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사회적 교제에 대하여
<퇴계집의 언행록은 퇴계 이황선생 제자들의 증언을 기록한 글이다. 이글은 '교제(交際)'에 관한 제자들의 증언으로 엮어져 있다. >
선생은 사람을 대함이 매우 너그러워, 큰 허물이 없으면 끊어 버리지 않고 모두 용납하여 가르쳐서 그가 스스로 고쳐 새롭게 되기를 바랐다. 선생은 사람을 대할 때 얼굴에 감정을 나타내지 않았다.
영천 군수 이명(李銘)은 본래 사납고 거만한 사람이었다. 일찍이 선생을 찾아뵐 때 방자하고 무례하여 재채기하고 가래침 뱉기를 태연스럽게 하며, 병풍의 서화를 손가락질해 가며 하나하나 평론하였으나, 선생은 그저 따라서 대답할 뿐이었다. 곁에서 모시고 앉은 사람들은 모두 불쾌한 빛을 띠었지만, 선생은 얼굴에 조금도 그런 눈치를 나타내지 않았다.
녹사(錄事) 양성의(梁成義)란 사람이 본 고을의 현감이 되었는데, 선비들이 모두 그 사람됨을 천하게 여겼지만, 선생은 그를 백성의 주인이라 해서 예의를 다하였으며 오래갈수록 더욱 공경하였다. 그러나 양성의는 도리어 지방 수령이라는 지위를 빙자하여 으스대었다. 한번은 그가 어량(漁梁)에 와서 사환을 시켜 선생을 청했는데, 그 말이 매우 거만하였다. 선생이 병이라 사양하고 자제를 시켜 가 보게 하였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괘씸히 여기고 분하게 여겼지만, 선생은 끝내 그 잘못을 말하지 않았다. -김성일(金誠一)
감사 강사상(姜士尙)이 도산으로 선생을 찾아왔다가 떠나간 뒤에, 명일(明一) 등이 곧 들어가 뵈니, 그 자리에 고을원이 있었다. 술상을 차려 와서 술이 반쯤 되자 선생이 이르기를, “내 오랫동안 손님 영접 하는 일은 그만두고자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하면서, 시(詩) 한 수를 내어 보였는데,
"깊은 산속에 쓸쓸히 살아가는 나 / 寒事幽居有底營
꽃 심고 대[竹] 길러 여윈 몸 보전하오 / 藏花護竹攝羸形
찾아온 손님께 은근히 한 말씀 드리오니 / 慇懃寄謝來尋客
한겨울 사람 접대 앞으론 끊을라오 / 欲向三冬斷送迎" 하였다.
선생이 말하기를, “이 글은 내 뜻을 말한 시로서, 남들이 나를 너무 박정하다 할까 봐 남에게 차마 보이지 못한 것이었는데, 이제 내어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박정한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어서 토로한 진정(眞情)이다.”하였다. -김명일(金明一)-
손님에게 밥상을 차릴 때에는 반드시 집에 있고 없는 것에 맞춰서, 귀한 손님이라 해서 성찬을 차리지도 않고, 또 비천하고 어린 자라 해서 소홀히 하지도 않았다. 손님이 오면 항상 술과 밥을 내어 오는데, 반드시 미리 집안사람에게 일러서 준비하게 하고, 한번도 손님 앞에서 말하지 않았다.
문인이나 제자를 대접하기를 친구 대접하듯 하여, 비록 젊은 사람이라도 그를 가리켜 이름을 버리고 ‘너’라고 부르지 않았다. 맞이하고 보내며 주선할 때, 예절을 지켜 공경을 다하였고, 자리에 앉은 뒤에는 반드시 먼저 그 부형의 안부를 물었다. 친구가 죽으면 아무리 멀어도 자제를 보내어 제문을 가지고 가서 제사를 드리게 하였다. -김성일(金誠一)-
선생이 일찍이 이르기를, “사대부로서 서로 교제할 때 한 번 가면 한 번 오는 것은 예의로서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징사(徵士 학문과 덕행이 높아 조정의 부름을 받은 선비) 같은 사람은 이 예의를 차릴 수 없는 것이다. 중국의 오여필(吳與弼, 호는 강재(康齋)은 처사(處士 벼슬을 않고 민간에 있는 사람)로서 불리어 서울에 가서 살았는데, 사대부들이 찾아오면 반드시 찾아가서 답례를 했으므로, 하의려(賀醫閭, 이름은 흠(欽)이다.)는 이것을 매우 그르다고 한 것이다.” 하였다. -우성전(禹性傳)-
이덕홍이 묻기를, “손님이 찾아오면 노소(老少)와 귀천(貴賤)을 가리지 말고 마땅히 다 공경해야 합니까?” 하니, 선생이 답하기를,
“마땅히 공경해야 한다. 다만 대접하는 데는 도리가 있다. 주자가 거만함에 대해 논한 말에 ‘거만함이 흉덕(凶德)이 되는 까닭은, 바로 거만한 마음을 먼저 가지고 상대를 고려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다 거만하게 대하기 때문이다. 거만하게 대할 만한 사람이라서 거만하다면, 이것은 사람의 보편적인 정리(情理)상 그럴 수 있는 것이요, 또 사리상 당연한 것이다.
