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무진육조소 (戊辰六條疏)

숭정대부(崇政大夫)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신 이황은 삼가 재계하고 두 손 모아 머리를 조아리며 주상 전하께 아룁니다. 신은 초야의 미거한 몸으로써 재목이 쓸모없고 나라를 제대로 섬기지도 못해 향리에 돌아와 죽기나 기다렸는데, 선조(先朝)께서 잘못 들으시고 여러 번 은혜로운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그런데 전하에 이르러 이 잘못된 일을 되풀이하심이 갈수록 융숭해지더니 금년 봄에 관계(官階)를 뛰어넘어 제수하신 데 이르러서는 더더욱 듣기에 놀라웠으므로 신은 벼락 같으신 위엄을 범하여 감히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사퇴하였습니다. 비록 이미 은혜로 너그러이 보살펴 주시어 낭패는 면하였으나 벼슬의 품계는 고쳐 주지 아니하시어 여전히 분수에 넘칩니다.

 

게다가 신이 늙고 병들어 벼슬살이를 감당할 정력도 없는데 외람되게 높은 반열을 차지하여 더욱 부끄럽고 송구하니, 분수 아닌 자리에 오래 앉아 성조의 수치가 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신이 이번에 외람되이 은총을 입은 것이 몹시도 특별하니, 신이 비록 계책에 어둡긴 하지만 정성을 다하여 어리석은 생각을 바치고자 합니다. 


또 입으로 진술하면 정신이 어둡고 말이 어눌해서 한 가지를 들고 만 가지를 빠뜨릴까 염려되어, 이에 감히 문자로 뜻을 전달합니다. 글을 지어 추론해서 6조로 나눈 것을 전하께 바치오니, 비록 감히 티끌만큼이라도 도움이 있기를 바랄 수는 없사오나 혹 가까이 두고 경계의 말씀으로 삼는 데 약간이나마 보탬이 되지 않겠는지요?


첫째, 계통(繼統)을 중히 하여 인효(仁孝)를 온전히 하소서. 신이 듣건대 천하의 일이 군위(君位)의 일통(一統)보다 더 큰일은 없다 합니다. 무릇 막중한 계통을 아버지는 아들에게 전하고 아들은 아버지께 이어받으니, 그 일의 지극히 중대함이 어떻겠습니까. 예로부터 임금으로서 지극히 크고 막중한 계통을 계승하지 않는 이가 없지만, 능히 그 지극히 크고 막중한 뜻을 아는 이가 적어서 효(孝)에 부끄러움이 있고 인(仁)에 도리를 다하지 못하는 자가 많습니다. 정상적으로 계승하여도 오히려 그러하거늘 혹 방지(旁支,본체에서 갈려 나간 가닥)에서 양자로 들어와 계승한 임금의 경우는 인효의 도리를 다하는 이가 더욱 적어서 이륜(彝倫 사람으로서 당연히 지켜야할 도리)의 가르침에 대해 잘못을 저지르는 자가 더러 있으니, 어찌 깊이 두려워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아, 하늘에는 두 해(태양)가 없고 백성에게는 두 임금이 없고 집안에는 두 존장(尊長, 집안에 가장 나이많은 웃어른)이 없고, 상사(喪事)에는 두 참최복(斬衰服, 맏상주가 입는 상복)이 없습니다. 옛 성인이 본생가(本生家)의 은혜가 중하고 큼을 모르지 않건만 예법을 제정하여 남의 후사가 된 자로 하여금 그의 아들이 되게 하였습니다. 이미 그의 아들이 되었다면 인효의 도리는 마땅히 양가(養家, 양육해준 가정)에 오로지 해야 하고 본생 부모(낳아주기만 한 부모)의 은혜는 도리어 병립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인이 의를 세워서 본생가의 은혜를 감쇄하고 양가의 은혜를 융숭히 하여 후사가 된 의리를 완수하게 하였습니다. 《주역(周易)》에서는 “하나에 지극히 함[一致]”을 밝히고 《맹자》에서는 “근본이 둘인 것(二本)”을 경계하였으니, 권형(權衡)이 정해진 곳에 윤리의 법칙이 명백합니다. 하물며 방지로서 들어와 대통을 이음에 천명을 받아서 보위에 오르셨으니, 종묘사직의 부탁이 어떠하며 신민(臣民)들이 우러러 받듦이 어떠하겠습니까. 감히 사사로운 뜻으로 바꾸어서 후사가 된 곳에 융숭한 도리를 극진히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공손히 생각건대 주상 전하께서는 왕실의 지친인 중요한 신분으로서 선왕께서 미리 선택하신 명을 받아서 대통을 계승하여 천의(天意)와 인심이 일치되었습니다. 상중에 슬퍼하심이 극진하시고 대비를 섬기는 데 애경(愛敬)하심이 유감이 없으시어 무릇 선왕의 뜻과 일을 계승하시는 바가 지성(至性)에서 나오고 성심에서 말미암지 아니함이 없으시니, 인효의 도리에 있어 그 융숭함을 다하지 못할 걱정이 없습니다. 위로는 종묘와 사직의 신령으로부터 아래로는 신민(臣民)의 마음에 이르기까지 진실로 이미 모두 기뻐하고 서로 경하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마음이란 쟁반의 물을 엎지르지 않는 것보다 어렵고, 착함은 바람 앞에 촛불 보전하기보다 어렵습니다. 옛말에도 이르기를 “나무가 썩으면 벌레가 생기고 효도하는 마음은 처자 때문에 쇠해진다.” 하였습니다. 지금 전하의 마음은 물결이 일지 않는 물이나 먼지가 앉지 않은 거울과 같아, 인애(仁愛)의 마음이 뭉클뭉클 솟아 막히는 바가 없고 효순(孝順)의 행실이 순수하여 간단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훗날 이목을 가리는 것이 잡다하게 앞에 닥치고 애증(愛憎)을 미혹시키는 것이 아울러 일어나 날이 가고 달이 쌓이면서 예사로 되고 습관이 되면, 전하의 마음이 이런 상황에서도 외부의 유혹에 의해 바뀌지 않고 오늘날처럼 항상 심중에 우뚝하게 선을 주장하실 수 있겠습니까. 진실로 이와 같이만 할 수 있다면 많은 복을 받고 아무 걱정이 없겠지만, 혹 불행히도 전하의 마음이 한 번 저들에 의해 변화되면, 종묘를 받들고 대비를 받드는 마음이 자칫하면 어긋나고 태만하게 될 뿐만 아니라, 어떤 사람이 혹 편벽되고 사사로운 틈을 타서 정도에 어긋나고 의리를 무너뜨리는 말로 부추기고 영합하면 점차로 마땅히 높여야 할 바를 낮추고 마땅히 낮추어야 할 바를 높이는 데까지 이르게 되는 일이 반드시 없을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예로부터 방계에서 들어와 대통을 계승한 임금들이 대부분 떳떳한 가르침에 죄를 얻게 된 까닭이며 오늘날 지극한 경계로 삼으셔야 할 바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신이 감히 본생가에 박하게 하도록 전하를 인도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마땅히 높이는 데는 성왕의 정법(定法)이 이와 같고 마땅히 낮추는 데는 본받을 만한 선유(先儒)의 정론이 있어서, 한 번 높이고 한 번 낮추는 것이 바로 천리와 인륜의 극치이니 한결같이 이를 준수하여 조금이라도 사사로운 뜻을 거기에 섞지 않아야 인을 행하고 효를 행하는 것을 의논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입니다. 


