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선한 행위일지라도 본성을 헤아리지 않은 배려와 돌봄은 위험하다

안연이 동쪽 제나라로 가게 되었는데, 공자가 걱정하는 얼굴빛을 하고 있었다. 자공이 자리에 내려앉으며 물었다. “안연이 동쪽 제나라로 가게 되었는데 선생님께서는 얼굴에 걱정하는 빛이 역력하시니 어찌된 일입니까?”


공자가 말했다.“좋은 질문이다. 옛날 관자가 한 말 중에서 내가 매우 훌륭하게 여기고 있는 것이 있다. 그는 주머니가 작으면 큰 것을 지니고 있을 수가 없고, 줄이 짧으면 깊은 우물물을 길을 수가 없다고 했다. 이 말은 운명에는 이미 정해진 것이 있고, 형체에는 적절히 맞는 것들이 있어서, 그것들은 늘이거나 줄일 수 없다는 것이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안연은 제나라 임금에게 가서 요순과 황제의 도를 이야기하며, 수인과 신농의 말을 강조할 것이지만, 제나라 임금은 마음 속으로 그런 것들을 추구해 보아도 그것들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해를 못하면 안연에게 의혹을 품을 것이고, 의혹을 품으면 안연을 죽이고 말 것이다. 너는 이런 이야기를 듣지 못하였느냐?


옛날에 어떤 새가 노나라 교외에 와서 내려앉았다. 노나라 임금은 그 새를 맞이하여 종묘로 불러들여 잔치를 베풀고, 구소의 음악을 연주하면서 쇠고기, 양고기, 돼지고기로 안주를 삼았다. 새는 눈을 멍하니 뜨고 걱정하고 슬퍼하면서 한 조각의 고기도 먹지 못하고, 한잔의 술도 마시지 못하고서 사흘만에 죽고 말았다.


이것은 사람인 자기를 양육하는 방법으로 새를 양육했기 때문이다. 그는 새를 기르는 방법으로 그 새를 기르려하지 않았던 것이다. 새를 기르는 방법으로 새를 기르려면 마땅히 그가 살던 곳에 살게 하고, 호숫가에 노닐게 하며, 강이나 호수에서 헤엄치게 하고, 미꾸라지나 송사리를 잡아먹게 하며, 같은 새들과 줄지어 날아가 내려앉고 멋대로 유유히 지내게 해야만 되는 것이다. 


새는 사람의 말조차 듣기 싫어하거늘 어찌 시끄러운 음악을 견디겠느냐? 함지나 구소의 음악을 동정의 들판에서 연주한다면, 새들은 그 소리를 듣고 날아가 버리고, 짐승들은 그 소리를 듣고 달아나 버리고, 물고기들은 그 소리를 듣고 깊숙이 물 속으로 들어가 버릴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만은 그것을 들으면 흥이 나서 서로 모여들어 둘러싸고 구경을 한다.


물고기는 물 속에서 살지만 사람은 물 속에 들어가면 죽어 버린다. 이 둘은 서로 자기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다른 것이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옛날 성인들은 그들의 능력을 같게 생각하지 않고, 그들이 할 일을 같게 맡기지 않았다. 이름은 사실을 근거로 결정하고, 법도(義, 옳고 그름)는 모두 본성(각자가 가진 성질)에 어울리도록 설정했다. 그래서 그것을 조리가 통달하고 행복을 지속하는 방법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원문생략/ 번역문 출처: 옛글닷컴)


- 장자(莊子) 외편(外篇) 第18篇 지락(至樂)(6)-


"이노(吏奴: 노예근성을 가진 벼슬아치, 즉 탐관오리)의 무리는 배우지 못하고 아는 것이 없어 오직 인욕(人欲)이 있고 천리(天理)를 모른다. 내가 바야흐로 힘써야 하는데 어찌 남을 책하리요."  -정약용(목민심서)-


"사랑의 느낌을 혼동하는 사람들은 자신만을 위하는 자기 위안적인 성격을 가진 경우가 많다. 자신의 감정 속에 사랑한다는 느낌의 증거를 찾아내는 것은 쉽고 즐거운 일이다. 그러나 실제 행동 속에서 사랑의 증거를 찾는 것은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M.스캇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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