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올바른 본성에 맞게 사는 일
모든 물건은 속이 다 채워져 있는데 뱃속만은 비어 있어서 먹은 뒤에야 채워진다. 그런데 반드시 하루에 두 번은 먹어야 하니, 아침에 채워 넣은 것은 저녁이면 비고 저녁에 채워 넣은 것은 아침이면 비게 된다. 부드러운 것이나 딱딱한 것이 모두 뱃속으로 들어가니, 독해서 먹지 못하는 것은 약으로 만들어 병을 치료한다. 이것저것 아무거나 먹어서 세상의 재앙이 되니, 그 발단이 되는 것은 배만 한 것이 없다.
그러나 조물주가 세상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이 실로 여기에 달려 있으니, 이것이 없다면 하늘이 어떻게 사람을 제어할 수 있으며 임금이 어떻게 백성을 부릴 수 있겠는가. 열자(列子)가 말하기를, “사람이 입고 먹지 않으면 군신 간의 도가 종식된다.” 하였으니 어찌 군신 간뿐이겠는가. 오륜의 도도 아울러 종식될 것이다. 어찌 저 금수를 보지 않는가. 떼 지어 살고 짝 지어 지낼 뿐이다.
-만물이 제때를 만난 것이 사람에게는 피해가 된다. 벼룩이나 전갈이 사람을 물어뜯을 때 어찌 사람의 괴로움을 알겠는가. 그저 제때를 만난 것뿐이니 맹수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므로 잡초가 때를 만나는 것은 곡식의 해악이고, 참새나 쥐가 때를 만나는 것은 창고의 해악이며, 소인이 때를 만나는 것은 군자의 해악이고, 오랑캐가 때를 만나는 것은 중국의 해악이다. 이런 식으로 따져 나가면 해가 되는 것들을 일일이 헤아릴 수 있겠는가.
하늘은 이들을 모두 같이 길러 주는데 성인이 적절하게 조정하여 너무 성한 것을 억제해서 그 해악을 제거한다. 뿐만 아니라 그것들이 사람에게 쓰일 수 있도록 유도하였다. 허나 이는 그 본성에는 어긋나는 것이니, 소의 코를 뚫고 말에 굴레를 씌워 옭아매며 새매에 줄을 매달아 사냥하는 것이 어찌 그들의 본성에 맞는 일이겠는가.
-주색을 즐기는 자와는 명리(名利)를 논할 수 없고, 명리를 위해 몸을 바치는 자와는 공업(功業)을 논할 수 없고, 공업을 세우려는 자와는 문장을 논할 수 없고, 문장으로 유명해지려는 자와는 도덕을 논할 수 없다.
-이름난 벼슬을 하는 것을 영광으로 여기고 배부른 관리가 되는 것을 즐거움으로 생각하면 세도(世道 사회)가 혼탁해진다. 이름난 벼슬을 하는 것을 근심으로 삼고 배부른 관리가 되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하면 세도가 좋아진다. 정재(定齋) 박태보(朴泰輔)가 옥당(玉堂)에 있었는데 군문(軍門)에서 그를 낭관(郞官)으로 부르자, 정재는 무인에게 치욕을 당했다 하여 소(疏)를 올리고 바로 나가 버렸다. 사대부가 이와 같이 명분과 절개에 힘쓴다면 세상이 어찌 깨끗해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남을 곤경에 빠뜨려 호기를 부린다면 남 역시 나를 곤경에 빠뜨려 호기를 부릴 것이다. 남의 것을 빼앗아 이익을 취하면 남 역시 나의 것을 빼앗아 이익을 취할 것이다. 남을 죽여 공을 세우면 남 역시 나를 죽여 공을 세울 것이다.
-나를 치는 도끼는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내가 남을 쳤던 도끼이며, 나를 제압하는 몽둥이는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내가 남을 제압했던 몽둥이이다. 내가 남에게 가해할 때에 계략이 교묘하고 술책이 치밀해도 어느 순간에 도리어 상대방이 유리하게 되어 마치 내가 나를 포박하는 꼴이 되니 지혜도 용기도 아무 소용이 없게 된다.
그러므로 남이 나를 치지 않기를 바란다면 먼저 내 도끼를 버리고, 남이 나를 제압하지 않기를 바란다면 먼저 내 몽둥이를 버려야 한다. 남을 해치려는 마음이 사라지는 순간 온갖 해로움이 모두 사라지게 되고, 남에게 화를 입히려는 마음이 일어나는 순간 온갖 재앙이 모두 불같이 일어나게 된다.
-성대중(成大中, 1732∼1809), 청성잡기(靑城雜記) 제4권 / 성언(醒言, 사람을 깨우치는 말) 중에서 발췌-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김혜경 오윤정 (공역) ┃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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