그러나 효(孝)는 백 가지 행실의 근원이 되는 것이니 한 가지 행실이라도 어그러짐이 있으면 그 효는 순수한 효가 될 수 없으며, 인은 만 가지 선의 으뜸이 되는 것이니 한 가지 선이라도 갖추지 못하면 그 인(仁)은 온전한 인이 될 수 없습니다. 《시경》에 “시작이 없는 것은 아니나 제대로 끝맺음을 하는 경우가 드물다.” 하였으니, 오직 성명께서 유의하신다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둘째, 참소와 이간을 막아서 양궁(兩宮,  명종궁과 선조궁)을 친근하게 하소서. 신이 듣건대, 부모가 그 자식을 사랑하는 것을 자(慈)라 하고, 아들이 그 부모를 잘 섬기는 것을 효라 한다고 합니다. 효와 자의 도리는 천성에서 나와 모든 선의 으뜸이 되니, 그 은혜가 지극히 깊고 그 윤리가 지극히 무겁고 그 정이 가장 간절합니다. 지극히 깊은 은혜로 지극히 무거운 윤리를 따라 가장 간절한 정을 행하는 것이니, 극진히 하지 못할 자가 없어야 할 텐데 혹 효도에 결함이 있어 자애하는 천성마저 없어지는 데에 이르고, 심한 경우 지친(至親 가까운 친척, 즉 부모자식,형제자매)이 이리로 변해 돌보지 않게 되기도 합니다. 보통 사람들도 실로 이를 면치 못하는 경우가 있지만 제왕의 집안에는 이러한 근심이 더욱 많으니, 그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무릇 정(情)과 사세(事勢)가 막히기 쉽고 참소와 이간이 더욱 많기 때문입니다.


정과 사세가 막히기 쉽다고 이르는 것은 전하께서 궁전에서 모시고 날마다 나아가 뵙는 데 있어 처소가 존엄한 분에 가까워 사세가 혹 막히고 일이 복잡다단하여 정이 혹 막히기 때문입니다. 참소와 이간이 더욱 많다고 이르는 것은 양궁 사이에 좌우에서 가까이 모시고 총애받으며 심부름하는 자들이 환관과 여자라는 것을 두고 이른 것입니다. 이들은 그 성격이 보통 대부분 음흉하고 교활하여 간악함과 사심을 품고 난(亂)을 좋아하고 화(禍)를 즐기며, 효도와 자애가 무엇이며 예와 의가 어떤 것인지도 모릅니다. 오직 섬기는 분만을 소중히 여겨 이쪽저쪽으로 세력을 나누어 대립하여 많고 적음을 다투고, 은혜와 원망이 잠깐 사이에 생기며 이익과 손해가 이들의 향배에 따라 결정됩니다. 없는 것을 있다 하고 옳은 것을 그르다고 하여 그 정상이 이루 헤아릴 수 없어 귀신과도 같고 물여우와도 같아 혹은 충동하여 노하게 하고 혹은 속여서 두렵게 만듭니다. 


만일 한 번이라도 혹 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어 듣고 믿게 되면 스스로는 불효에 빠지고 어버이는 자애롭지 못하게 만들 것이 틀림없습니다. 무릇 집안의 법도가 엄정하고 양궁이 화락하면, 이 무리들은 그 간사함이 용납될 곳이 없어 이익을 얻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반드시 서로 얽어 놓고 혐의를 갖게 하여 주인이 사리에 어두워지고 윤리가 어그러진 뒤에야 그 술수를 부리고 참소를 해대어 큰 이익을 얻게 되는 것이니, 이것이 소인과 여자들의 공통된 병통입니다. 비록 그러하나 이들은 그 임금의 덕이 어진지 아닌지 집안 법도가 엄정한지 방종한지에 따라 그림자나 메아리처럼 재빠르게 반응하니, 그렇다면 임금은 자신을 다스림이 어떠한지를 돌아볼 뿐입니다. 


진실로 스스로를 잘 다스릴 수만 있다면 또한 무슨 걱정이 있겠습니까. 신이 지난해 서울에 있을 때 길에서 소문을 들었는데, 전하께서 즉위하신 초기에 이런 무리들 가운데 잠저(潛邸, 왕위에 오르기 전에 살던 집 또는 그 시기) 때의 구은(舊恩예전에 입었던 은혜)이 있다 해서 왕명을 기다리지도 않고 감히 나온 자가 있었으나 급히 전하의 준엄한 명을 받고 물러갔다 하여, 온 나라 사람들이 모두 대성인의 행하심은 이렇게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뛰어나다 하여 숭앙하였다 합니다. 이로부터 성덕이 날로 알려지고 인과 효가 끊어짐이 없었으니, 이대로만 앞으로 추진하신다면 어떤 음흉한 자가 복종하지 않겠으며 어떤 악인인들 감히 방자할 수 있겠습니까. 


비록 그러하나 전하께서는 이것을 믿고 상빙(霜氷, 서리와 얼음)의 경계를 소홀히 하셔서는 안 됩니다. 또한 전하의 효성으로써 한 나라의 봉양을 극진히 하신다면 그 효 또한 클 것입니다. 그러나 자식 된 직분에 당연히 해야 할 일은 무궁무진하니, 어찌 나의 어버이 섬김이 이미 충분하다 하여 다른 염려가 없다 하겠습니까. 또 오늘날 전하의 어버이 섬기심은 이른바 의로써 은혜를 높이고, 변칙의 처지에서 상례에 처하시는 것이니, 이러한 두 상황은 실로 소인과 여자들이 틈을 엿보아 문제를 만드는 거리가 되는 것입니다. 


신이 엎드려 전대의 일을 살피건대, 위로는 자애로운 어버이가 있고 아래로는 어진 자손이 있으면서도 못된 환관과 참소를 일삼는 궁첩들이 그 사이를 이간시켜서 그 효를 제대로 끝맺지 못한 경우를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습니다. 하물며 오늘날 대궐 안에는 전후의 조론(朝論)에서 깊이 우려한 대로 노회한 간흉과 소인배들이 아직도 다 제거되지 않고 있으니, 이것은 비단 어린 돼지가 날뛰는 것과 같을 뿐이 아닙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주역》 〈가인괘(家人卦)〉의 뜻을 살펴 거울로 삼으시고 《소학》 〈명륜(明倫)〉의 교훈을 본받으시어, 자신을 다스리는 데 엄격히 하고 집안을 바로잡는 데 삼가시어 어버이 섬기기를 독실하게 하고 자식 된 직분을 극진히 하십시오. 


그리하여 좌우에 가까이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양궁(兩宮)의 지극한 정은 효도와 자애보다 더 소중한 것이 없어 자신들의 참소와 이간이 거기에 행해질 수 없다는 것을 환히 다 알게 하소서. 또한 그 효도와 자애를 이룩하도록 하는 자는 복을 얻고, 양궁 사이에 틈을 내게 하는 자는 죄를 얻는다는 것도 알게 하소서. 그리하면 자연히 음사(陰邪)를 부려 이간하고 분란을 일으킬 걱정이 없어지고 효도에 부족함이 없게 될 것입니다. 또 이 마음을 미루고 이 정성을 다하여 공의전(恭懿殿)에 효도와 공경을 바쳐 정을 다하고 힘을 다하신다면 도는 계속 높아지고 인이 지극하고 의가 극진해져 삼궁(三宮)이 즐겁게 화합하고 만복이 다 이를 것입니다. 《시경》에 이르기를, “조금 벌어지고 벌어진 것으로 남쪽 기성(箕星)을 이룬다.” 하였고, 또 “길이 효도를 생각하시니, 효도를 생각함이 법칙이 된다.” 하였으니, 성명께서 유의하신다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셋째, 성학(聖學, 성인의 학문)을 돈독히 하여 정치의 근본을 확립하소서. 신은 듣건대, 제왕의 학문과 심법(心法)의 요점은 대순(大舜)이 우(禹)에게 명한 것에 연원이 있다 합니다. 그 말에 이르기를, “인심(人心)은 위태하고 도심(道心)은 은미하니 오직 정하게 하고 오직 전일하게 하여 진실로 그 중(中)을 잡으라.” 하였습니다. 무릇 천하를 전해 주는 것은 그로 하여금 천하를 편안하게 하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부탁하는 말은 정치보다 더 급한 것이 없을 텐데 순 임금이 우 임금에게 간곡하게 일러 주고 경계한 말씀이 이와 같은 데 불과한 것은, 어찌 학문하여 덕을 이루는 것을 정치의 큰 근본으로 삼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정하고 전일하게 하여 그 중을 잡는 것이 학문을 하는 큰 법도입니다. 큰 법도로 큰 근본을 세우면 천하의 정치가 모두 여기에서 나올 것입니다. 오직 옛 성왕의 정치적 교훈이 이와 같기 때문에 신처럼 미련한 사람도 성학이 지치(至治)의 근본이 된다는 것을 알아서 참람하게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비록 그러하나 순 임금의 이 말씀은 위태하고 은미하다는 것만 일러 주고 그 원인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으며 정하게 하고 전일하게 하라고만 가르치고 그 방법은 제시하지 않아서, 후세 사람들이 이것을 근거로 도(道)를 참으로 알고 실천하려 하여도 거의 어려웠습니다. 


