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참으로 아는 것과 참으로 얻는 것

지난달에 김자후(金子厚)의 하인이 돌아오는 편에 편지를 받고 북평(北坪)에 잘 도착하신 것과 학문이 점점 나아감을 알게 되어, 답답하던 회포가 시원스레 풀렸습니다. 돌아가는 인편을 만나지 못하여 회답을 제때에 드리지 못하였더니, 자후가 돌아오는 편에 또 편지와 시(詩)를 보내 주시고, 겸하여 아무것도 모르는 이 사람에게 문의하시는 말씀까지 보냈으니, 감사하고 부끄럽기 그지없습니다. 


나는 벽촌에서 지내다 보니 벗이 적어 함께 학문할 사람이 없습니다. 병중에 책을 보다가 때로 생각에 맞는 곳이 있으나, 본받아 몸소 실천하는 데 이르면 더러 서로 모순되는 곳도 많습니다. 나이는 많고 힘은 부족하며, 또 사방에서 벗을 얻어 도움도 받지 못해 항상 그대에게 기대하고 있는데, 두 통의 편지에서 약석(藥石)은 주지 않고 도리어 귀머거리에게서 청력을 빌리려 하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두렵고 조심스러워서 감히 뜻을 받들 수 없습니다만, 아무 말씀드리지 않는 것도 서로 사귀는 도리가 아니므로, 끝내 감히 진심을 숨기지는 못하겠습니다. 먼젓번 편지에서 과거에 제대로 못 배운 것을 깊이 한탄하였는데, 그대는 지금 약관의 나이인데도 남보다 그렇게 뛰어나니 제대로 못 배웠다고 할 수 없을 텐데도 그렇게 말한 것은, 어찌 배운 바가 어긋나서 배우지 않은 것과 같다고 여겨서가 아니겠습니까? 


과거의 잘못을 깨닫고 고치기를 생각하며, 또 궁리(窮理일을 처리하거나 개선하기 위하여 마음속으로 이리저리 따져 깊이 생각함)와 거경(居敬,항상 마음을 바르게 가지고 몸가짐을 조심하여 덕성을 닦음)하는 실제에 종사할 줄 알고 있으니, 허물을 고치는 데 용감하고 도(道)에 향하는 데 간절하여 그 방향을 그르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인(聖人)의 시대는 멀고 성인의 말씀은 사라져서, 이단(異端)이 참된 이치를 어지럽히게 되었으므로, 옛날에 총명하고 재주 있고 걸출한 인사(人士)로서 처음부터 끝까지 이단에 미혹되어 빠진 자들이야 본래 논평할 가치도 없지만, 처음에는 정도(正道)를 지키다가 마지막에 사도(邪道)에 빠진 자도 있고, 중립을 취해 양쪽 다 옳다고 한 자도 있으며, 겉으로는 배척하는 체하면서 속으로는 찬양하는 자도 있으니, 그들이 이단에 빠져 들어감이 정도의 차이는 있을망정, 하늘을 속이고 성인을 무시하며 인의(仁義)를 가로막는 죄는 똑같습니다. 


오직 정백자(程伯子)ㆍ장횡거(張橫渠)ㆍ주회암(朱晦菴) 같은 선생들만이, 처음에는 조금 드나듦이 없지 않은 것 같지만 곧 그 잘못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아, 천하의 큰 지혜와 대단한 용기가 아니면, 그 누가 능히 홍수 같은 탁류를 벗어나 참된 근원으로 돌아올 수 있겠습니까


지난날 남들이, 그대가 불교 서적을 읽고 꽤 중독되었다고 하는 말을 듣고 오랫동안 애석하게 여겼었는데, 일전에 나를 찾아와 그 사실을 숨기지 않고 그 잘못을 말하였으며, 이제 두 번 온 편지의 뜻이 또 이러함을 보니, 나는 그대가 도에 함께 나아갈 수 있음을 알겠습니다. 두려운 것은, 새로 맛들이려는 것은 달지 않고 익숙한 곳은 잊기 어려운 법이라서, 오곡(五穀)의 열매가 여물기 전에 가라지와 피가 먼저 익지나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을 모면하려면 역시 다른 곳에서 찾기를 기다릴 것이 없습니다. 오직 궁리(窮理)ㆍ거경(居敬)의 공부에 충분히 노력하면 되는 것인데, 이 두 가지를 하는 방법은 《대학》에 나와 있고, 장구(章句)에서 밝혔으며, 《혹문(或問)》에서 자세하게 말해 놓았습니다. 그대가 방금 이 책들을 읽고도 오히려 얻은 바 없음을 근심하는 것은, 글 뜻만 파악하고 자신의 심신(心身)과 성정(性情) 속에 배어들지 않아서가 아니겠습니까?


