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최악의 글쓰기 / 조지오웰

현대의 글쓰기에서 최악의 경우는 그 의미를 명확하게하기 위해 이미지를 발명하고, 그 의미의 정확한 전달을 위해 단어를 추려내는 것으로 구성되지 않은 글이다. 그것은 이미 누군가가 열거한 단어들의 긴 조각들을 함께 묶어 만든 글이며, 속이 뻔한 속임수로 결과가 나온 글이다. 이 글쓰기의 매력은 그것이 쉽다는 것이다. 습관적으로 익숙해지면 더 쉽다...


진부한 은유들, 직유들, 그리고 숙어들을 사용함으로써, 자신이 가진  의도를 애매모호하게 하여 흐리게 할 뿐 아니라 독자는 물론 자신에게도 그러한 대가로 많은 정신적 노력을 덜어낼 수 있다.  혼합된 은유의 요체가 여기에 있다. 은유의 유일한 목표는 시각적 이미지를 불러오는 것이다...(이러한 글쓰기의 경우에)단어와 의미는 거의 별개의 차원이다.


이런 방식으로 글을 쓰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어떤 정서적인 의미를 갖고 있기 마련이다. 그들은 어떤 것을 싫어하고 다른 사람과 연대를 바란다는 것을 표현하기를 원하지만, 막상 말하는 내용의 세부 사항에는 관심이 없다. 세심한 필자라면 쓰는 문장 하나 하나마다 적어도 다음의 네 가지 질문을 할 것이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가? 어떤 단어를 써서 그것을 표현할 것인가? 어떤 이미지나 숙어를 쓰면 뜻이 더 분명해 지는가? 이 이미지는 효과를 낼만큼 참신한가? 


그리고 스스로에게 두 가지를 더 질문할 것이다. 문장을 좀 더 짧게 쓸 수는 없는가? 꼴사나운 부분 중에 고칠 수 있는 데는 없는가? 


하지만 그런 수고를 굳이 해야만 하는 건 아니다. 마음을 활짝 열어 이미 만들어진 어구들이 마구 밀려들도록 놓아두기만 하면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기성의 숙어들이 대신하여 문장을 만들어줄 것이다. (어느 정도는 대신하여 생각을 해주기도 한다). 필요에 따라서는 글쓰는 이의 의도를 자신에게까지 어느 정도 숨기는 중책을 수행하기도 할 것이다. 정치와 언어의 타락 사이의 특별한 관계가 뚜렷해지는 건 바로 이 점에서다.

우리 시대에는 정치적인 의도를 가진 글쓰기(특정목적을 위해 작가의 의도를 숨기고 모호하게 표현 한 글쓰기)가 나쁜 글이라는 것이 대체로 사실이다.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일반적으로 작가는 일종의 반역자이며 자신의 개인적인 의견을 표현하는 것이지 '정치적 기본방침(party line)'에 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조지오웰, 'Politics and the English Language',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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