그 뒤로 열성(列聖)이 계승하다가 공자에 이르러 그 방법이 크게 완비되니, 《대학》의 격물치지(格物致知)와 성의정심(誠意正心), 《중용(中庸)》의 명선(明善)과 성신(誠身)이 이것입니다. 또 학자들이 계속 나오다가 주자(朱子)에 이르러 그 학설이 크게 밝혀졌으니, 《대학장구(大學章句)》와 《중용장구》 및 《혹문(或問)》이 이것입니다. 이제 이 두 책을 공부하여 참으로 알고 실천하는 학문을 하면, 밝은 해가 중천에 떠올라 눈만 뜨면 볼 수 있고 큰길이 앞에 있어 발만 들면 밟을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다만 걱정되는 바는 세상의 임금 가운데 이 학문에 뜻을 둔 이가 드물고, 혹 뜻이 있다 하더라도 시종일관 유지할 수 있는 이는 더욱 드물다는 것입니다. 아, 이것이 도(道)가 전하지 않는 까닭이며 정치가 예스럽지 않은 이유이니, 또한 무언가 기대함이 있어 그런 것일 것입니다. 삼가 생각건대, 주상 전하께서는 신성하신 자질을 선천적으로 타고나시고 깊고 밝은 학문이 날로 새로워지시니, 유신(儒臣)과 강관(講官) 중에 감복하고 찬탄하지 않는 자가 없습니다. 곧 전하께서는 이 학문에 대하여 자질도 있고 뜻도 있으신 것입니다. 


그러니 치지(致知)하는 방법과 힘써 행하는 공부[力行]에 시초가 되어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신의 망녕된 생각으로는 이것만 가지고 제대로 알고 제대로 실행한다고 성급하게 말씀드릴 수는 없을 듯합니다. 신은 먼저 치지라는 한 가지 일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가까이는 우리의 성정(性情), 형색(形色), 일상생활의 떳떳한 윤리에서부터 허다한 천지 만물과 고금의 사변(事變)에 이르기까지 진실한 이치와 지당한 법칙이 존재하지 않음이 없으니, 곧 이른바 천연적으로 있는 중(中)이란 것입니다. 


따라서 배우기를 넓게 하지 않을 수 없고 묻기를 세심하게 하지 않을 수 없고 생각하기를 신중하게 하지 않을 수 없고 분변하기를 명백하게 하지 않을 수 없으니, 이 네 가지가 치지의 조목입니다. 이 네 가지 중에서도 생각을 신중하게 하는 것이 더욱 소중한데, 생각이란 무엇이겠습니까. 마음에서 구하여 증험하고 얻는 것을 말합니다. 마음에 증험하여 그 이(理)와 욕(欲), 선과 악의 기미와 의(義)와 이(利), 시(是)와 비(非)의 구분을 명백히 분변하여 정밀하게 해서 조금의 착오도 없게 한다면 이른바 위태롭고 은미한 까닭과 정하게 하고 전일하게 하는 방법이 이러하다는 것을 참으로 알아 의심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이제 전하께서는 이 네 가지 공부에 대해 이미 시작을 하여 단초를 틔우셨으니, 신은 그 틔운 단초로 말미암아 더욱더 공부를 쌓아가시기 바랍니다. 그 차례와 절목(節目)은 《혹문(或問)》에 제시된 상세한 내용에 따라 공경을 위주로 하여 모든 사물마다 소당연(所當然 마땅히 그러함)과 소이연(所以然 그러한 까닭)을 궁구하여 마음을 가라앉혀 반복해서 깊이 생각하고 두고두고 탐구하여 체인(體認, 마음속으로 깊이 납득하고 인정함)해서 지극한 경지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세월이 오래되고 공력이 깊어지면 하루아침에 자기도 모르게 의혹이 눈 녹듯이 풀리고 시원스레 진리에 관통하는 바가 있을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체(體)와 용(用)이 하나의 근원이며 현(顯)과 미(微)가 차이가 없다는 것이 참으로 그러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위태로운 것과 은미한 것에 대해 헷갈리지 않고 정하고 전일하게 해 나가는 데 현혹됨이 없어 중(中)을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을 ‘참으로 안다’고 하는 것입니다. 


신은 다음으로 역행(力行)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성의(誠意)는 반드시 기미를 잘 살펴서 털끝만큼이라도 성실하지 못함이 없는 것이고, 정심(正心)은 반드시 동정(動靜)을 살펴서 한 가지 일이라도 올바르지 못함이 없는 것이며, 수신(修身)은 한 가지라도 편벽된 데 빠지지 않음이고, 제가(齊家)는 하나라도 치우치지 않도록 하는 것이며, 조심하고 두려워하며 신독(愼獨, 남이 보지 않는 혼자인 상태에서도 도리에 따라 마음과 행동을 삼가하는 것)을 하고 뜻을 굳건히 하여 쉬지 않는 이 몇 가지는 역행의 조목입니다. 이 몇 가지 중에서도 마음[心]과 뜻[意]이 가장 관건이 됩니다. 마음은 천군(天君)이며 뜻은 그 마음이 발한 것입니다. 먼저 그 발하는 바를 성실하게 하면 하나의 성실이 만 가지 거짓을 소멸하여 천군을 바로잡을 것입니다. 


그 결과 인체의 모든 기관이 명령에 복종하여 행동하는 바가 성실하지 않음이 없을 것입니다. 이제 전하께서는 이 몇 가지 공부에도 이미 시작을 하여 단서를 잡으셨으니, 신은 그 잡은 단서로 말미암아 더욱더 공부를 절실히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 규모와 종지(宗旨)는 두 책에 담긴 교훈을 따라 공경을 위주로 하여 언제 어디서나 늘 잊지 않고 생각하며 일마다 경계하고 삼가서 온갖 얽매임과 욕심을 마음속에서 씻어 내고 오륜과 백행(百行)을 지선(至善)으로 연마하여 먹고 쉬는 동안이나 다른 사람과 수작할 때에도 의리가 몸에 배고, 울분을 가라앉히며 욕심을 막고 개과천선하여 성실함과 전일함에 힘을 쓰고, 광대(廣大)하고 고명(高明)하되 예법에 어긋나지 않고, 나랏일에 참여해 돕고 경륜하는 것이 모두 옥루(屋漏, 눈에 잘뜨지 않는 곳)에 근본 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여 오래도록 참[眞]을 쌓고 시일이 오래되면 자연히 의(義)에 정밀해지고 인(仁)에 익숙해져 그만두려 하여도 그만둘 수 없어서 어느덧 자신도 모르게 성현의 중화(中和)의 경지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 실천의 효험이 여기에 이르면 도가 이루어지고 덕이 성립되니, 정치하는 근본이 여기에 있습니다. 인재를 취하는 법칙도 자신을 벗어나지 않는 것이니, 훌륭한 인재들이 잇따라 나아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며, 이에 공적이 크게 빛나 세상을 융성하고 태평하게 하고 백성을 인수(仁壽)의 경지에 들게 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혹자는 말하기를, “제왕의 학문은 글 읽는 선비나 일반 학자와는 같지 않다.”라고 하나, 이것은 글 뜻이나 캐내고 글 짓는 데만 능한 것을 이를 뿐입니다. 공경으로 근본을 삼고 이치를 궁구해서 지(知)를 이룩하고 자신에게 돌이켜 구하여 반성하고 참됨을 실천하는 것들이 바로 오묘한 심법(心法)이며 도학을 전하는 데 있어서의 요건이니, 제왕과 보통 사람이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무릇 진지(眞知)와 실천은 수레의 두 바퀴와 같아 하나가 없어도 안 되며 사람이 두 다리와 같아 서로 의지하여 함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자(程子)는 “치지(致知)하면서 경(敬)에 있지 않는 자는 없다.” 하였고, 주자(朱子)는 “궁행(躬行)하는 공부가 없다면 궁리할 곳도 없다.”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두 가지 공부는 합해서 말하면 서로 시종이 되고, 나누어 말하면 또 각기 따로 시종이 있는 것입니다. 