비록 심신과 성정에 배어들었다 해도 어쩌면 참되고 절실하게 체험하여 그 기름진 것을 맛볼 수 없어서입니까? 궁리와 거경 두 가지는 서로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기는 하지만 실은 두 가지의 독립된 공부이니, 절대로 단계가 나누어짐을 근심하지 말 것이며, 오직 반드시 서로 병행해 나가는 방법으로 해야 합니다. 때를 지체하지 말고 이제 바로 공부를 시작하여야 하며, 의심하여 머뭇거리지 말고 어디서나 의당 힘써야 합니다. 


마음을 비우고 이치를 살펴야지 먼저 자기의 의견을 정해 버리지 말아야 하며, 차츰차츰 쌓아 가서 완전히 성숙하게 해야지 단 시일에 효과를 보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얻지 않고는 그만둘 수 없다는 자세로 평생의 사업으로 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치가 무르녹아 이해되고 경(敬)이 전일한 경지에 이르는 것은 모두 깊이 나아간 뒤에 저절로 얻을 수 있을 뿐입니다. 


어찌 단번에 깨달아 그 자리에서 성불(成佛)한 자가 어슴푸레하고 어두운 곳에서 어렴풋이 영상(影象)을 보고서 문득 큰일이 이미 끝났다고 하는 것과 같을 수 있겠습니까? 


따라서 이치를 궁구하여 실천에서 체험해야 비로소 참으로 아는 것이 되고, 경을 위주로 하여 마음을 두셋으로 분산함이 없어야 비로소 참으로 얻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 비록 이치를 보되 얕고 묽음을 면치 못하며 비록 경을 견지하다가도 혹 잠깐 사이에 놓친다면, 일상적으로 응접하는 사이에 뒤이어 무너지는 것이 끝도 없이 닥쳐올 것이니, 어찌 이른바 쓸데없는 생각이나 식색(食色)과 한담(閑談)만이 해가 될 뿐이겠습니까?


그러나 학문을 하는 초기에는 이치를 봄이 참되지 못하고 경을 견지하다가 자주 놓치는 것도 사람들의 공통된 근심입니다. 나 같은 사람은 처음에만 그런 것이 아니라 백발노인이 되어서도 더 심해지다 보니, 늘 내 한평생을 헛되이 보낸 것이 두려워, 같은 시대에 살고 있는 군자들에게 기대함이 내 몸의 굶주림과 목마름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일찍이 이런 의미에서 이 시대의 사람들을 살펴보니, 영특한 자질과 뛰어난 식견을 가진 이가 한둘이 아니건만 영달(榮達)하지 못하면 과거(科擧)에 마음을 빼앗기고 영달하고 나면 이해(利害)에 골몰하여 비록 간혹 뜻이 있어도 과감하게 행하지 못하는 자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대가 간직한 것은 이와는 다르니, 일찍이 과거의 잘못된 것을 어렵지 않게 끊어 버리는 걸 보고 알았습니다. 그대가 실로 어렵지 않게 끊어 버리는 마음을 세상에 옮겨서 실행한다면, 비록 과거와 이해가 목전에 닥치더라도 사람들처럼 이익에 유혹되거나 빈천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란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 점이 내가 그대에게 고마워하는 까닭입니다. 


다만 남보다 뛰어나게 앞선 자질이 강해(講解)하기에 용이하다 보니 언론(言論)으로 드러난 것에 깊은 고민과 노력에서 말미암지 않는 것이 있고, 미루어 실행하는 데 나타나는 것에 간절하고 독실한 점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그만두지 않고 이런 식으로 한다면 끝까지 세속의 풍습(風習)에 물들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없는 것이 정말로 두려워, 나 자신에게도 이런 점이 있는지 없는지 따져 보지도 않고 바로 말하였습니다. 두 번째 편지에서 물어온 것은 별지(別紙)에 대강 적었습니다. 모두 양해하여 살피시기 바라며 이만 줄입니다.


