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변할 수 없는 것 / 이덕무
사람이란 변할 수 있는 것일까? 변할 수 있는 것이 있고 변할 수 없는 것도 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어려서부터 장난을 하지 않고 망령되고 허탄하지 않으며 성실하고 삼가며 단정하고 정성스러웠는데, 자라서 어떤 사람이 권하여 말하기를,
“너는 세속과 화합하지 못하니 세속에서 너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하므로 그도 그렇게 생각하여, 입으로는 저속하고 상스러운 이야기를 하고, 몸으로는 경망하고 부화(浮華, 실속없이 겉치레를 화려하게 꾸미는 것)한 일을 행하였다.
이와 같이 하기를 3일쯤 하고는 축연(蹙然)히(문득) 기쁘지 않아서 말하기를, “내 마음은 변할 수 없다. 3일 전에는 내 마음이 든든한 듯하더니 3일 후에는 마음이 텅 빈 것 같다.” 하고는 드디어 처음으로 되돌아갔다. 이욕을 말하면 기운이 없어지고, 산림(山林)을 말하면 정신이 맑아지며, 문장을 말하면 마음이 즐겁고, 도학(道學)을 말하면 뜻이 정돈된다.
완산(完山) 이자(李子 이덕무 자신을 칭함)는 옛날 도(道)에 뜻을 두어 오활(迂闊)하다(옮긴이 주: 원문은 完山李子志古而迂, 즉 옛 것에 뜻을 두어 세상물정에 어둡고 처세에 연연치 않아 어리석을 정도로 고지식하다는 의미). 그래서 산림ㆍ문장ㆍ도학에 관한 이야기를 좋아하고 그 나머지는 들으려 하지도 않고, 또 들어도 마음에 달갑게 여기지도 않으니 대개 그 바탕(質)을 전일(專一, 마음을 오로지 한 곳에만 씀)하게 하고자 하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선귤(蟬橘)*을 취하고, 말하는 것이 고요하고 담박하다.
-이덕무(李德懋, 1741~1793), ‘스스로에 대해 말함(自言)’,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제4권/영처문고 2(嬰處文稿二) - 사(辭) 』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조준하 (역) | 1978
※[옮긴이 주]
1. 선귤(蟬橘): 매미와 귤을 뜻한다. 구양수(歐陽脩)의 명선부(鳴蟬賦)와 굴원(屈原)의 귤송(橘頌)이 그 출전이다. 이덕무 선생은
선귤헌명(蟬橘軒銘)에서 이르기를, “매미는 바람을 타고 높이 날아 오르되 멈춰야 할 곳을 알고, 귤은 껍질로 그 속살이
추해지거나 훼손되지 않게 아름답게 감싸고 보호한다.”한데서 그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 또 이와 관련하여 연암 박지원의
선귤당기에서 이덕무 선생은 그 뜻을 보다 구체적으로 분명하게 밝힌다. "사람의 몸이 백 번 죽어도 이름은 그대로 남아 있으며, 그것은 실체가 없으므로 변하거나 없어지지 않는다. 이는 마치 매미의 허물이나 귤의 껍질과 같아서, 껍질이나 허물과 같은 외물에서 매미 소리를 찾거나 귤 향기를 맡으려 한다면 이는 껍질이나 허물이 저처럼 텅 비어 있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매미가 허물을 벗어 그 허물이 말라붙고 귤이 시들어서 그 껍질이 텅 비어 버렸는데 어디에 소리와 빛과 내음과 맛이 있겠는가?
이미 좋아할 만한 소리와 빛과 내음과 맛이 없는데 사람들이 장차 껍질이나 허물과 같은 나의 겉모습에서 어떻게 나를 찾겠는가?” 참고로 매미는 짧게는 7년 길게는 17년을 기다려 탈피하여 허물을 벗고 비로소 성충이 된다. 그러나 막상 생존기간은 대략 여름철 한달정도로 아주 짧다. 이러한 매미를 보고, 중국
진나라 시인 육운(陸雲)은 한선부(寒蟬簿)를 지어 매미의 오덕(五德) 즉 문덕, 청덕, 염덕, 검덕, 신덕을 읊었다. 즉
'매미의 머리위에 갓끈 관(冠)이 있으니 문(文)을 높이는 덕이 있으며. 바람을 마시고 이슬만 먹고 사니 깨끗한 청(淸)의 덕이
있다. 사람 먹는 곡식을 먹지 않으니 염치(廉)의 덕이 있고, 굳이 집을 짓지 않고 나무 그늘에서 살고 있으니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검소(儉)한 덕이 있으며, 어김없이 계절에 맞춰 허물을 벗고 울며 절도를 지키니 신실함(信)의 덕이 있다.'고 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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