아, 시작이 없으면 실로 끝도 없지만 끝이 없다면 시작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임금의 학문이 대부분 처음은 있는데 끝이 없으며 시작할 때는 부지런하다가도 끝에 가서는 게을러지고 처음에는 공경하다가 끝에는 방자해져서 들락날락하는 마음으로 하다말다 하는 일을 행하여 결국에는 덕을 무너뜨리고 나라를 미혹하게 하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무엇보다도 위태로운 것이 인심이어서 욕(欲)에 빠지기 쉽고 이(理)를 회복하기 어려우며, 무엇보다도 은미한 것이 도심(道心)이어서 잠깐 이(理)에 눈떴다가도 바로 욕(欲)에 가리어지기 때문입니다. 


이제 빠지기 쉬운 인심으로 하여금 물러나 따르도록 하고 잠깐 눈뜬 도심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계속되도록 하여 제왕들이 서로 전한 중을 잡는 학문을 성취하고자 한다면, 정하게 하고 전일하게 하는 공부 말고 무슨 공부를 하겠습니까. 부열(傅說)은 “학문은 뜻을 공손하게 해야 하니, 시종일관 학문할 것을 생각하면 자신도 모르게 덕이 닦여진다.” 하였으며, 공자는 “이를 곳을 알아서 이르니 기미를 알 수가 있고, 마칠 곳을 알아서 마치니 의를 보존할 수 있다.” 하였습니다. 오직 성명께서 유의하신다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넷째, 도술(道術, 도덕과 윤리)을 밝혀 인심을 바로잡으소서. 신이 듣건대, 요순(堯舜)과 삼대(三代)의 융성한 시대에는 도술이 매우 밝아 다른 의혹이 없어서 인심이 올바름을 얻고 정치의 교화도 퍼지기 쉬웠습니다. 반면 주나라가 쇠약하게 된 이후로는 도술이 밝지 못해 사악하고 간특함이 아울러 생겨나 인심이 올바르지 못하여 다스려도 다스려지지 않고 교화하여도 교화되기 어려워졌다 합니다. 


무엇을 도술(道術)이라 합니까? 천명에서 나와서 떳떳한 윤리를 행하는 것이니 천하 고금에 다 같이 말미암는 길입니다. 요순과 삼왕(三王)은 이를 분명히 알고 그 지위를 얻었기에 혜택이 온 천하에 미쳤고, 공자ㆍ증자(曾子)ㆍ자사(子思)ㆍ맹자는 이를 분명히 알았지만 지위를 얻지 못했기에 가르침을 만세에 전하였습니다. 후세의 임금들은 오직 그 가르침을 통하여 그 도를 얻어서 세상에 밝히지 못하였기에, 진리를 어지럽히는 이단(異端)의 학설과 정도를 더럽히는 공리(功利)를 주장하는 무리들이 선동하고 몰아대어 인심을 함정에 빠뜨려 그 화가 하늘까지 뒤덮어 구제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중간에 송(宋)나라 제현들이 사도(斯道, 공자와 맹자의 가르침)를 크게 천명하였지만 모두 당세에 등용되지 않았고 떳떳한 가르침[彝敎]을 밝히고 인심을 바로잡는 것도 당시에 공효를 거두지 못하고 다만 만세에 전할 뿐이었습니다. 


하물며 우리 동방은 동해에 치우쳐 있는 데다 기자(箕子)의 홍범(洪範)이 전해지지 않은 뒤로 여러 대를 아득하게 지냈습니다. 고려 말에 정주(程朱)의 글이 비로소 들어와 도학(道學)을 알게 되었고, 본조(本朝)에 들어와 성왕이 잇달아 계승하여 창업수통(創業垂統)하셨는데 그 규모와 전장(典章)이 대체로 모두 이 도를 발현하여 쓴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개국 이래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거의 2백 년이 되어가는데 정치의 공효를 더듬어 보고 선왕의 도로 헤아려 보면 여전히 열성(列聖)의 마음에 부족한 바가 있음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이는 다름이 아니라 도술이 밝아지지 못하고 인심을 해롭게 하는 다른 이단 사설이 많기 때문입니다. 바야흐로 지금 전하께서는 요순의 자질로 제왕의 학문을 몸소 행하시어 옛 법도를 준수하는 데 뜻을 두시고 바른 정치를 추구하기를 목마른 자가 물을 구하듯 하시니, 이는 장차 사문(斯文)을 일으키시어 당우(唐虞) 삼대(三代)처럼 이 시대를 융성하게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진실로 우리 동방의 천재일우의 기회여서 조야(朝野)가 기뻐하며 눈을 씻고 서로 경하하지 않는 자가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만일 선왕의 도술을 밝혀 한 시대의 나아갈 방향을 정하여 표준을 세워서 인도하지 않으면 어떻게 온 나라 사람으로 하여금 쌓인 의혹을 풀고 여러 갈래의 이단 학설을 버리고 크게 변화하여 우리의 대중지정(大中至正)한 가르침을 따르게 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이유로 어리석은 신은 반드시 도술을 밝히고 인심을 바로잡는 것을 새로운 정사를 펴시는 데 바치는 바입니다. 비록 그러하나 밝히는 일에도 본말 선후 완급과 같은 실행상의 순서가 있고, 그 본말에도 허(虛)와 실(實)의 차이가 있습니다. 임금이 몸소 행하고 마음에 터득한 것을 기반으로 백성들의 일상생활의 떳떳한 윤리를 가르치는 것이 본(本)이요, 법제를 추종하고 문물만을 인습해서 현행의 것을 바꾸고 옛것을 스승으로 하여 모방하고 비교하는 것은 말(末)입니다. 본은 먼저 하여야 하기 때문에 급하고 말은 뒤에 하기 때문에 천천히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도를 얻어서 임금의 덕이 이루어지면 본과 말이 다 실(實)하여 요순의 정치가 되고, 그 도를 잃어서 임금의 덕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본과 말이 다 허(虛)해져 말세의 재앙이 있을 것이니, 실로 헛된 명성만 믿고서 성치(聖治)의 성공을 바라는 것도 옳지 않으며 요법(要法)을 모른 채 마음으로 터득하는 묘법을 구하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이제 전하께서 진실로 헛된 명성은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아시고 요법을 구하여 도학을 밝히려 하신다면, 반드시 신이 앞서 논한 진지(眞知)와 실천의 말씀을 깊이 받아들이시어 경으로 시작하고 경으로 끝맺으소서. 시작할 때는 아는 바가 혹 애매하여 분명치 못하며 행하는 바가 혹 모순되어 합당하지 못한 점이 있더라도 부디 이것 때문에 싫어하거나 주저하지 마십시오. 성현은 결코 나를 속이지 않으며 단지 나의 공력이 모자랄 뿐임을 아셔서 차근차근 부지런히 힘쓰시어 중도에 그만두는 일이 없도록 하소서. 이와 같이 꾸준히 학습을 쌓으시고 충분히 익숙해져 의(義)를 정밀히 하여 신묘한 경지에 이르면 눈에 온전하게 보이는 소(牛)가 없게 되고, 이치가 몸에 배어 밖으로 드러나게 되면 어디서든 이치의 본원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을 일러 힘써 실행하고 마음에 터득하여 도가 자신에게 밝아졌다고 하는 것이며, 요 임금과 문왕(文王)이 덕을 밝혔다고 하는 것도 바로 이것입니다. 이로부터 미루어 가면 어디를 가나 도 아닌 것이 없을 것이니, 구족(九族)을 친애하고 백성들을 평안하게 하며 〈관저(關雎)〉와 〈인지(麟趾)〉의 교화*로부터 〈작소(鵲巢)〉와 〈추우(騶虞)〉의 덕화*에 이를 것이니, 지금이라고 어찌 요 임금이나 문왕의 때와 다르겠습니까. 덕화가 훈훈히 퍼져 안팎이 융합되어 조정에서는 공경하고 사양하며 가정에서는 효도하고 공경하며 선비들은 학문을 알고 백성들은 의를 알게 된다면, 어찌 인심이 올바르게 되지 않고 도술이 밝아지지 않겠습니까. 