별지(別)


주자(朱子)가 말하기를, “안정된 뒤에 능히 생각하는 것은 안자(顔子)가 아니면 할 수 없다.”고 한 데 대해서는, 진실로 그대가 의심하는 바와 같습니다. 그러나 성인의 말은 위로도 통하고 아래로도 통하며, 정수(精粹,불순한 것들이 끼어들지 않거나 제거된 가장 순수한 상태)한 것과 조잡(粗雜)한 것이 구비되어 있어서, 그 사람의 학문의 깊이에 따라 모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안정한 뒤에 능히 생각한다.”는 것은, 조잡한 수준에서 말하면 중인(中人) 이하라도 힘써 나아갈 수 있지만, 정수의 극치에서 말한다면 대현(大賢) 이상이 아니면 진실로 능히 할 수 없는 바가 있습니다. 주자의 이 말은 바로 그 극치에서 말한 것일 뿐입니다. 만약 이것을 구실 삼아 스스로 포기하는 자가 있다면, 그 사람의 식견과 취향은 이미 함께 도(道)를 의논할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어찌 그 사람이 구실 삼는 것을 근심하여 우리의 설(說)을 낮추어 나아갈 필요가 있겠습니까. 구실을 삼는다고 한두 마디는 조금이라도 이러한 뜻을 가졌다면 요순(堯舜)의 도에 함께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일이 없을 때에는 마음을 보존하고 성(性)을 길러서 늘 깨어 있을 뿐이고, 강습하고 응접할 때가 되면 의리를 생각하고 헤아린다는 것은, 원래 이렇게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대체로 의리를 생각하기 시작하면 마음은 이미 움직여서 벌써 정(靜)할 때의 분야에 속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뜻이 분명하여 알기 어렵지 않은 것 같은데 사람들이 참으로 아는 이가 드물기 때문에, 정한 때에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곧 멀고 아득하고 적막한 상태로 인식하고, 동(動)할 때 생각하고 헤아린다는 것을 또 정신없이 외물(外物)을 쫓아가서 도무지 의리(義理) 위에 있지 않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 때문에 이름은 학문을 한다고 하나 끝내 학문에서 힘을 얻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직 경(敬)을 위주로 하는 공부만이 동과 정을 관통하여 거의 용공(用工)하는 데 그르침이 없을 것입니다.


이치를 궁구하는 일은 여러 가지이니, 한 가지 방법에만 얽매일 수 없습니다. 한 가지 일을 궁구하다가 알아내지 못하면 문득 싫증과 권태를 일으키고, 드디어 다시는 이치를 궁구하는 일을 하지 않는 자라면 시일이나 끌면서 도피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지 않고 궁구하는 일이 간혹 복잡하게 얽힌 곳을 만나서 힘써 찾아보아도 통할 수 없거나, 혹은 나의 본성이 어쩌다 이런 데 어두워서 무리하게 밝혀낼 수 없을 때에는, 우선 이 한 가지 일은 그냥 두고 따로 다른 일에 대하여 궁구합니다. 이렇게 궁구하고 또 궁구하면 누적되어 깊어지고 익숙해져서 자연히 마음이 점차 밝아지고, 의리의 실체가 점차 눈앞에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 다시 지난번에 궁구해 내지 못했던 일을 끄집어내어서 자세하게 실마리를 찾아내고, 이미 궁구해 낸 도리와 함께 참고하여 조사하고 대조하여 생각하면 어느새 전에 알아내지 못한 것까지 일시에 드러나 밝혀져서 깨달아 알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이치를 궁구하는 살아 있는 방법이니, 궁구해 낼 수 없다고 하여 그만 내버려 두라고 말한 것이 아닙니다. '한 가지 일이 완전히 풀린 뒤에 차례를 따라 조금씩 나아가라'는 연평(延平)의 설(說)은, 바로 궁리하는 데 있어서 떳떳한 규준(規準)으로서 마땅히 이렇게 하여야 합니다. 그 의미가 더욱 깊고 멀어서, 정자(程子)의 말과 애당초 서로 방해되는 것이 아니니, 격암(格菴)이 논한 것은 의심할 것이 없습니다.


거만함과 게으름에 대한 설은, 호씨(胡氏)가 보통 사람들을 위하여 말한 것이라고 한 것이 옳습니다. 그러므로 장(章)의 첫머리에 ‘인(人)’이란 한 글자로 말하였고, 주자(朱子)가 이것을 풀기를 “사람[人]은 보통 사람을 말한다.” 하였고, 또 말하기를, “보통 사람들은 그 향하는 바에 대하여 살피지 않는다.” 하였으니, 그것이 본래 군자를 위하여 말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의 병통을 말한 것은 바로 군자를 깨우쳐서 병통을 알고 편파적인 것을 고치게 하여 중용의 도에 이르게 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만함과 게으름이란 두 마디에 대해서도 군자의 입장에서 처신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논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의 입장에서 말한다면 사람에 따라서는 거만하게 할 수 있다거나 인정상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흉덕(凶德)에 관계됨을 면치 못하는 것은, 그것이 한쪽으로 편파되었기 때문입니다. 


