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버리고 없애야 할 것

겨를 눈에다 뿌리면 하늘과 땅의 위치가 바뀌며 한 손가락으로 눈을 가리면 태산도 보이지 않는다. 겨가 하늘과 땅의 위치를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며 손가락이 태산을 보이지 않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닌데도 눈이 가림을 받으면 하늘과 땅처럼 큰 것도 그것에게 어두워지고 태산처럼 높은 것도 그것에게 가리워지고 마는데 무엇 때문인가? 하늘ㆍ땅ㆍ태산은 먼 데 있고 겨와 손가락은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임금의 옆에도 겨와 손가락이 있는데 안으로는 측근자, 총애를 받는 자와 밖으로는 중요한 인물, 권력을 쥔 자가 이것이다. 저 측근자, 총애를 받는 자, 중요한 인물, 권력을 쥔 자들이 그의 임금을 고혹하려면 반드시 먼저 헤아리고 칭찬하고 견지하여 그의 임금이 즐기는 것, 하고 싶어하는 것, 사랑하는 것, 싫어하는 것을 알아 모습을 숨기고 진정을 감추면서 영합하고 틈을 막고 단서를 숨기면서 시험하여 푸른 것을 희다고 하며 뿔을 갈기라고 하는데, 말세의 편벽된 임금이 이와 같이 된 자가 얼마나 많았던가.


이사(李斯)와 조고(趙高)는 이세(二世 진시황의 아들 호해(胡亥))에게 겨와 손가락의 역할을 하여 항왕(項王 항적(項籍))과 한제(漢帝 유방(劉邦))가 하늘ㆍ땅ㆍ태산이란 것을 알아보지 못하게 하였고, 홍공(弘恭)ㆍ석현(石顯)과 왕씨 오후(王氏五侯)는 원제(元帝)ㆍ성제(成帝)에게 겨와 손가락의 역할을 하여 소망지(蕭望之)ㆍ유경생(劉更生)ㆍ주운(朱雲)ㆍ매복(梅福)이 하늘ㆍ땅ㆍ태산이란 것을 알아보지 못하게 하였고, 양기(梁冀)ㆍ왕보(王甫)는 환제(桓帝)ㆍ영제(靈帝)에게 겨와 손가락의 역할을 하여 이고(李固)ㆍ두교(杜喬)ㆍ이응(李膺)ㆍ진번(陳蕃)이 하늘ㆍ땅ㆍ태산이란 것을 알아보지 못하게 하였고, 국충(國忠)ㆍ임보(林甫)ㆍ노기(盧杞)ㆍ연령(延齡)은 명황(明皇)과 덕종(德宗)에게 겨와 손가락의 역할을 하여 장구령(張九齡)ㆍ안진경(顔眞卿)ㆍ육지(陸贄)ㆍ양성(陽城)이 하늘ㆍ땅ㆍ태산이란 것을 알아보지 못하게 하였고, 장돈(章惇)ㆍ채경(蔡京)ㆍ진회(秦檜)ㆍ한타주(韓佗冑)ㆍ가사도(賈似道)는 송(宋) 나라 왕실(王室)에게 겨와 손가락의 역할을 하여 원우 제현(元祐諸賢)과 악비(岳飛)ㆍ조여우(趙汝愚)ㆍ문천상(文天祥)이 하늘ㆍ땅ㆍ태산이란 것을 알아보지 못하게 하였다. 


그때에 임금을 위해 눈을 가리는 것을 없애려고 한 자가 어찌 없었겠는가마는 여러 임금들이 어둡게 하고 가리는 것을 편안하게 여겨 차라리 하늘ㆍ땅ㆍ태산을 안 보고 말지 하루아침에 그 겨와 손가락을 버리려고 하지 않았으니 어찌 그처럼 크고 이처럼 작은데 바꾸려고 하지 않았겠는가.


옛날 송 나라에 술을 파는 자가 있었는데 술맛이 매우 좋았으나 시어지도록 사가는 사람이 없자 이상하게 여겨 그 까닭을 이장(里長)에게 물으니, 이장이 말하기를 “술맛이 나빠서 그런 게 아니라 너의 집 개가 사나워서이다.” 하였다. 


제 환공(齊桓公)은 관중(管仲)에게 묻기를 “나라를 다스리는 데에는 무엇이 걱정거리인가?” 하니, 관중이 말하기를 “사당에 있는 쥐이다. 쥐가 사당에 구멍을 뚫고 사는데, 불을 피우자니 사당이 탈까 두려워하므로 사당의 쥐를 없애지 못한 것이다.” 하였다. 


위 영공(衛靈公)이 옹저(癰疽)와 미자하(彌子瑕)를 맞아들였는데 두 사람이 전제하면서 가리자 복도정(復塗偵)이 나아가 말하기를 “꿈에 임금을 보았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무엇을 보았는가?” 하니, 말하기를 “꿈에 조군(竈君, 부엌에서 불씨를 관장하는 신령)을 보았습니다. 임금이 말하기를 “꿈에 조군을 보았는데 어찌하여 임금을 보았다고 하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앞에 있는 사람이 불을 쬐면 뒤에 있는 사람은 불빛을 볼 수 없습니다. 지금 임금의 옆에도 불을 쬐는 사람과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임금을 보았다고 하였습니다.” 하였다. 


이 세 가지 이야기는 또한 겨와 손가락 같은 유들을 말한 것이다. 비록 후세라도 어찌 겨ㆍ손가락ㆍ개ㆍ쥐와 불을 쬐는 것들의 걱정거리가 없겠는가. 그러므로 임금의 도리는 가리는 것을 없애는 게 중요하다.


-신흠(申欽,1566~1628),『상촌집(象村集)/상촌선생집(象村先生集) 제40권 내집 제2/잡저(雜著) 거폐편(去蔽篇)』-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이상현 (역) | 1990


“군자는 모든 일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고, 소인은 남에게서 찾는다.”(논어, 위령공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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