순자(荀子)가 말하기를, “임금은 그릇과 같으니 그릇이 모나면 물도 모나고, 임금은 푯대와 같으니 푯대가 바르면 그림자도 곧다.” 하였습니다. 어찌 그렇지 않겠습니까. 비록 그러하나 보잘것없는 신의 사사로운 근심과 지나친 생각으로는 인심을 방황하고 미혹되게 하는 학설에 대하여 특히 느낀 바가 있습니다. 신이 삼가 보건대, 동방 이단의 가장 심한 폐단은 불교이니, 고려는 이 때문에 나라가 망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아조(我朝)의 융성한 다스림으로도 오히려 그 뿌리를 끊지 못하여 때때로 틈타서 치성해지니, 비록 선왕께서 곧바로 그 그른 것을 깨달으시고 빨리 씻어 버리셨지만 그 여파와 찌꺼기가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노장학(老莊學)의 허망함을 혹 즐기고 숭상하여 성인을 업신여기고 예법을 멸시하는 풍습이 간혹 일어나고, 관중(管仲)과 상앙(商鞅)의 학술과 사업은 다행히 전술되지는 않았지만 공리를 따지고 이익을 꾀하는 폐단은 오히려 고질이 되었습니다. 향원(鄕原)이 덕을 어지럽히는 풍습은 보잘것없는 무리들이 세속에 아부하는 데서 시작되었고, 속학(俗學)들이 방향을 잡지 못하는 병통은 과거(科擧)를 보는 이들이 명리를 추구하는 데서 더욱 심해졌습니다. 


더구나 명리를 좇는 벼슬길에서 기회를 타고 틈을 엿보아 이랬다저랬다하며 속이고 저버리는 무리들이 또한 어찌 전혀 없다고 하겠습니까. 이로써 본다면, 지금의 인심은 매우 올바르지 못합니다. 가령 불행히도 주상께서 도를 추구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처음만 못하여 혹 좋아하고 미워하는 것을 편파적으로 나타내거나 사사롭게 처리하는 잘못이 새어 나온다면 무릇 이와 같은 인물들이 틀림없이 잡다하게 몰려 나와 도깨비처럼 술수를 부리고 괴이한 짓을 하여 온갖 실마리를 통해 뚫고 들어 올 것이니, 한 번 그 술수에 떨어지면 곧바로 그들에게 동화될 것입니다. 


그들에게 동화되면 이쪽과는 달라져서 좋은 것이 그들 쪽에 있으면 싫은 것이 이쪽에 있게 되고 그들과 한 덩어리가 되면 이쪽과는 원수가 될 것입니다. 예로부터 임금이 처음에는 맑고 밝아 정치가 볼만하다가 얼마쯤 지나면 간사한 자들의 수중에 떨어지고 이단에 미혹되어 공을 무너뜨리고 나라를 병들게 하는 것이 송나라의 철종(哲宗)ㆍ휘종(徽宗)ㆍ영종(寧宗)ㆍ이종(理宗)과 같이 된 자를 어찌 이루 다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옛 임금들이 도리를 잃은 허물을 오늘의 밝은 거울로 삼으시어 금석(金石)처럼 뜻을 굳건히 하여 시종일관 변하지 마시고, 도를 밝히기를 일월과 같이 하여 요사스럽고 음흉한 기운을 깨끗이 숙청하여 침범하지 못하게 하십시오. 도를 익히거나 다스림을 구함을 막론하고 모두 꾸준하게 중단되지 않도록 한다면 비단 성왕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선비나 스스로 새로워지려 하는 백성들이 모두 대도(大道)로 오르게 될 뿐 아니라 앞서의 사악한 무리와 간특한 잡배들도 장차 신령스러운 감화를 받아 변화되기에 겨를이 없을 것이니, 어찌 감히 혹시라도 나와서 우리의 우환이 되겠습니까. 《역경》에 이르기를, “성인이 그 도를 오래 하니 천하가 교화되어 이루어진다.” 하였고, 맹자는 이르기를, “군자는 상도(常道)에 돌아갈 뿐이니 상도가 바르게 되면 서민이 흥기하고 서민이 흥기하면 이에 사악하고 간특함이 없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오직 성명께서 유의하신다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다섯째, 복심(腹心, 마음속 깊은 곳 즉 진실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에게 맡기시고 이목(耳目)을 통하게 하소서. 신이 듣건대, 한 나라의 국체는 한 사람의 몸과 같다고 합니다. 사람의 몸에서 머리[元首]는 위에 있어서 통솔하여 군림하고, 배와 가슴은 가운데서 머리의 지령을 받아 운영하고, 귀와 눈은 두루 통달하여 호위하고 깨우쳐 주니, 그런 뒤에라야 일신이 편안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임금은 한 나라의 원수요, 대신(大臣)은 그 복심이며, 대간(臺諫, 사헌부와 사간원, 즉 왕의 전횡과 전제를 견제하기 설치된 조선조의 감찰기관)은 그 이목입니다. 삼자는 서로가 있어야 성취되는 법이니, 이는 실로 나라의 바꿀 수 없는 불변의 사세(事勢)요, 천하 고금이 다 알고 있는 것입니다. 옛날의 임금 중에는 대신을 신임하지 않고 대간의 말을 쓰지 않는 자가 있었는데, 이는 비유하자면 사람이 스스로 자신의 배와 가슴을 가르고 스스로 자신의 귀와 눈을 막는 것과 같으니, 실로 머리만으로 사람이 될 리는 없습니다. 혹 대신을 신임하더라도 올바른 도를 따르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는 대신을 구함에 있어 바로잡고 도와주고 보필하여 줄 현명한 사람을 구하지 않고, 오직 아부하고 순종하는 자를 구하여 사심이나 이룰 것을 꾀합니다. 이렇게 해서 얻은 인물은 간사하여 정치를 어지럽히는 사람이 아니면 틀림없이 흉악하고 권리나 탐내고 세력을 휘두를 사람일 것입니다. 


임금은 이런 사람을 자신의 욕심을 채워 줄 복심으로 삼고 신하는 이런 임금을 자신의 욕심을 채워 줄 원수로 삼아 위와 아래가 서로 비호하면서 굳게 결속하면 아무도 그 사이를 벌릴 수가 없습니다. 만일 강직한 선비가 그 칼날을 건드리면 반드시 귀양 보내고 죽여 가루를 만들고야 맙니다. 이로 말미암아 충성되고 현명한 신하는 모조리 다 축출당하여 나라 안이 텅 비게 되고, 이목을 맡은 자는 다 집권자의 사인(私人)이 될 것입니다. 


곧 이른바 이목이란 임금의 이목이 아니라 바로 집권자의 이목인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목임을 빙자하여 세력을 떨치고 기염을 토하여 권신(權臣)의 악을 편들어 도와주고 복심임을 이용하여 악을 쌓고 화를 쌓아 혼암한 군주의 사특함을 쌓이게 하고는 버젓이 스스로 모두 각기 원하는 바를 얻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원수의 짐독(鴆毒, 집안의 액운을 가져준다는 전설상의 새의 깃독)이 복심에서 발생하고 복심의 사갈(蛇蠍, 독사와 전갈)이 이목에서 나온 줄은 모릅니다. 이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데 앞 수레가 엎어져도 뒷 수레가 경계할 줄 모르고 줄줄이 엎어지고 있으니 진실로 통탄할 일입니다. 


