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사지백체가 서로 높음을 다투다
머리가 발꿈치에게 그 높음을 자랑하여 말하기를, “온몸이 나를 높이고 그대는 또 몸의 아랫부분이니, 그대는 나의 종이 아닌가?” 하자, 발꿈치가 말했다.
“그대는 하늘을 이고 있고 나는 땅을 밟고 있으니, 그대는 오히려 이고 있는 것이 있지만 나는 땅을 밟고 있으면서도 감히 무시하지 않는데, 그대는 어찌 홀로 스스로를 높이는가? 온몸이 그대를 높이는 것은 내가 받들어 주기 때문인데, 나의 공(功)을 잊고 도리어 나를 천대한단 말인가? 그대가 높은 것을 자랑한다면 그대 또한 아래에 있을 때가 없겠는가?” 이 말을 들은 머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입이 항문을 꾸짖어 말하기를, “나는 밥을 먹고 그대는 더러운 것만을 배설하니, 그대와 한 몸인 것이 나는 실로 부끄럽다.”하자, 항문이 말했다.
“그대에게 음식 먹기 편하게 해주는 자가 바로 나이니, 내가 만약 하루라도 막힌다면 그대가 어떻게 음식을 먹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침과 가래가 모두 변의 일종인데, 그대는 그것을 다 토해 내면서도 도리어 나만 더럽다고 하는가?” 이 말을 들은 입 역시 다시 말을 잇지 못하였다.
이에 귀와 눈이 앞 다투어 일어나 자랑을 하는데, 눈이 말하기를, “오장(五臟)의 빼어난 기상을 갖추고 얼굴 높은 곳에 처하여 해와 달이 서로 밝게 걸린 것과 같으니, 밝음을 누가 나와 겨룰 수 있겠는가.” 하자, 귀가 말하기를,
“눈 밝음은 참으로 아름답지만 듣지 못하면 어찌 귀가 밝을 수 있겠는가. 분분한 온갖 소리가 다 나에게 모이니, 나보다 더 높은 자는 없다.” 하니, 코가 말했다.
“귀 밝고 눈 밝은 것은 진실로 아름다운 듯하지만 그윽하게 깊고 움푹 파인 것은 그대들이고, 나는 오뚝하게 높아 그대들을 내려다본다. 좋고 나쁜 냄새가 나를 피하지 못하니, 그대들이 이렇게 할 수 있는가? 그러고도 스스로 뽐내고 있으니, 다만 자신의 작음을 보일 뿐이다.” 그러자 눈썹이 말하기를,
“코가 오뚝함과 눈이 높이 있는 것을 나는 흠모하지만 그대들보다 위에 있는 것이 내가 아닌가.” 하고, 머리털이 말하기를, “머리보다 높은 것이 나이니 나는 참으로 어느 누구보다도 높은데, 눈썹도 스스로 높다 할 수 있는가.”하고, 수염이 말하기를, “남자보다 더 높은 것이 없는데 내가 실로 남자를 표상하니, 눈썹과 머리털이 이렇게 할 수 있는가.” 하였다.
이에 좌우의 손과 발이 함께 비웃으며 말하기를,“그대들은 무엇 때문에 다투는가? 우리는 길이가 서로 비슷하고, 관절이 서로 나란하며, 움직이고 쓸 때에 서로를 필요로 하고, 가고 멈출 때에 서로 의지하니, 형제간도 우리만 못하다. 그런데도 그대들은 이것을 본받지 않는가.” 하자, 심장이 안에서 비웃으며 말했다.
“그대들이 참으로 형제처럼 우애롭긴 하지만 어찌 서로 원수 될 때가 없겠는가. 오른손에 화(禍)를 주어 왼쪽 팔꿈치를 찌르게 하고, 오른발을 노엽게 하여 왼쪽 넓적다리를 차게 하면 오른쪽 손발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왼쪽도 오른쪽과 똑같으니, 그대들을 형제가 되게 하고 원수가 되게 하는 자는 누구인가? 또한 입이 음식을 먹고, 항문이 오물을 배설하며, 눈이 보고 귀가 들으며, 코가 온갖 냄새를 맡는 것은 모두 누가 시키는 것인가? 그런데도 그대들 각자의 공(功)이라 여기는가. 진실로 그렇다면 치아와 손톱ㆍ발톱인들 어찌 몸에 공이 없겠는가.” 피부가 물끄러미 심장을 바라보고 웃으며 말했다.
