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알량한 모이와 한 국자 물로는 그 주림과 목마름을 적실 수 없다
작년 기해년(1659, 효종10) 10월에 이교(李矯)가 하얀 학 한 마리를 데려왔다. 11월에는 이지형(李之馨)이 또 하얀 학 한 마리를 데려왔는데, 둥근 목덜미와 기다란 다리는 앞서 온 녀석만 못했지만, 붉은 정수리를 내렸다 올렸다 하면서 꾸국꾸국 맑은 울음소리로 때를 알리고, 길들이는 데도 시일이 얼마 걸리지 않아 박자에 맞춰 빙빙 돌며 춤을 추었으니, 이 점은 앞서 온 녀석보다 오히려 나았다.
정원지기는 나중에 온 녀석을 ‘작은 학’이라 불렀는데, 성질이 매우 유약하여 좁쌀 알갱이를 주면 늘 큰 놈에게 빼앗기곤 했다. 그러나 새장에서 풀어주고부터는 마음대로 다니면서 물을 마시고 모이를 쪼았다.
금년이 되어 때로는 날아서 앞의 시냇물까지 내려가고 때로는 산 위로 날아오르기도 했는데, 아침저녁으로 밥 때가 되어 부르면 그때마다 화답하여 소리쳐 우짖으며 왔다. 소장공(蘇長公 소식(蘇軾))의 〈방학정기(放鶴亭記)〉를 읽고 빗대어 보아도 아마 이보다 낫지 않았을 것이다.
이웃의 늙은이나 산야(山野)에 사는 손님들이 올 때면 내 비록 말수가 적은 사람이지만 인사를 나눈 뒤에는 나도 모르게 학을 길들인 것을 자랑하는 말이 입에서 나왔으니, 두 이씨가 나 같은 늙은이에게 맑게 완상하는 흥취를 준 것이 참으로 어떠하겠는가?
가을 7월이 지나갈 무렵 바야흐로 벼가 익어가자, 농사짓는 자들이 대체로 두 마리 학이 멋대로 곡식을 짓밟고 쪼아 먹을까봐 걱정하였다. 아이들이 말하기를,
“우리 농사는 아까울 것이 없지만 이웃의 농사에 해를 입히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더구나 예전에 우리 집에서 키우던 학이 집을 떠나 멀리 가서 노닐다가 사냥꾼의 주살에 맞아 죽었으니, 어찌 농사에 손해를 끼치는 정도로 그치겠습니까. 도리어 학이 화를 입게 될 것입니다. 처음 키울 때처럼 한 구석에 우리를 만들어 학을 넣어 두면 학도 사람도 다 이득일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이 말대로 한 지 겨우 열흘 남짓 되었을 때 작은 학이 갑자기 아무 이유 없이 죽어버렸다. 여러 아이종을 시켜 온몸을 어루만져보게 하였더니 여우와 살쾡이가 물어뜯거나 독한 벌레들이 깨물어 상처 입은 곳은 전혀 없고 그저 가슴팍이 앙상하였다.
어허, 이것은 내 잘못이다. 늪지대에 사는 꿩은 새장 속에 살기를 바라지 않고, 새끼 돼지는 거름흙에서도 달게 자는 법이다. 지금 이 학이 비록 사람들 손에 오래도록 길들여지긴 했으나 하루아침에 놓여나 자유롭게 되었으니, 우리와 새장이 그리워할 만한 것인 줄 어찌 알았겠는가?
그런데 뜻하지도 않게 좌절되고 억눌리어 높이 날아오르려는 기세가 꺾이게 되었다. 게다가 우둔한 종에게 지키라고 하였으니, 알량한 모이로는 그 주림을 채울 수 없었고, 한 국자 물로는 그 목마름을 적실 수 없었다. 속으로는 타는 듯 열이 오르고 겉으로는 살이 내려 점차 죽어가는 데도 사람은 깨닫지도 알아채지도 못했으니 허물을 어디에 돌리랴.
학이 비록 미물이지만 만물 중에서 맑고 늘씬하기로는 학 만한 것이 없다. 그래서 고상한 사람들과 빼어난 선비들이 많이들 칭송하는 것이다. 내가 세상 바깥의 사람이 되었기에 산수 간을 높이 날아오르는 이 두 마리 학을 얻고서 흥이 또한 얕지 않았는데, 이제 한 마리를 잃으니 마음속에 탄식이 없을 수 있겠는가. 정원지기에게 시켜 뜰 한 구석 깨끗하고 한산한 곳에 고이 묻어주게 하고, 마침내 이 일을 서술하여 옛사람의 〈예학명(瘞鶴銘)〉을 잇노라.
※[역자 주]
1.늪지대에 사는 꿩 : 《장자》 〈양생주(養生主)〉에 “늪지대에 사는 꿩은 열 걸음 걷고 나서 한 번 쪼아 먹고 백 걸음 걷고 나서 한 번 물을 마시지만 새장 속에서 길러지는 것을 원하지는 않으니, 새장 속에서는 비록 잘 먹어 기운이 왕성할지 몰라도 자기 마음대로 살 수가 없기 때문이다.”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2. 새끼돼지 : 《사기》 〈노자한비열전(老子韓非列傳)〉에 “교제(郊祭)에 희생으로 쓰이는 소는 몇 해 동안 잘 먹고 비단으로 치장하여 태묘에 들어가는데, 이때에는 새끼 돼지처럼 되고자 해도 될 수 없다.”라고 하였다. 당(唐)나라 한유(韩愈)의 시 〈기최이십육입지(寄崔二十六立之)〉에도 “새끼 돼지는 거름흙에서 잠들면서도 태묘의 희생이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孤豚眠粪壤, 不慕太庙牺.〕”라는 구절이 있다.
3. 육조(六朝) 때 양(梁)의 은사 도홍경(陶弘景)이 초산(焦山) 석벽 위에 지어 새긴 글이다.
-조경(趙絅, 1586~1669), '학을 묻어 준 이야기〔瘞鶴說 예학설〕', 『용주유고(龍洲遺稿) 제12권/설(說)-
▲원글출처:ⓒ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 최예심 이라나 장유승 (공역) ┃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