오늘날 조정의 일은 이와는 다릅니다. 성지(聖智)의 덕이 만물에 으뜸으로 뛰어나시고 올바른 자리에 거처하시어 한 나라의 원수가 되시고, 그 복심의 지위와 이목의 소관에 있어서도 다 뭇사람 중에서 골라 뽑아서 그 책임을 무겁게 하였습니다. 《역경》에서도 “같은 소리가 서로 응하고 같은 기운이 서로 구하여, 물은 습한 데로 흐르고 불은 마른 데로 타오르며, 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범을 따른다.”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위로는 성주(聖主)가 계시니 아래에 현명한 신하가 없을까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신은 삼가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오직 하늘의 밝은 명을 돌보아 살피시고 몸을 공손히 하여 바르게 남면(南面)하사 복심에 정성을 다하시고 눈을 밝히고 귀를 열어 백성에게는 중도(中道)를 세우시고 위에는 푯대를 세우소서. 조금이라도 사사로운 뜻이 그 사이에서 흔들고 파괴하는 일이 없도록 하신다면, 보상(輔相)의 지위에 있는 자는 반드시 모두가 마음을 털어놓고 생각하는 바를 임금에게 말하고 계책을 진술하며 도를 의논하여 나라를 경륜하는 것을 스스로의 임무로 삼고, 간쟁(諫諍)의 지위에 있는 자는 임금을 면대하여 바른 소리를 하고 조정에서 쟁론하며 부족하고 빠뜨린 것을 보완하는 것으로 자신의 직책으로 삼을 것입니다. 이렇게 세 세력이 투명하게 정신을 모아 통하여 한 몸이 되면, 이와 같이 하고서도 조정에 선정(善政)이 없고 나라에 선치(善治)가 없고 세상이 태평하게 되지 않는다는 말을 신은 일찍이 들어 보지 못했습니다. 


비록 그러하나 백익(伯益)이 순임금에게 경고하기를, “염려 없는 데도 경계하여 법도를 잃지 말며, 안일에 몸담지 말고 쾌락에 빠지지 말며, 현명한 사람을 신임하여 두 마음을 갖지 말고 간사한 사람을 버리면서 주저하지 마십시오.” 하였습니다. 임금의 마음이 한 번 경계를 게을리하여 안일과 쾌락으로 빠지면 하루도 못 가서 법도가 무너지고 현명한 사람을 끝까지 임용하지 못하고 간사한 자를 버리지 못하리란 것은 사리와 형세의 필연적인 귀결입니다. 


그런 까닭에 편안히 잘 다스려지는 조정이라도 간혹 불행히도 한번 이런 조짐이 있게 되면 대신 중에는 틀림없이 임금의 악에 영합하여 나라의 권세를 훔치려고 하는 자가 있을 것이며, 소신(小臣) 중에는 틀림없이 실권을 잡은 자에게 아부하여 사사로운 이익을 탐내는 자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전날의 복심이 이제는 변하여 도적이 되고 전날의 이목이 이제는 변하여 눈가리개와 귀마개가 되고 전날의 한 몸이 이제는 변하여 원수가 되어, 쇠란의 형세와 위망의 조짐이 당장 눈앞에 나타날 것입니다. 


고요(臯陶)의 노래에, “원수(元首)가 좀스러워지면 고굉(股肱 임금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신하)이 태만해져 만사가 무너질 것이다.” 하였으니, 만사가 무너진 책임이 윗사람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송나라의 신하 왕개지(王介之)가 말하기를, “재상으로서 궁금(宮禁)의 의향을 받들고 급사(給舍)로서 재상의 뜻만 받들면 조정의 기강이 땅에 떨어진다.” 하였으니, 올바르지 못한 일의 폐해는 복심이나 이목의 지위에 따라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공필(呂公弼)이 인종(仁宗)께는 “간관(諫官)은 이목이 되고 집정(執政)은 고굉이 됩니다. 고굉과 이목이 반드시 함께 작용한 뒤에야 몸이 편안하고 원수가 높아집니다.” 하였습니다. 따라서 신은 바르지 못한 길을 따르지 않고 서로 일체가 되어 작용하는 것이 지선(至善)의 도(道)라고 생각합니다. 오직 성명께서 유의하신다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여섯째, 수양과 반성을 성실히 하여 하늘의 권애(眷愛)를 받으소서. 신이 듣건대, 동중서(董仲舒)가 무제(武帝)에게 고한 말에 이르기를, “국가가 장차 도를 그르치는 잘못이 있으려 하면 하늘이 먼저 재해를 내어 이를 견책하여 고해 주고, 그래도 반성할 줄 모르면 또 괴이한 변고를 내려서 이를 경계하여 두렵게 하고, 그래도 여전히 고칠 줄 모르면 상패(傷敗 다치고 실패함)가 이르게 되는 것이니, 이로써 천심이 임금을 사랑하여 그 난을 방지하고자 함을 볼 수 있습니다.” 하였으니, 음미해야 할 말입니다. 


실로 만세의 임금들이 귀감(龜鑑)으로 삼고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비록 그러하나 임금이 여기에서 또 마땅히 천심이 나를 사랑하는 이유가 무엇 때문에 그러한 것인지를 알고, 또 마땅히 내가 천심을 받드는 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아서, 깊이 생각하고 익히 강구하여 실제로 몸소 행한 뒤에야 천심을 향유하고 임금의 도리를 다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이 전하를 위하여 그 까닭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가만히 생각건대, 천지의 큰 덕은 생(生)이라고 하는 것이니, 무릇 천지에는 온갖 생물이 빼곡이 모여 있어, 동물이든 식물이든 크든 작든 간에 다 하늘이 불쌍히 여겨 덮어 주고 아껴줍니다. 하물며 모습이 닮고 가장 신령하여 천지의 핵심이 되는 우리 인간들에 있어서야 더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늘은 이 마음은 있으나 스스로 베풀지는 못하고, 반드시 가장 신령한 우리 인간들 중에서도 성스럽고 밝고 으뜸으로 어질며 덕이 신(神)과 인간에 조화될 사람을 특별히 권애하여 임금으로 삼고, 백성들을 맡아 기를 것을 부탁하여 인애의 정치를 행하게 합니다. 이미 명하고 도와주어 사방 백성들을 편안히 다스리게 하고서도 혹시라도 태만하여 소홀해지는 데서 환란이 발생할까 두려워하여, 이에 또 이른바 재이(災異)로 견책하고 경계하는 것입니다. 하늘이 임금에게 반복하여 간곡하게 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닙니다. 하늘이 이미 인애의 책무란 무거운 임무를 여기에 위임하였으니, 이쪽에서 스스로 인애의 보답에 성실하게 힘써야 하기 때문입니다. 


진실로 임금 된 자가 하늘이 자신을 인애하는 이유가 이처럼 공연한 것이 아닌 줄을 알게 되면, 반드시 임금 노릇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요, 반드시 천명(天命)이 용이하지 않은 것도 알 수 있을 것이요, 높디높은 위에서 날마다 감시하여 털끝만큼이라도 속일 수 없다는 것을 반드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할 수 있으면 평소에도 반드시 마음을 다잡고 몸을 신칙하여 공경하고 성실히 해서 상제로부터 밝게 받은 데 대하여 도를 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며, 재해로 견책을 내려 주시면 반드시 허물을 반성하고 정사를 닦아 근신하고 성실히 하여 천의(天意)를 감동하게 하도록 더욱 정성을 다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혼란이 오기 전에 잘 다스리고 위기가 오기 전에 보전하여 재앙과 패망 없이 거의 편안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직 천심을 알지 못하고 그 덕을 삼가지 못하는 자는 일체 이와 반대로 하기 때문에 상제가 진노하여 재앙과 패망을 내립니다. 이는 하늘도 부득이 해서이니, 어찌 매우 두려워해야 할 바가 아니겠습니까. 지금 주상전하께서는 보위에 올라 정사를 돌보신 지 이제 한 돌이 되었는데,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을 돌보시며 덕을 닦고 정치를 행하시는 데 인심에 위반되거나 하늘에 거슬린 바가 있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천문(天文)이 자주 변하고 재앙이 아울러 일어나 화기(和氣)가 응하지 아니하여, 보리 농사와 밀 농사가 완전히 전멸되고 수재(水災)가 옛날에 비할 수 없이 참혹하며 우박과 황충 등 온갖 재이가 다 나타나니, 하늘이 전하께 무슨 노한 바가 있어 이렇게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천도(天道)는 멀지만 실은 가깝고 천위(天威)는 지엄하여 가벼이 보기 어렵습니다. 소신이 우매하여 감히 함부로 헤아려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동중서의 말로 미루어 본다면 이것은 천심이 전하를 인애함이 깊고 전하를 경계함이 지극한 것입니다. 


