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무두지학(無頭之學): 머리없는 학문
덕(德)에 흉함도 있고 길함도 있다는 데 대한 변(辨) [德有凶有吉辨]월과(月課)로 지은 것
한자(韓子)의 원도(原道)에 이르기를, “도(道)와 덕(德)은 허위(虛位, 빈자리, 즉 뚜렷하게 정의됨이 없음)이다. 그러므로 도에는 군자의 도와 소인의 도가 있고, 덕은 흉덕(凶德)과 길덕(吉德)이 있다.” 고 하였는데, 내가 옳지 않다고 여겨 왔기에 이것을 변론해 보려고 한다.
덕은 얻는 것이니, 선(善)을 행하여 마음에 얻는 것을 덕(德)이라고 한다. 하늘이 뭇 백성을 낳았으니 물(物)이 있으면 법칙이 있다. 그러므로 일상생활 속에서 각각 마땅히 행하여야 할 도(道)가 있으니, 마땅히 행하여야 할 것은 마땅히 얻어야 하는 것이다. 마땅히 얻어야 할 것을 얻는 것을 덕이라 하니, 얻어서는 안 되는 것을 얻는 것을 어찌 이른바 덕(德)이라고 하겠는가? 밭을 갈아 거둬들일 때 곡식을 얻어야 얻었다고 하지, 채소를 얻는 것을 어찌 얻었다고 하겠는가? 땅을 파서 우물을 만들 때 샘을 얻어야 얻었다고 하지, 흙을 얻는 것을 어찌 얻었다고 하겠는가? 선(善)하게 얻는 것을 덕이라 하니 덕은 길한 것이요, 선에 어긋나는 것을 패덕(悖德)이라 하니 패덕은 흉한 것이다. 천하에 어찌 정반대되는 내용이 그 이름을 같이하는 경우가 있겠는가?
한자(韓子)가 이 말을 한 것은 의거(依據)한 데가 있기는 하다. 《주역(周易)》에 항덕(恒德)의 흉(凶)을 말하고, 《시경(詩經)》에 그 덕을 두셋으로 함을 말하고, 주공(周公)은 ‘상왕(商王)인 수(受 주(紂)의 이름)는 주덕(酒德)에 빠졌다.’고 하고, 이윤(伊尹)은 ‘덕을 두셋으로 하면 움직여서 흉하지 아니함이 없다.’고 하였다.
이것은 모두 그 한 가지 뜻을 빈 것뿐이지 그 전체를 논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한자(韓子)는 그 말에만 집착하여 뜻을 놓쳐 도와 덕을 단연 허위(虛位)로 보아 길하기도 하고 흉하기도 한 것으로 보아 마침내 입언(立言)의 대지(大旨)로 삼았다. 이것이 오류(誤謬)를 범하게 된 소이(所以)이다. 성인의 말씀은 두루 통하여 걸리는 일이 없다. 그러므로 바른 말인데도 뒤집는 것 같으며, 뒤집는 말인데도 바름[正]을 잃지 아니한다. 배우는 이가 그 참뜻을 얻지 못하고 오직 말에 구애되기 때문에 꽉 막혀 마침내 한쪽으로 치우침에 빠지니, 이것이 군자(君子)가 입언(立言)하기가 어려운 이유이다.
또 한자(韓子)는 굳이 도와 덕을 허위로 삼고 인(仁)과 의(義)를 정명(定名)으로 삼았다. 그러나 그 말로써 미루어 보면 인과 의도 정명이 될 수 없다. 어째서 그런가 하면 송양(宋襄)의 인(仁)은 천하가 비웃었고, 부인(婦人)의 인(仁)은 군자가 경시(輕視)하였으며, 의(義) 아닌 의(義)는 맹자(孟子)께서 비방하였으니, 인과 의가 과연 정명이 있겠는가? 인이 아니면서 인(仁)의 이름이 있고, 의가 아니면서 의(義)의 이름이 있으니, 진실로 그 이름을 가지고 그 실상을 깎아 내릴 수 없는데, 도와 덕만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덕은 길(吉)하지 아니함이 없으나 흉하면서 덕이라 하는 것은 덕 아닌 덕이니, 어찌 덕 아닌 덕으로써 덕과 혼동하여 덕이라 이를 수 있겠는가?
