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만물은 하나같이 가지런하고 평등한 것
황하의 신(河伯)이 말했다. “그렇다면 저는 무엇을 해야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합니까? 저의 출처와 진퇴를 취사선택함에 있어서 도대체 저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북해의 신이 말했다. “도의 입장에서 볼 때 무엇을 귀하게 여기고, 무엇을 천히 여기겠는가? 이런 경지를 아무 구별이 없이 혼돈으로 통일된 상태인 반연((反衍)이라고 한다. 자기 뜻에 구속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면 도에 크게 어긋나게 된다. 도의 입장에서 볼 때 무엇을 적다하고 무엇을 많다 하겠는가? 이런 경지를 구별 없이 연결되는 상태를 말하는 사시(謝施)라 한다. 한편으로만 치우치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그런즉 도에 어긋나게 된다. 엄격하기가 나라의 임금과 같아서 사사로운 은덕을 베푸는 일이 없어야 한다. 유유자득하기가 제사를 받는 땅의 신과 같아서 사사로이 복을 내려주는 일이 없어야 한다. 대범하기가 끝이 없이 확 트인사방(四方, 동서남북)과 같아서 아무런 경계지음이 없어야 한다. 만물을 다 같이 평등하게 여겨 두루 포용하고 그 어떤 사람만을 아껴주거나 도와 주는 일이 없으면, 이것을 일러 일정한 넓이와 경계가 없어 아무데도 치우침이 없는 무방(无方)이라 하는 것이다.
만물은 하나같이 가지런하고 평등한 것이니, 어느 것이 길고 나으며 어느 것이 더 짧고 못하다고 단정지을 수 있겠는가? 도(道)에는 시작도 끝도 없지만, 사물에는 삶과 죽음이 있다. 그래서 사물의 완성은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사물은 어떤 때는 비어 있다가도 어떤 때는 차게 마련이어서 그 형세에는 일정한 이치가 없다. 세월은 막을 수가 없고, 흘러가는 시간은 멈출 수가 없다. 생성하고 소멸하며, 찻다가 비는 일을 반복하여 게속하고 그치면 또 시작을 한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위대한 도의 뜻을 얘기하고 만물의 이치를 논하는 까닭인 것이다.
사물의 생성은 말이 뛰거나 달리는 것처럼 변화한다. 조금도 변하지 않고 있는 것이란 없고, 잠시도 바뀌지 않는 것이란 없는 것이다. 그런데 무엇을 하겠고, 무엇을 하지 못하는가? 그대로 스스로 변화하게 내버려두면 그만이다.
-장자(莊子) 외편(外編),秋水篇(추수편)부분 발췌 -
▲원글출처: 인터넷 여기저기 (※개인적으로 원만한 이해를 위해 인터넷에 공개적으로 올라와 있는 여러 번역글들과 원문을 비교 참고하여, 부분적으로 맥락에 맞게 일부분을 다듬고, 약간 고쳤다. 맥락을 같이하는 전체 글이 꽤 길다. 물론 하백이 질문하는 내용을 중심으로 각 단락을 끊어 읽어도 독자적인 주제가 가능하다. 옮기는 김에 그냥 맥락이 연결되는 부분 전체를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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