또한 지금 전하께서는 이미 하늘의 돌보아 주심을 입어 백성의 주인이 되셨으니, 왕위를 계승하여 정치를 도모하는 시초이자 상중(喪中)에 계시면서, 나라 다스리는 도를 생각하는 날들이 바로 근본을 바로잡고 시초를 바르게 할 때이며 스스로 밝은 명을 남겨 줄 때입니다. 만일 온화한 총애가 있는 줄만 알고 사나운 위엄이 있는 줄을 알지 못하면, 두려워하는 마음이 날로 풀리고 사악하고 편벽한 정이 점점 방종해져서 강의 제방을 터놓은 것 같을 것이니, 어떠한 지경인들 이르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재해를 내려서 이를 견책하고 또 괴이한 변고를 내려서 두렵게 하니, 천심이 전하를 인애함이 깊고 간절하며 뚜렷하고 분명하다 하겠습니다. 


전하께서는 장차 어떤 도리를 닦으셔서 하늘의 뜻에 부응하시고 재화의 싹을 소멸하게 하시겠습니까. 옛날에 공광(孔光)은 천도(天道)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하였고 왕안석(王安石)은 천변(天變)은 두려울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모두 속이고 아첨하는 간사한 말로 진실로 크게 하늘에 죄를 얻을 것입니다. 동중서와 유향(劉向)의 무리는 한편 어떤 재앙은 어떤 잘못에 대한 응험(應驗)이라 하였습니다. 이는 또 너무 구구하고 고루해서 혹시라도 상응하지 않는 경우가 있으면 임금이 걱정하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는 단서를 열어 주기에 적합하니 또한 잘못입니다. 


그런 까닭으로 어리석은 신은 생각건대, 임금의 하늘에 대한 관계는 자식의 어버이에 대한 관계와 같습니다. 어버이가 자식에게 노하면 자식은 두려워하고 덕을 닦으며 반성하매 노한 일이든 아니든 따지지 않고 모든 일을 다 정성껏 하여 효도를 바치면 어버이는 그 정성과 효성에 기뻐하여 노했던 일도 아울러 풀리어 흔적이 없게 됩니다. 그렇지 않고 한 가지 일만 지정하여 이 일에만 두려워하고 덕을 닦으며 반성하고 나머지 일은 여전히 제멋대로 한다면 효도를 다하는 데 성실하지 못하고 허위로 하는 것이니 어떻게 어버이의 노여움을 풀고 어버이의 환심을 얻을 수가 있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어버이 섬기는 마음을 미루어 하늘 섬기는 도를 다하시어 덕을 닦고 반성하지 않는 일이 없고 두려워하지 않는 때가 없도록 하소서. 성상의 몸에는 비록 과실이 없다 하더라도 은미한 마음속에 병통이 산처럼 쌓여 있는 것을 말끔히 다 정화하지 않아서는 안 되며, 궁궐에는 비록 본래 가법(家法)이 있다 하더라도, 음흉한 외척들이 배알하기 위해 안개처럼 모여드는 것을 엄격하게 막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간언은 둥근 고리 굴리듯 쉽게 따라 주시는 미덕이 있으시지만 때로 사사로이 굳게 거절하는 것은 마땅히 고쳐야 할 것이요, 선은 여색을 좋아하듯 진심으로 좋아하시지만 혹 가식적으로 억지로 구하는 것은 마땅히 살펴야 할 것입니다. 


작록과 상을 함부로 내려 주어 공 없는 자가 요행으로 얻고 공 있는 자가 흩어지게 해서는 안 되고, 죄를 용서하는 것을 자주하여 악인이 죄를 면하고 선인이 해를 입게 해서는 안 됩니다. 절의를 숭상하고 염치를 면려하여 명교(名敎)의 방위를 든든하게 하는 것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되며, 검약을 숭상하고 사치를 금지하여 공사(公私)의 재력을 넉넉하게 하는 것을 느슨히 해서는 안 됩니다. 조종(祖宗)이 이룩한 옛 헌장(憲章) 가운데 오래되어 폐단이 생긴 것은 어느 정도 변통하지 않을 수 없지만 그 양법(良法)과 아름다운 뜻까지도 아울러 일체 뒤섞어 고쳐 버리면 큰 환란이 이를 것이며, 조정의 신하들 가운데 바른 사람을 질시하고 다른 사람을 꺼리어 틈을 엿보아 사단을 일으키는 자는 실로 미리 진정시키지 않을 수 없지만 혹 현명하고 선한 이들과 괴리되어 서로 배격한다면 도리어 상처를 입게 될 것입니다. 


상도(常道, 일상적인 도리)를 따르는 수구 세력에게만 의지하면 지치(至治)를 떨쳐 일으키는 데 문제가 있을 것이며, 일 만들기 좋아하는 신진 세력에게만 맡기면 화란의 단서를 빚어내게 됩니다. 경외(京外)의 서리(胥吏)와 노복들은 공납품을 이리처럼 뜯어먹고도 오히려 부족하여 부고(府庫)를 도적질하여 비우고, 진포(鎭浦)의 장수들은 군졸을 범처럼 삼키고도 오히려 부족하여 그들의 이웃과 친족에까지 해독을 부립니다. 흉년이 극심한데도 구휼할 방책이 없으니 도적 떼가 크게 일어날까 두렵고, 변방이 거의 비었는데 남북으로 틈이 생기니 좀도둑들이 별안간 쳐들어올까 염려됩니다. 무릇 이런 류는 신이 일일이 들어 헤아릴 수조차 없습니다. 


오직 전하께서는 하늘이 자신을 인애하는 것이 이처럼 공연히 그러한 것이 아님을 깊이 아셔서, 안으로 몸과 마음에 스스로 반성하기를 경(敬)으로 일관해서 하다말다 함이 없도록 하시고, 밖으로 정치를 닦아 베풀기를 성(誠)으로 일관해서 가식이 없도록 하시고, 하늘과 사람 사이에 처하기를 앞에 말씀한 바와 같이 극진한 도리를 쓰지 않는 바가 없도록 하시면, 수재와 한재, 견책과 경계가 이를지라도, 두려워하고 덕을 닦고 반성하는 노력을 가하여 하늘이 주신 인애의 마음을 받들 수 있을 것이며 신이 논한 열여섯 가지 일도 차츰차츰 제거되고 바뀌어 치평(治平)에 이를 것입니다. 


만일 혹 그렇지 못하여 자신에게 근본을 두지 않고 세상이 다스려지기를 바라며 그 덕을 항상 변함없이 하지 못하고 하늘에 보응(報應)을 구하여, 평소에는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을 돌볼 줄 모르고 재앙을 만나면 형식만 갖추어 대강대강 응한다면, 신은 형통하던 끝에 비색함이 찾아들고 치세 끝에 화란이 생겨나듯 수백 년 동안 태평하던 끝에 국사에 대한 우려가 장차 오늘의 폐단보다 날로 늘어갈까 두려우며 천심이 전하를 인애하여 주신 것이 도리어 전하께서 자포자기하는 결과가 될까 두렵습니다. 