군자의 경우 그 사람이 평범하기 때문에 내가 예우하는 것을 간략하게 하는 것은 사리에 당연한 법칙이며, 또한 편파적이라는 생각에 한 점도 걸리는 것이 없어 그 혼후하고 진실되고 중정(中正)하고 화평한 기상이 전과 다름없이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비파를 끌어당기고 안석에 기대어 누운 일을 주자(朱子)가 인용하여 증명한 것은, 공자나 맹자가 거만하고 게을렀다고 말한 것이 아니고, 거만함과 게으름이 성현의 처사에 있어서는 이와 같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말한 것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어찌 군자도 똑같이 거만하고 게으르게 된다고 혐의하겠으며, 또한 어찌 배우는 자가 남에게 거만하고 세상을 가볍게 여기는 것을 염려하겠습니까. ‘오(敖)’ 자는 흉덕(凶德)을 의미하는 ‘오(敖)’ 자와 본래 글자만 같고 뜻은 다른 것은 아니지만, 군자에 대하여 말할 때만 그 뜻이 조금 다를 뿐입니다.


온공(溫公)이 이미 ‘격물(格物)’의 ‘격’을 잘못 해석하여 ‘막는다’는 뜻으로 하였으니, 그의 설이 실로 정자나 주자와는 같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가 학문하는 것을 널리 논한 것은 의리에 어긋나지 않는 점이 있으니, 이른바 “타고난 자질이 순수하고 아름다워서 은연중에 도의 오묘함에 부합되는 자”인 것입니다. 보내온 편지에, “사물의 이치가 눈앞에 다 모였을 때 옳은 것을 배운다.”라고 한 대목을 격물에 가깝다고 보았고, “옳은 것을 배운다.”는 설을 깊이 배척하여 잘못되었다고 하였는데, 내가 전일 면대하여 논한 것이 어떠하였는지 기억하지 못하지만, 지금의 나의 견해로 말한다면 그대의 견해와는 같지 않은 듯합니다. 


그 아래위의 글 뜻을 거듭 살펴보고 지(知)와 행(行)에 관한 설로 헤아려 보니, 이른바 “인의(仁義)의 근원을 엿보고 예악(禮樂)의 실마리를 더듬는다.” 한 것은 바로 격물의 일이며, “사물의 이치가 다 눈앞에 모였다.” 한 것은 곧 치지(致知)의 공효이며, “옳은 것을 배운다.” 한 것은 힘써 행해야 할 일이며, 또 “옳은 데 이르지 못하면”이라 한 것은 실행하여도 이르지 못해 스스로 힘쓴다는 말입니다. 


무릇 “천하의 이치가 다 눈앞에 모인다.”는 것은 이치를 궁구함이 깊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것이며, 이치를 궁구한 것이 깊기 때문에 천하의 모든 이치가 한눈에 다 파악이 되는 것입니다. 어느 것이 옳은지 어느 것이 그른지를 알아서 그 옳은 것을 배운다는 것은 아는 것을 인하여 몸소 실천하는 것입니다.


‘옳다’는 것은 선(善)과 같으며, ‘배운다’는 것은 행한다는 것과 같습니다. “옳은 것을 배우되 아직 그 옳은 데 이르지 못하면”이라고 한 것은, 한 가지 선을 얻으면 정성껏 마음에 새겨 놓지만 아직 지선(至善)의 경지에는 이르지 못한 상태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만약 “옳은 것을 배운다.”는 말을 격물하는 일이라고 본다면, 그 위 문장의 “인의의 근원을 엿보고 예악의 실마리를 더듬는다.”든가 “사물의 이치가 눈앞에 모였다.”라는 몇 구절에서 이미 ‘지(知)’를 다 설명했는데 또 한 구절을 덧붙여 지를 말한다면 지를 말하는 것이 중복됩니다. 아래 대문에서도 ‘행(行)’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다가 갑자기 “옳은 데 미치지 못하면”이란 한 구절을 뜬금없이 “이르지 못해 스스로 힘쓴다.”는 뜻으로 본다면, 행을 말한 대목에 두서가 없는 것이 됩니다. 


