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시가 사람을 궁하게 만든다는 것에 대한 논변
옛날 구양영숙(歐陽永叔, 구양수)이 매성유(梅聖兪)의 시를 논하며 말하기를 “세상 사람들이 ‘시인은 출세한 사람이 적고 궁한 사람이 많다.’라고 하는데, 시가 사람을 궁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궁한 사람이라야 시가 공교로워진다(盖非詩能窮人 殆窮者而後工也).”라고 하였다.
매성유는 시에 능하여 세상에 크게 이름이 났으나 그의 지위가 남보다 앞서지 못하였기 때문에 구양영숙이 이렇게 말하여 해명한 것인데, 이는 마음에 격발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체로 시는 사람의 재주 고하에 따라 성정(性情)에서 발로된 것이므로 지력(智力)으로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억지로 노력하여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궁하게 살면서도 잘하는 사람도 있고 높은 지위에 앉아서도 잘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궁하게 살면서도 잘하지 못하고 높은 지위에 앉아서도 잘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대개 재주는 하늘에서 부여받는 것이고 학문은 사람이 성취하는 것이므로 학문은 노력하여 성취할 수도 있지만 재주는 구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고인이 활을 당기는 것으로 그 역량을 비유하였다.
그러나 예로부터 시인들이 대부분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렸기 때문에 시가 사람을 궁하게 만든다는 설이 있게 된 것이다. 혹은 알아주는 임금이 없어서 궁하고 혹은 명철한 임금이 버려서 궁하고 혹은 감회로 인하여 궁하고 혹은 현도(玄都)*로 인하여 궁하고 혹은 월식(月蝕)*으로 인하여 궁하기도 하였는데, 맹교(孟郊, 당(唐)나라의 시인)의 궁한 바는 그중에서도 더 궁하였다.
대체로 이두(李杜, 이백과 두보)의 재주로도 세상에 용납되지 않았으니, 이것이 어찌 시가 빌미가 되어서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후세에 시인을 애석하게 여긴 사람들이 구양영숙의 말 한 마디를 천고의 표준으로 삼은 것이다.
대체로 문장이라는 것은 불후의 성사(盛事)인데, 시 또한 그중의 하나이다. 성정을 도야하고 물상을 모사할 뿐만이 아니라, 교묘하게 조화의 껍데기를 벗겨 내고 신묘하게 귀신의 정신을 빼앗아 내므로 조물주가 매우 꺼려한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그 사람의 신체를 굶주리게 하고 그 사람의 심장을 시름겹게 하며 그 사람으로 하여금 꺾여 하위에 있게 함이 용렬한 사람과도 비할 수 없으니, 이것이 어찌 조물주가 시에 능한 사람에게 인색하여 그렇게 한 것이 아니겠는가.
한번 논해 보건대, 공교로운 것과 졸렬한 것은 재주에 기인하고 곤궁한 것과 현달한 것은 운명에 기인한다. 재주는 나에게 있어도 공교롭거나 졸렬한 것을 나누어 줌은 하늘에 달려 있고, 명은 하늘에 있어서 곤궁하거나 현달한 운수는 인력으로 되지 않는다. 만약 그렇다면 공교로운 사람은 본래부터 공교롭고 졸렬한 사람은 본래부터 졸렬하고 곤궁한 사람은 본래부터 곤궁하고 현달한 사람은 본래부터 현달한 것이다.
나의 공교로운 것을 하늘도 빼앗지 못하는데 남들이 졸렬하게 만들 수 있겠으며, 나의 현달한 것을 하늘도 바꾸지 못하는데 남들이 곤궁하게 만들 수 있겠는가. 그러나 세상에 시로 이름이 난 사람은 대부분 곤궁하여 당시에 뜻을 펴지 못하고, 조그만 기량을 가진 사람은 모두 다 당로(當路, 정권을 잡음, 중요한 직위를 맡음)에서 의기양양하지만 그 속을 두들겨 보면 텅텅 비었다. 이것이 어찌 하늘이 시에 능한 사람을 곤궁하게 하고 조그만 기량을 가진 사람을 현달하게 한 것이 아니겠는가. 구양영숙이 그렇게 말할 만도 하다.
그러나 후산(后山, 송(宋)나라 진사도(陳師道))의 설에는 “나는 시가 사람을 현달하게 하는 것만 보았고, 시가 사람을 곤궁하게 만든 것은 보지 못하였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대체로 구양영숙의 설을 깨뜨리면서 이러한 달론(達論)이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의 설은 모두 다 마음속에 격발을 받아 그렇게 말한 것이니, 어찌 치우친 생각이 아니겠는가.
나의 뜻에는, 재주의 공교로운 것과 졸렬한 것은 제각기 분수에 따르고 운명의 곤궁한 것과 현달한 것은 제각기 운수에 맡겨야 한다고 본다. 이것이 바로 천명을 편안히 받아들여 스스로 즐기는 것으로서 어디로 가나 자득(自得)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설은 쓸데없는 군더더기이다.
※[역자 주]
1. 현도(玄都), 월식(月蝕) : 현도는 《태현경(太玄經)》이고 월식은 〈월식시(月蝕詩)〉이다. 《사문유취(事文類聚)》 권29에 손초(孫樵)가 가생(賈生)에게 보낸 편지에 “양웅(揚雄)은 《태현경》 때문에 궁하였고 옥천자(玉川子)는 〈월식시〉 때문에 궁하였다.”라고 하였다.
-차천로(車天輅, 1556~1615), '시가 사람을 궁하게 만든다는 것에 대한 논변'(詩能窮人辯), 오산집(五山集) 제5권 / 잡저(雜著)-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송수경 (역) |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