“심장이 진실로 몸의 주인이지만 내가 없다면 심장이 어떻게 몸 안에 있을 수 있겠는가. 심장뿐 아니라 모든 뼈, 여섯 개의 장기, 아홉 개의 구멍, 혈기, 기생충, 대소변, 근육, 경락을 내가 다 싸고 있으니, 나는 쓸모없는 것을 쓸모 있는 것으로 만드는 자이다. 심장을 도려내어 밖에 내버리고 눈을 파내어 밖에 둔다면 어찌 눈이 밝고 심장이 신령할 수 있겠는가. 귀와 코는 텅 빈 구멍이니, 내가 없다면 어떻게 붙어있을 수 있겠는가. 머리털ㆍ눈썹ㆍ수염은 또 어떤가. 이런데도 나는 내 공이라고 한 적이 없는데, 그대들은 자질구레한 것을 뽐내고 있으니 참으로 못났다. 그러나 내가 그대들이 시끄럽게 떠드는 것과 자랑하는 것을 막지 못하니, 그대들이 나의 미련함을 업신여기는 것도 참으로 당연하다.”
정신이 점잖게 윗자리에 있다가 두루 가르쳐 말했다. “그대들은 높다고 자랑하지 말라. 자랑하면 반드시 업신여김을 받는다. 남의 약점을 들추어내지 말라. 들추어내면 반드시 노여움을 산다. 낮으면서 높은 이에게 대항하는 것도 화를 부르는 빌미이며, 아래 있는 것이 위에 있는 것을 능멸하고 위에 있는 것이 아래 있는 것을 병들게 하는 것이 모두 화를 자초하는 것이다. 그대의 눈 밝음을 믿지 말라. 눈 밝음이 저절로 가려져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대의 귀 밝음을 믿지 말라. 귀 밝음이 저절로 그대 몸을 얽맬 것이다. 물건이 냄새가 없다면 코가 어떻게 냄새를 맡을 수 있겠는가? 그대들이 스스로 높다고 여긴다면 어찌 그대들보다 높은 것이 없겠는가?
늘어진 머리털은 기(氣)이니, 어찌 스스로 잘난 체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그대 눈썹과 수염에 있어서이겠는가? 손발의 온갖 움직임은 오직 마음의 명령을 듣는데 천군(天君 마음)이 지위를 낮추어 저들과 뽐내며 다투는구나. 다투는 기운이 한번 생기면 온갖 유순한 것들이 모두 강경해져서 미련한 피부도 말을 함부로 지껄인다. 미련한 피부와 지혜로운 마음이 잘잘못이 똑같으니, 비록 서로를 잘 분석하더라도 한갓 그 몸을 해칠 뿐이다. 자신의 높음을 스스로 해치니 무엇이 마음만큼 슬프겠는가? 어찌 그대 집으로 돌아가 담담히 스스로 지키지 않는가? 타고난 분수를 지키면 온몸이 마음의 명령을 따를 것이다.”
원중랑(袁中郞)의 《광장(廣莊)》을 모방하였으나 비교적 질박하다.
**역자 주: 원중랑(袁中郞) : 중랑은 원굉도(袁宏道)의 자이다. 명나라 사람으로 공안(公安) 출신이며, 호는 석공(石公)이다. 공안체(公安體)의 창시자로 《원중랑집(袁中郞集)》이 있다.
-성대중(成大中, 1732∼1809), '사지백체(四肢百體)의 공로 다툼', 청성잡기 제3권/성언(醒言)-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윤미숙 김용기 (공역) ┃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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