온공의 학문이 전수(傳授)한 것은 없지만 이렇게 엉성하고 어그러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더구나 나의 견해대로 이 두 구절의 뜻을 찾는다면, 온공이 배우기를 미치지 못할 듯이 하면서도 잃을까 두려워하여, 부지런히 노력하여 학문하는 즐거움이 있는 줄만 알고 그 밖의 것은 알지 못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아래의 “남에게서 무엇을 구하며 밖에서 무엇을 기대할 것인가.”라는 말을 붙인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온공이 홀로 즐긴 실제의 일이고, “뜻이 게을러진다.” 이하의 글은 곧 즐거운 나머지 생기는 일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이 두어 구절은 잘못된 것이 없을 뿐만 아니라 실로 사리에 맞는 이론인 것입니다. 


사물의 이치를 그 근본에 따라 논하면, 원래 지선이 아닌 것이 없으나, 선이 있으면 악이 있고 옳은 것이 있으면 그른 것이 있는 것도 필연적인 현상입니다. 그러므로 무릇 격물하고 궁리하는 까닭은, 시비와 선악을 연구하여 밝혀서 버리거나 취하려는 것뿐입니다. 이것이 상채(上蔡)가 옳은 것을 찾는 것으로 격물을 논한 이유입니다. 


이제 “사물의 이치가 지선하지 않은 것이 없으니, 어찌 일찍이 옳지 않은 것이 있겠는가.”라고 하면서 이것으로 온공의 “옳은 것을 배운다.”는 설을 비방하니, 이와 같이 이치를 논한다면 장차 한쪽으로 치우치게 되어 안과 밖이 일치하는 학문이 되지 못할까 염려됩니다.


다리를 베는 것[割股]에 대한 견해는 선유(先儒)들이 다 논의하였습니다. “절박함이 극도에 달해 더 이상 다른 사람에게서 취할 수 없게 되어 혹 부득이하게 권도(權道)로 처리를 하는 수가 있다.”고 한 것은 아마 이 외에 다시 다른 도리가 없다면 차라리 제 몸을 손상해서라도 어버이의 목숨을 구제하는 것 또한 자식 된 자의 지극히 애통한 심정이어서일 것입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사람들에게 이것을 효도라고 가르칠 수는 없습니다. 그 때문에 주자는 단지 “효도에 가깝다.”고만 하고 지선이라고는 하지 않은 것입니다. 


대체로 일이 어쩔 수 없는 곳에 이르러 만족할 만한 좋은 도리가 없으면 부득이 차선을 택하여 따르는 것이 이른바 권도인데, 그런 시점에서만 써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더욱 살펴서 처리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혹 괴이하고 편벽되어 도를 어지럽히는 죄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그대가 논한 바, “하나를 주장하여 옮겨감이 없고 온갖 변화에 대응한다.” 하는 뜻은 매우 좋습니다. 주자(朱子)의, “상대에 따라 대응하며 이 마음에는 원래 아무 사물도 있지 않다.”라는 말과, 방씨(方氏, 송대의 성리학자 방봉신(方逢辰))의, “속이 비었어도 주재가 있다.”고 한 말을 인용한 것은 더욱 적확합니다. 


그러나 오직 이 이치는 알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행하기가 어려운 것이며, 행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참됨을 쌓고 오래 힘쓰기가 더욱 어려운 것입니다. 이 점이 노쇠하고 졸렬한 내가 심히 두려워하는 바이며, 또한 그대를 위하여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황(李滉, 1502~1571), '이숙헌(李叔獻) 이(珥) 에게 답하다(答李叔獻) 무오년(1558, 명종13)', 퇴계집(退溪集)/ 퇴계선생문집 제14권/ 서(書) 2-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권오돈 권태익 김용국 김익현 남만성 성낙훈 안병주 이동환 이식 이재호 이지형 하성재 (공역) ┃ 1968


 "분발하지 않으면 열어 가르쳐 주지 않고, 표현하고자 하나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 더듬거릴 정도에 이르지 않으면 일으켜 주지 않는다. 한 귀퉁이를 들어 가르쳐 주었는데도 나머지 세 귀퉁이를 미루어 알지 못하면 되풀이하지 않는다(擧一隅 不以隅三 則不復也)." <논어, 술이편>


"하나를 듣고 열을 아는 것은 진실로 쉽지 않다. 하지만 하나를 들어 둘을 알고, 한 모서리를 들어 세 귀퉁이를 뒤집는 것(擧一反三)은 또한 학문하는 자에게서 흔히 있는 일이다...책을 초록해 적는 것은 한 모서리를 들어 세 귀퉁이를 뒤집는 방법이다...한 모서리를 들어 세 귀퉁이를 뒤집고, 하나를 배워 열을 아는 것은 배우는 자의 책무다. -〈정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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