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무고한 죽음은 하늘이 갚아 준다
무고한 죽음은 하늘이 갚아 준다
남을 괴롭히는 자가 더할 수 없는 괴로움을 주고 나서 만족스럽게 여기자, 곁에서 보고 있던 자가 경계하기를,
“너무 심하게 하지 마라. 지나치면 반드시 보복이 되돌아올 것이다.”
하고, 이어서 괴로움을 당하는 자를 위로하였다.
“심하게 괴롭힌다고 걱정하지 마라. 죽을 지경에 이르면 살아날 것이다.”
괴롭히는 자가 말하기를,
“죽으면 어떻게 됩니까?”
하자, 대답하였다.
“죄 없이 죽이면 하늘이 대신 갚아 줄 것이다.”
왕연(王衍)이 후당(後唐)에 항복하자 후당 장종(莊宗)이 조서를 내려 위로하며 말하였다.
“정말 땅을 나누어 봉해 주고, 반드시 험한 곳으로 내몰지는 않겠다. 하늘에 맹세코 한마디 말도 속이지 않으리라.”
왕연은 조서를 믿고서 모든 족인(族人)들을 데리고 동쪽으로 갔으나, 장종은 도리어 뜬소문을 믿고 그들을 도중에서 멸족시켰다. 그런데 왕연의 피가 마르기도 전에 장종의 종족들도 멸족되었다. 왕연은 나라를 망쳤으니 참으로 죄가 있는데도 오히려 하늘이 보복해 주었는데, 하물며 죄 없이 죽은 이의 경우에는 어떻겠는가.
인간이 짐승만도 못한 점들
사람이 짐승만 못한 점이 많다. 짐승은 교미하는 데 때를 가리지만 사람은 때를 가리지 않는다. 짐승은 같은 무리가 죽은 걸 보면 슬퍼하지만 사람은 남을 죽이고도 통쾌히 여기는 자가 있고, 간혹 남의 화를 요행으로 여겨 그 지위를 빼앗기도 하니 짐승이라면 이런 짓을 하겠는가. 화가 되돌아오는 것은 당연하다.
사람이 개보다 낫다고 말할 수 있나
개는 사람이 뒷간에 올라가는 것을 보면 곧바로 몰려들어 사람이 대변보기를 기다렸다가 재빠른 놈은 먼저 달려들고 약한 놈은 움츠린다. 화가 나면 서로 물어뜯고 즐거우면 서로 핥아 대기도 하는데 다투는 것은 오직 먹이 때문이다. 그 모습을 보고 누군들 추하게 여겨 비웃지 않겠는가. 그러나 사람이 밥그릇을 다투는 것도 개와 다를 바가 거의 없으니, 엄자릉(嚴子陵 엄광(嚴光))이나 소 강절(邵康節)이 살아 있다면 밥그릇을 놓고 다투는 사람들을 사람이 개 쳐다보듯 혐오했을 것이다.
아침에 뒷간에서 돌아오다가 그 때문에 한 번 웃고는 기록한다.
그러나 사람이 개보다 못한 점이 사실 많다. 교미는 반드시 발정할 때만 하는데 사람이 그렇게 할 수 있는가? 도둑 경계하기를 귀신처럼 하는데 사람이 그렇게 할 수 있는가? 먹여 주면 은혜를 알고 보답은 의리로 하는데 사람이 누구나 다 그렇게 할 수 있는가? 또 그 때문에 한 번 탄식한다.
사람보다 의리 있는 짐승
양은 천성이 어질다. 희생(犧牲)이 되어 사당에 들어갔을 때 재부(宰夫)가 끓는 물을 퍼 담고 칼을 닦고는 그중에 살진 놈을 도마에 올리면 보조 희생은 제 짝이 죽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는 희생을 담당한 자가 끌고 나와도 도마에 기어 올라가 눈물을 비 오듯 흘리며 슬피 울면서 차마 버리고 떠나지 못한다. 양이 자기 동류의 죽음을 측은해하는 것이 이와 같으니 사람이 부끄럽지 않겠는가.
내가 흥해 군수(興海郡守)로 있을 때 성의 문루가 거의 무너졌기에 허물어 버리고 수리하는데, 그곳에 살던 뱀 한 마리가 서까래를 빙빙 감고서 옮겨가지 않고 도끼가 번갈아 내리치는데도 겁내는 기색이 없었다. 나는 일꾼들에게 뱀을 다치게 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고서 탄식하며 말하였다.
“죽음으로 관직을 지키기를 저 뱀처럼 해야 한다. 난리에 임해서 이 뱀에게 부끄러울 자가 많을 것이다.”
또 들에 구렁이 한 마리가 죽어 있었는데 다른 구렁이 한 마리가 그 옆에서 뒤따라 죽었다. 아마도 먼저 죽은 뱀의 짝인 듯하니, 누가 구렁이를 음탕한 추물이라고 하겠는가. 강가에서 주살 놓는 자가 저구새를 잡아서 삶고 있었는데 그 새의 짝이 공중을 빙빙 돌다가 끝내 펄펄 끓는 솥으로 떨어져 함께 죽었다. 새나 짐승이 의리를 앎이 도리어 사람보다 훨씬 뛰어나니 참으로 가슴 아프다.
-<성대중(成大中,1732~1809) 청성잡기/성언(醒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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