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황련(黃連)한 짐을 먹고 나야만 비로소 단 것을 말할 수 있다 / 이덕무
좋은 말도 지리하면 듣는 사람이 오히려 싫어하는데 하물며 나쁜 말을 많이 함에랴? 남을 ‘이놈, 저놈’이니 ‘이물건, 저물건’이니 하고 칭하지 말고 아무리 비천한 자일지라도 화가 난다 해서 ‘도적’이니 ‘개돼지’니 ‘원수’니 하고 칭하지 말며, 또는 ‘죽일 놈’이니 ‘왜 죽지 않는가’느니 하고 꾸짖지도 말라.
한
가지 일이 뜻처럼 되지 않는다 해서 성을 왈칵 내어 나는 죽어야 한다느니, 저 사람을 죽여야 한다느니, 이놈의 천지 무너져야
한다느니, 이놈의 국가 패망하라느니, 떠돌아 다니며 빌어먹는다느니 하는 따위의 막말을 해서는 안 된다.
경박스러운 말이 입에서 튀어나오려 하거든 빨리 흉중을 짓눌러서 입 밖에 튀어 나오지 말게 하라. 남에게 모욕을 받고 피해가 따르게 될 터이니 어찌 두렵지 않은가?
남의
말을 들을 때는 비록 내가 아는 것과 다르다 하더라도 내가 알고 있는 것을 고집하여 열을 올려 남을 꺾으려고 떠들어대서는 안
된다. 남이 혹시 망령된 말을 했더라도 만날 때마다 그 말을 꺼내 조소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퍼뜨려서도 안 된다. 남의 말을 들을
때는 번쇄하고 시끄럽더라도 정신을 가다듬어 대략을 귀담아듣고 싫증을 느끼며 듣지 말라.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이야기할
때에는 일일이 살펴서 좌중의 분위기를 대략 알아야 한다. 말할 때 듣는 자가 무심히 듣거나 또는 다른 일에 끌려서 건성으로
듣거든, 이야기를 중지해야 옳다. 다른 사람이 자기의 말을 듣지 않는 것도 살피지 않고 끝까지 말하는 자는 역시 정확한 사람이
아니다.
사부(士夫, 사대부)의 편당(偏黨), 남의 집 혼벌(昏閥), 당세 명류(名流)들의 문학의 고하, 붕우(朋友)의 숨은 잘못, 국가의 재이(災異) 등 일체 금휘(禁諱, 금기시하여 삼가하는 것)해야 할 말은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자칭 강개지사(慷慨之士, 세상의 옳지 못한 일에 대하여 의분을 느끼고 탄식하는 사람)라 하면서 함부로 입을 놀리지 말라.
나의 용모가 잘 생긴 것을 자랑하지도 말고 남의 용모가 잘 생긴 것을 아첨하여 칭찬하지도 말며, 남의 용모가 못생긴 것을 헐뜯지도 말라. 남의 과실을 몰래 말하다가 본인이 마침 문에 들어오면 그 부끄러움을 어떻게 하겠는가?
그러므로 군자는 말을 헤프게 아니하고, 남을 평하는 일에 반드시 삼가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홍원(洪垣)이 말하기를, “선배의 말은 모름지기 허심탄회하게 자세히 연구할 것이요, 경솔하게 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황련(黃連)한 짐*을 먹고 나야만 단 것을 말할 수 있다.”하였다.
-이덕무(李德懋, 1741~ 1793), '언어(言語)'부분 발췌, 『청장관전서 제27~29권/ 사소절 1(士小節一)』-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김동주 (역) ┃ 1980
※[옮긴이 주]
1. 황련(黃連) 한 짐:
황련은 봄철에 야생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연보라색의 작고 아름다운 야생화로, '깽깽이풀'이라고 부르는 다년생의 약용 식물이다. 줄기가 없고, 뿌리줄기에서 잎보다 먼저 꽃대가 올라와 작고 아름다운, 연보라색의 꽃을 피운다. 뿌리줄기를 말려서 약으로 사용하는데, 맛이 쓰고 성질은 차다.
본초강목에 황련은, "열기(熱氣)를
치료하고 눈이 아픈 증상을 치료하며 눈꼬리 부분이 손상되어 눈물이 나오는 것을 치료한다. 또한 눈을 밝게 하는 효능이 있으며, 피
섞인 설사와 복통을 치료하고 여성들의 생식기 부위가 붓고 아픈 것을 치료한다. 오랫동안 복용하면 기억력이 좋아진다."라고
소개한다.
한
짐은 부피의 단위가 아니라 넓이를 나타내는 조선시대 계량 단위다. 한 짐은 100줌, 한 줌은 가로 세로 1자(38.86cm)의
넓이, 따라서 1짐은 가로 세로 100자의 넓이다. 1 자는 38.86cm, 즉 황련 한 짐은 대략 가로 4m, 세로 4m의
땅에 가득 펼쳐놓을 수 있는, 많은 양을 의미한다. 참고로 대한제국에 들어와 미터법으로 개정하여 한 줌은 1제곱미터, 1짐은 100제곱미터로 다시 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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