것이고, ‘백이’ 및 ‘땅을 가려 밟은 사람’ 이하는 하찮게 여긴 것이다. 하늘이 어떻게 도척과 같은 저들을 중시 여기고, 백이와 같은 이들을 하찮게 여기는가?
이미 ‘천(天)’ 자를 끄집어내어서 저와 같은 것으로 이와 같은 것을 매듭짓고 또 ‘명(名)’ 자를 끄집어내어서 책의 말미에 응함으로써 매듭짓는다. 그러므로 ‘군자는 세상을 마치도록 이름이 일컬어지지 않음을 미워한다.’는 것으로써 ‘명’ 자를 일으
키는 머리로 삼았다.
‘욕심쟁이는 재물을 위해 죽고’로부터 ‘서민들은 그저 목숨을 탐할 뿐이라네.’와 ‘같은 종류의 빛은 서로 비추어 준다.’라는 말에서부터 ‘바람은 범을 따른다.’라는 말에 이르기까지는 만물은 각기 그 종류에 따라 서로 구한다는 뜻이다.
백이 · 숙제는 공자 덕분에 이름이 더욱 밝히 드러났고 안연이 천리마의 꼬리에 붙어 덕행이 더욱 드러났다고 하였는데, ‘부기미(附驥尾)’란 공자의 덕을 보았다는 뜻이다. 속세를 떠나 깊은 산속에 숨어 사는 선비의 행동에는 때가 있는 법이어서 백이 · 숙제 · 안연 등을 거듭 말한 것이다.
사마천은 백이가 공자의 칭송을 받았음을 기뻐하였다. 허유 · 무광 같은 사람의 이름은 인몰되어 거론되지 않았으므로 그들이 공자의 칭송을 받지 못했음을 거듭 언급했는데 이 때문에 사마천은 허유 · 무광이 후세에 전하지 못했음을 깊이 슬퍼 한 것이다.
조항(趙恒)의 주석에 “백이와 숙제가 부귀를 좇았다면 명성을 버리고, 명성을 좇았다면 부귀를 버린 것이니, 부귀를 버리고 나라를 사양한 것은 허유와 무광 또한 부귀를 버린 것이요, 부귀를 버리고 천하를 사양한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백이열전에 이르기를 “궁향 벽촌에 사는 사람이 행실을 닦아 이름을 세우고자 할 때 훌륭한 선비에게 의지하지 않는다면 어찌 후세에 이름이 전해지겠는가?” 라고 하였
다. 이는 그 이름이 전해지지 않는 것을 두려워 한다는 뜻이다.
“세상을 마치도록 이름이 일컬어지지 않음을 미워한다.”는 한 마디는 「백이열전」의 기괄(機栝)*이니 ‘명(名)’ 자를 책의 말미로 장식한 것은 매우 신통하다 하겠다.(박황희역)
-김득신(金得臣, 1604~1684), '백이전의 해석(伯夷傳解)', 백곡집(柏谷集)-
▲번역글 출처: 『백곡 김득신 산문 선역(柏谷 金得臣 散文 選譯)』(박황희 논문, 고려대 2015)
※[옮긴이 주]
1.기괄(機栝): 활틀(쇠뇌)에 화살을 거는 장치를 말한다. 장자 제물편에서는, 기괄이란 시비판단을 가늠케 하는 중요한 출발지점으로 이 단어가 사용된다. 즉 사물을 작동하게 하는 중요한 촉발 지점, 문장으로 말하자면 요점을 가늠케 하는 중요한 표지로 이해하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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