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덕(德)을 세우는데에는 자기 자신을 바르게 하는 것이 최상이다
천하의 일을 보건대, 옳은 것이 그른 것으로 변화할 수도 있고 그른 것이 옳은 것으로 변화할 수도 있으며, 은인이 원수로 바뀔 수도 있고 원수가 은인으로 바뀔 수도 있다. 이런 까닭에 성인은 정상적인 상황에 처해서도 변화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는 것이다.
몸은 적연(寂然, 고요하고 편안한 상태)한 상태로 놔 두어야 하고, 마음은 통연(洞然, 명료하게 투명한 밝은 상태)한 상태로 놔 두어야 하고, 세상은 혼연(混然, 여러가지가 뒤섞인 상태)한 상태로 놔 두어야 하고, 일은 자연적(自然的)인 상태로 놔 두어야 한다.(委身寂然。委心洞然。委世混然。委事自然。)
천명(天命)을 따르고 천도(天道)를 따르고 천시(天時)를 따르고 천리(天理)를 따라야 한다. 천도를 따르면 외물(外物)에 응할 수 있고, 천명을 따르면 인간의 일을 응할 수 있고, 천시를 따르면 변화하는 상황에 응할 수 있고, 천리를 따르면 기미(機微)를 따라 응할 수 있다. 진정 이렇게만 하면 항상 응하면서도 항상 고요해질 수 있을 것이다.
천하의 일이란 서로 소유하려고 다투면 늘 부족한 법이고 양보하면 넉넉하게 되는 법이다.
지혜의 극치에 대해서 알고 있다 하더라도 막상 지혜를 활용하려다 보면 모든 외물(外物)에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없기 때문에 우(愚, 어리석음)라는 편법을 쓰게 되는 것이고, 변론의 극치에 대해서 알고 있다 하더라도 그 변론의 기술을 활용하려다 보면 모든 상황에 대처할 수는 없기 때문에 눌(訥,말을 더듬거림)이라는 방편으로 대하게도 되는 것이다.
성인은 일정한 견해에 집착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알지 못하는 것이 없게 되고, 일정하게 듣는 것이 없기 때문에 듣지 못하는 것이 없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훌륭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고대에도 훌륭하게 살아갈 수 있었을 사람이고, 지엽적인 일을 훌륭하게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은 근본 역시 확립할 수 있는 사람이다.
세상을 비난하면서 자기만 옳다고 해서는 안 되고, 남은 깔보면서 자기만 존대하게 여겨서도 안 된다. 이것이 스스로를 다스리는 도(道)이다. 하늘의 일이라고 해도 겨울에 연꽃을 피우고 봄에 국화꽃이 나오도록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성인도 시대를 만들어 낼 수는 없는 것이다. 아무리 땅의 일이라고 해도 낙양(洛陽)에 귤이 열리게 할 수는 없고 문수(汶水)에 오소리가 있게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성인도 체질화된 풍속을 없앨 수는 없는 것이다.
마음 속으로 계획하고, 이치로써 결단하고, 천도(天道)에 순응한다. 성인의 말을 보건대, 금옥(金玉)처럼 보배로 여겨야 할 위대한 것으로부터 작게는 숙속(菽粟, 콩과 좁쌀)처럼 비근한 것까지 두루 망라되어 있다.
도(道)를 말하는 자는 꿈 이야기를 해 주는 자와 같고, 도를 듣는 자는 꿈 이야기를 듣는 자와 같다. 꿈을 이야기해 주는 자가 아무리 금옥(金玉) 같으니 속백(粟帛) 같으니 하며 이러쿵저러쿵 말해 준다 하더라도, 말하는 자가 그것을 직접 가져다가 사람에게 쥐어 줄 수는 없는 일이고, 듣는 자 역시 그것을 받아 자기의 것으로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안회(顔回)가 바보 같았던 것이다.
동(動)과 정(靜)이 서로 마찰작용을 일으킨 결과 화(火)로 변화되고, 조(燥, 마른 것)와 습(濕, 물기가 있어 축축한 것)이 서로 증발작용을 일으킨 결과 수(水, 물)로 변화된다. 물과 불은 항상 쓰는 물건이지만 잘못 쓸 경우에는 집을 망치는 때도 있고, 술과 떡은 늘 먹는 물건이지만 잘못 먹을 경우에는 몸을 해치는 때도 있다.
아무리 호화로운 생활을 해도 여전히 결핍감을 느끼게 되는 반면, 지극히 검소한 생활을 하면 항상 여유가 있게 되는 법이다.
어지럽게 되기 전에 어지러울 줄 알아야 하고, 위태롭게 되기 전에 위태로울 줄 알아야 하고, 망하게 되기 전에 망할 줄 알아야 하고, 화가 닥치기 전에 화가 닥칠줄 알아야 한다.