《서경》에 이르기를, “황천(皇天)은 따로 친함이 있지 않고 오직 공경하는 이를 친애하며, 백성은 변함없이 그리워하는 이가 있는 게 아니라 어진 이를 그리워하며, 귀신은 변함없이 흠향하는 것이 아니라 정성을 바치는 이에게 흠향한다.” 하였고, 《시경》에 이르기를, “하늘의 위엄을 두려워하여 이에 그 뜻을 보전한다.” 하였습니다. 오직 성명께서 유의하신다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이상에 진술한 여섯 조목은 경천동지(驚天動地)하여 사람의 이목을 끌 만한 설은 없지만 이교(彝敎, 떳떳하고 바른 가르침)에 삼가면서 성(性)과 도(道)에 근본하고 성현을 종주로 하면서 《중용》과 《대학》에 질정하고 역사 기록을 상고하면서 시사(時事)에 징험하여 말씀을 올린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비근하다 하여 할 것이 못 된다 생각 마시고 우활하다 하여 할 필요가 없다 생각 마시고, 반드시 먼저 처음 두 조목을 근본으로 삼고 더욱 성학(聖學)의 공부에 부지런히 힘쓰소서. 속히 이루려 하지도 마시며 스스로 한계를 긋지도 마시고 지극함을 다 바쳐 이에 과연 소득이 있으시면 그 밖의 일은 실로 날에 따라 밝아지고 일에 따라 충실해질 것입니다. 


이(理)와 의(義)가 마음을 즐겁게 해 주는 것은 참으로 맛있는 고기와 마찬가지이고 우리의 성정은 참으로 요순처럼 될 수 있으니, 비근하고 하찮은 가운데에도 실로 높고 깊고 원대하여 무궁한 것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고인이 이른바 “근원을 더듬어서 치도(治道)를 내고 본말을 통찰하여 대중(大中)을 세운다.”는 것이 원래 여기서 벗어나지 않으니, 여기에 이르신 뒤에야 바야흐로 소신의 말씀이 다 조술(祖述)한 바가 있고 가공으로 지어내어 전하를 깊이 속이는 것이 아님을 믿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신은 이 학문에 대해 들은 것이 너무 늦었고 병도 고질이 되어 힘써 실천하여 제 것으로 만들지 못해 전하의 성대한 뜻에 부응할 수가 없어 위축되고 두려워 감히 조정에 나오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이렇게 오게 되었으니 또 감히 이 말씀을 숨기고 다른 말씀으로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만일 전하께서 사람이 못 났다고 해서 말까지 버리지 않으시고 여기에 취하신다면 지금의 공경대부(公卿大夫)는 모두 이 말을 외고 익혀 사도(斯道)에 종사하는 자들이니, 위에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아래에는 더 좋아하는 사람이 있게 마련입니다. 전하께서 묻기를 좋아하시고 미거한 말을 잘 살피시며 남에게서 취하여 선을 행하기를 즐기시며 계속하여 덕을 밝히는 공부를 날로 더하신다면 누가 감히 정성껏 한마음으로 성덕(聖德)을 도와 이룩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신이 비록 향리에서 병들어 있다 해도 날마다 천안을 가까이 대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암혈(巖穴)에서 시들어 죽더라도 모든 생령과 함께 성스러운 은택에 젖어 들 것입니다. 신은 간절히 바라는 지극한 마음을 견딜 수 없어 삼가 죽기를 무릅쓰고 아룁니다.


[역자 주]

1.상빙(霜氷)의 경계 : 《주역》 〈곤괘(坤卦)〉에 “서리를 밟으면 장차 단단한 얼음이 이르게 된다.[履霜堅氷至]” 하였는데, 처음에 징조가 생길 때에 조심하지 않으면 장차 큰 화가 닥친다는 뜻이다.

2. 옥루(屋漏) : 방구석에 해가 스며드는 그윽한 곳을 말한다. 《시경》 〈대아 억(抑)〉에 “옥루(屋漏)에 부끄럼이 없으랴.” 한 구절이 있는데, 이것은 혼자 거처하는 은밀한 곳에서도 삼가고 조심하라는 뜻이다.

3. 눈에 온전하게 보이는 소가 없게 되고 : 포정(庖丁)이 소를 잡은 지 19년 만에 솜씨가 능숙해져 소를 눈으로 보면 온전한 소로 보이지 않고 뼈나 힘줄이 낱낱이 갈라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뜻이다. 《莊子 養生主》

4. 향원(鄕原) : 온 고을 사람으로부터 근신한다는 칭찬을 받는 사람을 말한다. 이 사람은 행동에 아무런 흠은 없으나, 여러 사람 비위만 맞추고 정작 착한 일은 하지 못하는 사람이므로, 공자(孔子)는 향원을 덕의 적(賊)이라 하였다. 《論語 陽貨》


-이황(李滉, 1502~1571), '무진년(1568, 선조1)에 올린 육조소(六條疏)', 퇴계집(退溪集)/ 퇴계선생문집 제6권/ 소(疏) 2-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권오돈 권태익 김용국 김익현 남만성 성낙훈 안병주 이동환 이식 이재호 이지형 하성재 (공역) ┃ 1968


[옮긴이 주]

1.〈관저(關雎)〉와 〈인지(麟趾)〉의 교화: 시경 국풍주남편에 나온다. 새들의 비유를 들어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하여 바람직한 부부관계를 유지할 때 자연히  자손이 번창하는 복을 노래하였다.

2.〈작소(鵲巢)〉와 〈추우(騶虞)〉의 덕화: 시경 국풍소남편에 나온다. 작소는 까치둥지에 비둘기가 마음놓고 들어와 사는 것을 노래하고, 추우는 풀을 밟지 않고 생물은 먹지않는 전설상의 범으로 봄이 되어 초목과 생물이 무성해져도 이를 해치지 않고 보호한다고 노래하였다. 이에 대해 주자는 주석을 달기를, " 문왕(文王)의 교화가 <관저>에서 시작하여 <인지>에 이르면 그 교화가 사람에게 들어간 것이 깊고, <작소>에서 드러나서 <추우>에 미치면 그 덕택이 물건에 미침이 넓다. 대개 뜻을 성실히 하고 마음을 바루는 공이 쉬지 않고 오래면 그 성숙되어 통하게 되고 잘 배합되어 두루할 수 있어 스스로 능히 그칠 수 없으니 지력의 사사로움이 능히 미치는 바가 아니다. 그러므로 서序에 <추우>로써 <작소>의 효응으로 삼으니 왕도가 이루어지니 그 반드시 전하는 바가 있음을 볼 것이다." 라고 주석을 달았다. 

3. 양궁(兩宮)은 명종궁과 선조궁을 말한다. 명종은 중종의 아들로 문정황후의 소생이다. 명종의 아들인 순회세자는 13세의 나이로 사망하여 왕위계승의 후사가 끊겼다. 후일 명종 또한 사망하자  후사가 없어서 왕실서열에 따라 명종의 아버지이자 선대 왕이었던 중종의 서자(후궁 창빈안씨의 아들) 덕흥군 이초의 셋째 아들이 왕위를 계승하여 선조 임금이 되었다. 

4. 〈무진육조소(戊辰六條疏) ‘무진육조소(戊辰六條疏)’ 는 퇴계선생이 선조에게 올린 상소문이다. 여기엔 군왕이 마땅히 가져야할 덕목과 몸가짐과 처세훈 그리고 통치철학이 담겨 있다. 이때 막 왕위에 오른 선조가 17세, 선생은 68세다. 이후에 선생은 특별히 선조를 위해서 성학십도(聖學十圖)를 저술하였다. 이듬해 벼슬에서 물러나려는 선생의 거듭된 간절한 요청이 수락되어 마침내 향리로 낙향하였다. 

5. 무진육조소의 내용은 비록 군왕을 위한 것이지만, 찬찬히 읽어 가다보면 군왕뿐만 아니라 관계를 이루며 살아가는 보통의 사람들 모두에게 해당된다고 봐도 무리가 없다. 다만 6조목을 근간으로해서 손가락을 타인을 향하고 비교와 판단과 평가의 잣대로 삼는 대신에, 자기를 향하여 돌리고 '어떻게 적용하고 실천할 것인가?'는 철저히 개인의 몫이며 그 심성과 인격에 달려 있다하겠다. 사람이 그리운 목후이관의 시대다. 성의정심, 수기치인, 존중과 배려, 조화와 균형화목과 절제, 상생과 공생, 등등 합력하여 선을 도모하고 함께 인덕을 이루어 나가는 도덕원리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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