이제 여기에 어떤 사람이 그 친분이나 사귄 햇수가 친하여 사랑할 만하지 못하고, 그 지위와 덕이 두려워 공경할 만하지 못하며, 그 곤궁함이 불쌍히 여길 만하지 못하고, 그 악함이 천하게 여길 만하지 못하며, 그 말이 버리거나 취할 만한 것이 없고 그 행실이 시비할 만한 것이 없다면, 사람들은 그를 예사로 보아 길 가는 사람을 보듯 하고 말 것이다.'하였다.
이렇게 본다면 대개 사람을 대접하는 도리는 각기 그 사람 자신에 달린 것이니, 어떻게 노소와 귀천을 가리지 않고 모두 공경할 수 있겠는가? 다만 미리부터 업신여겨 거만한 마음을 가지는 것도 또한 옳지 않다. 황효공(黃孝恭)은 비록 비천한 사람이라도 반드시 대문 밖에 나가서 맞고 보냈는데, 그것은 또 지나친 짓이다.”하였다.
이덕홍이 묻기를, “어떤 이가 말하기를, ‘집안 어른이 저를 시켜 밖에 나가 손님을 맞이하게 하면, 제가 나가서 손님에게 절하지 않고, 손님이 들어와 자리에 앉은 뒤에 절을 하는 것이 예(禮)이다.’ 하니 옳습니까?” 하니, 선생이 이르기를, “그렇지 않다. 내가 어른을 대신해서 손님을 맞이하는데, 절을 하지 않은 것은 의(義)에 있어서 온당치 않은 일이다. 만일 어른이 직접 나가 맞이한다면, 우선 잠깐 피하여 절하지 않는 것은 옳다.” 하였다.
이덕홍이 묻기를, “공자의 말에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친구로 삼지 말라.’라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자기보다 못한 사람과는 일절 사귀지 않아야 하겠습니까?” 하니, 선생이 이르기를, “보통 사람의 정(情)은 자기보다 못한 사람과 벗하기를 좋아하고 자기보다 나은 사람과는 벗하기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공자께서 이런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이지, 일절 벗하지 말라고 한 것은 아니다. 만일 한결같이 착한 사람만 가려서 벗하고자 한다면 이 또한 편벽된 일이다.” 하였다.
“그렇다면 악한 사람과 사귀다가 점점 그 속에 빠져들면 어찌합니까?” 하니, 선생이 이르기를, “선은 따르고 악은 고칠 것이니, 선과 악이 모두 다 내 스승이다. 만일 점차 악에 휩쓸려 빠져든다면, 학문은 무엇 때문에 하는 것인가?” 하였다. -이덕홍(李德弘)-
-'교제(交際)', 퇴계집(退溪集)/ 퇴계선생문집 제 41권/ 언행록(言行錄) 3/ 유편(類編)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권오돈 권태익 김용국 김익현 남만성 성낙훈 안병주 이동환 이식 이재호 이지형 하성재 (공역) ┃ 1968
“옛사람의 말에 ‘감히 자기를 믿지 못하겠거든 스승을 믿어라.’ 하였다. 그런데 지금에는 믿을 만한 스승이 없으니, 성현의 말을 믿어라. 성현은 사람을 속이지 않는다... 소인은 명성이 실제보다 지나쳐서 무엇이든 만족하게 여겨 자만하는 것이니, 그것이 곧 근심이다.” -퇴계 이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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