몸을 보존하면서도 몸 때문에 누(累)가 되지 않도록 하고, 마음에 작정한 대로 행하면서도 그 마음의 부림을 받지 않게끔 하고, 세상에 어울려 살면서도 세상에 휩쓸리지 않도록 하고, 어떤 일을 행하면서도 그 일에 매이지 않게끔 한다면, 거의 되었다고 하겠다.
변화하는 상황을 꿰뚫어 보려면 그 시대에 대한 식견이 있어야 하고, 시대에 대한 식견을 가지려면 이치에 통달해야 한다. 내 몸이 청명(淸明)해지면 천리(天理)가 밝게 드러나 보일 것이다. 하늘의 변화는 역(易, 주역)을 보면 알 수 있고, 세상이 돌아가는 형편은 조짐을 살피면 증험할 수 있고, 각 개체의 진위(眞僞) 여부는 모습을 보면 판단할 수 있다.
덕(德)을 진전시키기 위한 수업으로는 자기 자신을 바르게 하는 것이 최상이다. 자신이 바르게 되면 남도 바르게 되고, 자신이 바르게 되면 일도 바르게 된다. 자신을 바르게 하는 한 가지 일이 이루어지면 천하의 온갖 변화에 응할 수가 있는 것이다.
비어 있는 것(虛)이 하늘의 상(象)이 되고, 고요한 것(靜)이 대지의 상이 된다. **자강불식(自强不息, 스스로 노력하여 게을리 하지 않는 것)하는 것은 하늘이 비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고, 후한 덕으로 만물을 포용하는 것은 대지가 고요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세상에 단 하루도 안개가 끼지 않는 아침이 없지마는 그 안개가 아침을 어둡게 만들지는 못하고, 이 세상에 단 하루도 구름이 끼지 않는 낮이 없지마는 그 구름이 낮을 밤으로 만들지는 못한다.
세상의 이치로 볼 때, 너무도 굽혀졌던 것이 펴질 때는 그 기세가 맹렬하게 마련이고, 오래도록 엎드려 있던 것은 격렬하게 튀어오르기 마련이다.
-신흠(申欽 1566~1628), '야언(野言) 2'(부분발췌), 『상촌집(象村集)』/ 상촌선생집(象村先生集)제48권 / 외집 8-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이상현 (역) ┃ 1990
*[역자 주]안회(顔回)가 바보같았던 것이다 : 《論語 爲政》에 “내가 하루종일 안회를 데리고 이야기를 할 때에도 안회는 바보처럼 있으면서 한마디도 내 말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옮긴이 주]自强不息 (자강불식):『주역(周易)』 64괘(卦) 중 첫 괘인 ‘건괘(乾卦)’의 상사(象辭)에 나오는 말이다. "굳센 마음을 가지고 스스로 노력하여 게을리 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전체 문장은 이렇다. “하늘의 운행은 건전하니 군자는 이를 굳세게 본받아 멈추지 말아야 한다(天行健, 君子以自强不息)”. 옮긴 글과 맥락을 같이 하는 글들은 성서나 고전철학서, 동양고전 등에서 약간의 관심만 가진다면 쉽게 찾아진다. 『중용』14장에 "화살이 정곡을 맞히지 못하면 과녁을 탓하지 말고, 자기 몸의 자세를 바로 잡으라(失諸正鵠, 反求諸其身)’‘. 또 『노자(老子)』33장에 "남을 아는 것을 지혜로운 사람이라 한다면, 자기 스스로를 아는 것은 현명한 사람이라 할 것이다(知人者智, 自知者明). 남을 이기는 것을 일컬어 힘있는 사람이라 한다면, 스스로를 이기는 사람은 강한 사람이다(勝人者有力, 自勝者强). 만족함을 아는 사람은 부유한 사람이고 힘써 행하는 사람은 뜻이 있는 사람이다(知足者富, 强行者有志). 자기의 분수를 아는 사람은 그 지위를 오래 지속하고 죽어도 잊혀지지 않는 사람은 영원토록 사는 것이다(不失其所者久, 死而不亡者壽)"라는 글들이 보인다.
'고전산문 > 상촌 신흠'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전산문] 속물근성(俗氣)을 치유하는 것은 오직 책밖에 없다 (0) | 2018.03.16 |
---|---|
[고전산문] 인생은 잠시 붙여사는 나그네 삶일 뿐 (0) | 2018.03.16 |
[고전산문] 자기 허물을 고칠 수 있어야 (0) | 2018.03.16 |
[고전산문] 세가지 즐거움 (0) | 2018.03.16 |
[고전산문]말해야 할 때와 침묵해야 할 때를 아는 것 (0) | 2018.03.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