선유(先儒)들은 논하기를, “한자는 머리 없는 학문을 했다.” 하였으니, 격물(格物)과 치지(致知) 공부를 빠뜨렸음을 말한 것이다. 격물과 치지를 하지 못하고, 갑자기 도와 덕의 뜻을 이야기하려 하니 말이 어찌 허물이 없겠으며, 이치가 어찌 가려워짐이 없겠는가? 어떤 이가 이르기를,
“한자가 이 말을 한 것은 대개 노자(老子)를 공격하기 위한 것이다. 노자는 도와 덕을 말하면서 인과 의를 비방한 까닭에 한자(韓子)가 이것을 공격하여 ‘우리가 말하는 도와 덕이 아니다.’라고 하였으니, 그 뜻은 대개 노자의 도와 덕은 흉하다 하고 우리 유가(儒家)의 도와 덕은 길(吉)하다 하는 것으로, 이것은 또한 뜻이 통하는데 그대는 어찌 이를 심하게 비난하는가?” 하기에,
내가, “그건 그렇지만 한자가 만약 노자를 공격하려면 바로 ‘도와 덕에 어그러졌다.’고 하면 된다. ‘도와 덕에 어그러졌다.’고 말하면 그 잘못이 드러나고 공격한 것이 지극해진다. 그러니 어찌해서 꼭 스스로 그 덕을 훼손시켜 함께 순수하지 못한 데로 돌아가게 해야 되겠는가? 또 덕에 길흉이 있다 해 놓고 노자의 덕을 흉하다고 하는 것은 노자도 오히려 덕의 반쪽을 얻은 것이어서 우리도 온전한 덕을 얻지 못한 게 되니, 이것은 우리를 높이고 저들을 굽히는 것이 아니다. 도와 덕의 큰 뜻을 잃어 놓고, 또 우리를 높이고 저들을 낮춘 것도 없으니, 나는 그것이 옳은 줄을 모르겠다. 한마디 말 실수가 이치에 해를 끼침이 이와 같으니, 나는 이것을 변론하지 않을 수 없다. 한자가 다시 살아난다 하더라고 반드시 내 말을 따를 것이다.” 라고 응답하였다.
-장유(張維), '무두지학(無頭之學)', '한 계곡 장유 문[韓張谿谷文]', 『여한십가문초 제3권』-
*역자註:
1)한자(韓子)의 원도(原道) : 한자는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인 당(唐) 나라의 한유(韓愈)를 말한다. 그의 문집인 《한창려전집(韓昌黎全集)》 제11권 잡저(雜著)에 보인다.
3)송양(宋襄)의 인(仁) : 송 양공(宋襄公)이 제후(諸侯) 중에 패자(覇子)가 되고자 하여 초(楚) 나라와 싸울 때 공자(公子)인 목이(目夷)가 적이 포진하기 전에 공격하자고 청하였으나, 양공은 군자는 남이 곤궁에 빠져 있을 때 괴롭혀서는 안 된다고 하여 치지 않다가 마침내 초에게 패망을 당하였다. 세인이 이를 비웃어 ‘송양지인(宋襄之仁)’이라고 하였다. 쓸데없이 너무 착하기만 하고 권도가 없음을 비유하는 데 쓰인다. 《十八史略 春秋戰國》
4)부인(婦人)의 인(仁) : 항왕(項王)이 남자로서 부인처럼 과단성이 적은 것을 두고 한 말이다. 한신(韓信)이 이르기를, “항왕(項王)은 사람을 접대할 때 공경자애하며 그 말도 인정이 넘치며, 누가 병에 걸리면 눈물을 흘리고 음식을 나누어 먹으나 일단 휘하에 있는 이가 공을 세워 봉작(封爵)을 해야 할 때는 그 인수(印綬)가 닳도록 손에 쥐고서 내놓지 않으니, 이것은 세상에서 말하는 부인지인(婦人之仁)이다.”라고 하였다. 《史記 淮陰侯列傳》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이지형 (역) ┃ 1977
"배우는 이가 그 참뜻을 얻지 못하고 오직 말에 구애된다. 그래서 꽉 막혀 마침내 한쪽으로 치우침에 빠지니, 이것이 군자(君子)가 입언(立言, 바른 논리를 세워 옳은 말을 밝히는 것 )하기가 어려운 이유이다.[學者不得其意(학자부득기의) 而惟言之拘(이유언지구)故膠固滯泥(고교고체니) 卒陷於一偏(졸함어일편)此君子所以難於立言者也(차군자소이난어입언자야)] "(장유, 위의 글)
"추측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 자는 다만 자기의 추측만 가지고 편벽되고 가려진 병통을 제거하지 못하며, 남과 내가 같은 점을 미루어 통달하지 못하고, 알 수 없는 것은 억지로 끼워 맞춘다. 따라서 밝은 것이 도리어 어둡고, 말이 많을수록 더욱더 틀려진다.....한갓 옛사람들의 일체로 삼으라는 말만 전해 듣고 자기 마음에 일치되는 생각만을 배포(排布)하게 되면, 실제 행동으로 나올 때는 삼분오열(三分五裂)로 나뉘어 갈피를 잡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쉽게 외물(外物)에 흔들리거나 편벽되는 것이니, 이것은 의거할 준칙(준거틀)과 따라갈 법도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소견을 가진 자를 선발하게 되면, 오직 자신의 이익만을 도모하고 다른 사람에게 폐해를 주는 것은 조금도 생각하지 못하게 된다."(최한기 1803~1877, 氣測體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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