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내가 옳다는 마음을 갖지 말라
사람의 얼굴을 관상(觀相)하는 것은 사람의 말을 들어 보는 것만 못하고, 사람의 말을 들어 보는 것은 사람의 일을 살펴보는 것만 못하고, 사람의 일을 살펴보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 보는 것만 못하다.
자그마한 은혜와 임시방편적인 정치는 군자가 잘할 수 없고, 자신을 뽐내는 행동과 너무 지나친 논의는 군자가 하지 않는다. 나약은 어진 것처럼 보이고, 잔인은 의로운 것처럼 보이며, 탐욕은 성실한 것처럼 보이고, 망언은 강직한 것처럼 보인다. 권세를 좋아하는 사람은 반드시 명예를 구하고, 명예를 구하는 사람은 반드시 이익을 탐한다.
안숙화(安叔華 안석경(安錫儆) )가 말하기를, “재물을 탐하고 여색을 좋아하는 것은 인(仁)의 폐단이고, 잔인하고 각박한 행동은 의(義)의 폐단이고, 교묘한 말과 아첨하는 얼굴빛은 예(禮)의 폐단이고, 권모술수는 지(知)의 폐단이고, 고집스럽고 편벽된 행동은 신(信)의 폐단이다.” 하였다.
군자는 남의 선을 드러내기를 좋아하고 소인은 남의 악을 드러내기를 좋아한다. 현달한 사람은 항상 남도 현달하기를 바라고 곤궁한 사람은 항상 남도 곤궁하기를 바란다. 훌륭한 사람은 남의 장점을 듣기를 좋아하고 용렬한 사람은 남의 단점을 듣기를 좋아한다. 여유가 있는 사람은 항상 남을 칭찬하고 부족한 사람은 항상 남을 헐뜯는다. - 내가 일찍이 말하기를, “나보다 나은 사람을 사모하고 나와같은 사람을 사랑하고 나만 못한 사람을 가엾게 여기면 천하가 태평할 것이다.” 하였다.
좋아함은 부러움을 낳고, 부러움은 시기심을 낳고, 시기심은 원수를 만든다. 그러므로 좋아하는 마음이 원수로 변하는 것이 손바닥을 뒤집는 잠깐 사이에 이루어질 뿐이다. 옛날에 좋아하고 싫어함을 밝힌 것은 사정(邪正)을 분별하기 위해서였고, 오늘날 좋아하고 싫어함을 밝히는 것은 은원(恩怨)을 통쾌하게 갚기 위한 데 불과하다. 상대편을 물리치고 자기편을 끌어들이는 정치는 항상 호오(好惡)에 치우친다. 그러므로 당화(黨禍)가 뒤따른다.
노불(老佛)을 믿으면서 잘 배우면 급장유(汲長孺 급암(汲黯) )같이 직간을 잘하는 사람과 장구성(張九成)같이 방정한 사람이 되며, 유도(儒道)를 행하면서 잘 배우지 못하면 공손홍(公孫弘)같이 충성을 가장하는 사람과 왕개보(王介甫 왕안석(王安石) )같이 고집스러운 사람이 된다.
학문이 실용에 맞지 않으면 그런 학문은 하지 않는 것이 낫고, 문장이 세교(世敎)에 보탬이 없으면 그런 문장은 하지 않는 것이 낫다. 몸을 편안히 가지고 심성을 수양해 천명을 지키는 데는 책을 읽고 이치를 궁구하는 것이 가장 좋다. 문장으로 세상을 빛내려다가 혹 과장(誇張)에 빠져 잘못되기도 하고, 언론으로 세상을 붙잡으려다가 혹 과격(過激)에 빠져 잘못되기도 한다.
심성(心性)에 대한 논의는 귀신을 그리는 것과 같고, 문장에 대한 논의는 산수를 그리는 것과 같고, 정사(政事)에 대한 논의는 인물을 그리는 것과 같다.
패망하려는 집은 사람들을 깔보고, 멸망하려는 집은 임금을 깔보며, 패망하려는 나라는 현인을 깔보고, 멸망하려는 나라는 하늘을 깔본다.
곤경에 처해서는 형통한 듯 여기고, 추한 사람 보기를 고운 사람 보듯 하라. 눈앞에 미운 사람이 없고 마음에 불평한 일이 없는 것이 평생의 지극한 즐거움이다.
남의 비밀을 살피지 말고, 남의 재주를 가리지 말며, 남이 나에게 극진히 잘하기를 바라지 말고, 남이 나에게 충성을 다하기를 바라지 말라. 경계할 때에는 겁을 주지 말고, 권면할 때에는 과격하게 하지 말라. 마음을 비워서 꼭 해야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바로잡아 주되 내가 옳다는 마음을 갖지 말라.
화는 입에서 생기고, 근심은 눈에서 생기고, 병은 마음에서 생기고, 허물은 체면에서 생긴다. 다스릴 수 없는 세상은 없으니 나의 학문이 부족한 것이 걱정이고, 감화시킬 수 없는 사람은 없으니 나의 정성이 부족한 것이 걱정이다.
※[역자 주]
1.질언(質言) : 자신의 생각을 사실 그대로 단정해서 하는 말이란 뜻으로 오늘날의 격언과 비슷하다. 저자의 체험과 사색에서 우러난 독특한 내용을 담은 대구 형식의 120여 항목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성대중(成大中: 1732~1809), 『☞청성잡기(靑城雜記) 제2권 /질언(質言)』중에서 발췌정리 -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김종태 (역) |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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