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사람이 개만도 못한 점 / 성대중
사람이 짐승만 못한 점이 많다. 짐승은 교미하는 데 때를 가리지만
사람은 때를 가리지 않는다. 짐승은 같은 무리가 죽은 걸 보면 슬퍼하지만 사람은 남을 죽이고도 통쾌히 여기는 자가 있고, 간혹
남의 화를 요행으로 여겨 그 지위를 빼앗기도 하니 짐승이라면 이런 짓을 하겠는가. 화가 되돌아오는 것은 당연하다.
개는
사람이 뒷간에 올라가는 것을 보면 곧바로 몰려들어 사람이 대변보기를 기다렸다가 재빠른 놈은 먼저 달려들고 약한 놈은 움츠린다.
화가 나면 서로 물어뜯고 즐거우면 서로 핥아 대기도 하는데 다투는 것은 오직 먹이 때문이다. 그 모습을 보고 누군들 추하게 여겨
비웃지 않겠는가.
그러나 사람이 밥그릇을 다투는 것도 개와 다를 바가 거의 없으니, 엄자릉(嚴子陵 엄광(嚴光))*이나 소 강절(邵康節)*이 살아 있다면 밥그릇을 놓고 다투는 사람들을 사람이 개 쳐다보듯 혐오했을 것이다. 아침에 뒷간에서 돌아오다가 그 때문에 한 번 웃고는 기록한다.
그러나
사람이 개보다 못한 점이 사실 많다. 교미는 반드시 발정할 때만 하는데 사람이 그렇게 할 수 있는가? 도둑 경계하기를 귀신처럼
하는데 사람이 그렇게 할 수 있는가? 먹여 주면 은혜를 알고 보답은 의리로 하는데 사람이 누구나 다 그렇게 할 수 있는가? 또 그
때문에 한 번 탄식한다.
-성대중(成大中,1732~1809), 청성잡기/성언(醒言)-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옮긴이 주
1.엄자릉(嚴子陵): 자릉(子陵)은
동한(東漢)의 은자(隱者)인 엄광(嚴光)의 자(字)이다. 엄광은 한나라 광무제(光武帝)가 황제로 즉위하기 전까지 동문수학한 오랜
옛 친구였다. 그러나 광무제가 황제가 된 뒤에 이름을 바꾸고 숨어 살았다. 광무제가 절친인 엄광을 찾아내어 조정으로 불렀으나
오지 않다가 세 번을 부른 다음에야 겨우 나왔다. 오랜만에 만나 광무제와 엄광이 회포를 나누고, 함께 잠을 자던 중에 엄광은
광무제의 배에 다리를 올려 놓고 잤다. 그 다음 날 태사(太史)가 아뢰기를, “객성이 어좌(御座)를 범하였습니다.” 보고하였다.
그러자 광무제가 웃으면서, “나는 옛 친구인 엄자릉과 함께 잤을 뿐이다.” 하였다. 그 뒤 광무제가 조정에 머물러 벼슬하기를
권하였으나, 엄광은 절강성(浙江省)에 있는 부춘산(富春山)으로 들어가 엄릉뢰(嚴陵瀨)라는 물가에서 낚시질을 하며 은거하였다.
《後漢書 卷83 逸民列傳 嚴光》
2. 소 강절(邵康節): 강절(康節)은 중국 송나라의 철학자·사상가인 소옹(邵雍)의 시호다. 역경에 바탕을 두고 수리(數理)철학을 정립하여 우주론, 음양오행의 조화, 대자연의 섭리 그리고 인간과 세상의 이치와 도리를 설명하였다. 저서로는 〈관물편〉, 〈어초문답〉(漁樵問答), 《이천격양집》(伊川擊壤集), 〈선천도〉(先天圖), 〈황극경세〉(皇極經世) 등이 있다. 소옹의 집안은 대대로 은덕(隱德)을 추구하여 벼슬하지 않았다. 소옹은 관직에 나오라는 황제의 부름을 수차례 받았지만 끝내 거부하였다. 평생을 겨우 농사를 지어 먹고 살만한 거처에서 지냈다. 소옹의 높은 학문과 인덕 그리고 고결한 인품에 감명을 받아 그를 존경하여 가까이한 유명 인사들이 많았다. 대표적으로 자치통감을 저술한 학자 사마광은 그를 형으로 섬기며 공경하였다. "나쁜
짓을 하지 마라. 사마선생이나 소선생님이 알까 무섭다."라고 할 정도로 그들 주변에 사는 사람들이 그들의 덕성을 흠모하고
존경했으며, 또 소송거리가 있는 사람들은 관부로 가지 않고 꼭 소옹에게 갔다. 사람이 귀하거나 천하거나 어리거나 아이들이거나
한번을 대해도 정성을 다했기 때문에, 현명한 사람들은 그 덕을 기쁘게 여기고 현명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 덕화에 감복되었다. 성품이 온화하고 인덕을 겸비한 것으로 알려진 송나라의 재상 여공저(呂公著), 송나라의 명신으로 청렴결백하기로 유명한 부필(富弼), 성리학의 기초를 세운 학자 정호, 정이 형제 등 한결같이 덕망있는 인재들이 소옹을 따르며 공경하였다. 정호(程顥)는 소옹을 감탄하여 평하기를,"요부(소강절)는 안으로는 성인이요 밖으로는 임금의 학문이다.(堯夫 內聖外王之學也)"라고 하였다.
"누가 개에게 뼈다귀 던져 뭇개들 사납게 저리도 다투나. 작은 놈 필히 죽겠고 큰 놈도 끝내 다칠터. 도둑은 엿보아 그 틈을 타려 하는구나. 컴컴한 밤중에 주인은 무릎을 껴안고서 홀로 우니, 비맞아 무너진 담벼락, 그사이로 온갖 근심 모여드네."
-권필(權韠, 1569~1612), 투구행(鬪狗行)-
"다 함께 목욕하고는 남들에게는 발가벗었다 욕을 하고, 바보에게 꿈 이야기 해 준 것도 진실로 믿는 세상. 작은 재주에 천착하며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면 필시 송나라 사람처럼 무언가를 조장하는 것이 분명할터인테, 나 역시 잘 하는 게 무엇이 있으리요. 단지 그들과 다름없다는 사실이 부끄러울 뿐." -최립(崔岦 1539~1612), '회김수재화장(回金秀才和章)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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