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버려두면 돌이요 사용하면 기물이다
여종이 밭에서 땅을 파다가 흙덩이 같은 한 물건을 얻었다. 두드려 보니 돌 소리가 나기에 흙을 벗기고 이끼를 긁어내니 작은 돌솥이었다. 자루는 3촌(寸) 길이이고 용량은 두 되 남짓 되었다.
모래로 문지르고 물로 씻어내니, 광택이 나고 깨끗한 것이 사랑스러웠다. 내가 자리 곁에 두게 하고 차와 약을 달이는 도구로 삼았으며, 때로 손으로 어루만지며 장난삼아 말하기를,
“돌솥아, 돌솥아. 하늘과 더불어 돌이 된 지가 몇 해이며, 솜씨 좋은 석공이 다듬어 솥으로 만들어 인가에 사용된 지는 또 몇 해인가. 흙 속에 묻혀 세상에 쓰이지 못한 지 또 몇 해 만에 이제 내 손에 들어왔느냐. 아! 돌이란 것은 사물 중에서 가장 천하고 둔한 것인데도 세상에 숨겨지고 드러나는 데에 운수가 없을 수 없는 것이 이와 같다. 그런데 하물며 가장 귀하고 가장 신령한 사람이야 말할 나위 있겠는가.” 하였다.
이에 명(銘)을 지어서 새기노라. 돌솥을 얻은 날은 을미년(1595, 선조28) 정월 16일이고, 명을 새긴 날은 그달 23일이다. 그 명은 다음과 같다.
버려두면 돌이요 / 捨則石(사즉석)
사용하면 기물이로다 / 用則器(용적기)
-권필(權韠, 1569~1612), '고석당명(古石鐺銘)', 『석주집(石洲集) 외집 제1권』-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이상하 (역) ┃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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