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언찬병서(適言讚幷序) : 참됨으로 이끄는 8가지
만물(萬物)은 참됨을 통해 이루어지고, 만사(萬事)는 참됨을 통해 행해진다. 그러므로 진짜를 심는 것을 가장 먼저 해야 한다. 이미 진짜를 심은 뒤에 운명을 관찰하지 않으면 꽉 막히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 다음에는 운명을 관찰해야 한다.
이미 운명을 관찰한 다음에는 잡다한 것에 현혹되는 것을 병(病)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방탕에 젖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 다음에는 마음을 다스려 잡다한 것에 미혹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이미 잡다한 것에 미혹되는 것을 경계한 뒤에 다른 사람의 헐뜯음으로부터 도피하지 않으면 상처를 입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헐뜯음으로부터 멀리 도피하는 것을 그 다음에 두었다. 헐뜯음으로부터 멀리 도피했는데도 영혼이 즐겁지 않으면 온 몸이 삐쩍 마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정신에 좋은 기운을 불어넣어 영혼이 즐거운 것을 그 다음에 두었다. 영혼이 이미 즐겁다고 해도 진부함을 덜어내어 없애지 않는다면 고루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 다음으로 진부함을 덜어내어 없애야 한다. 진부함을 덜어내어 없앤다고 해도 교유하는 벗을 잘 가리지 않는다면 어지러워지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그 다음에는 교유하는 벗을 잘 가려야 한다. 기운이 우주에 모여 있기에 만물도 있고 만사도 있어서 흡사 유희(遊戱)와 같은 것이 있다. 그런 까닭에 우주 안의 유희로 글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총괄하여 ‘적언(適言)’이라고 이름 붙였으니 삼소자(三踈子) 윤가기에게 지어준 글이다. ‘적(適)’이라는 것은 즐거움이며 편안함이다. 나의 삶을 즐기고 나의 본분을 편안하게 여긴다는 뜻이다. 또한 적언(適言)이란 적연(適然)이다. 적연이라는 말은 ‘억지로 힘써 하는 것이 아니다’는 뜻이다. 삼소자 윤가기는 몸가짐을 유지하는 것이 온화하고 순종적이고, 마음가짐을 다스리는 것이 진실로 세밀하다. 대체로 조심하고 두려워하며 자신을 지키고 크고 넓게 노니는 사람이다. 내가 그의 사람됨을 아름답게 여겨서 여덟 단계의 예찬을 지었다.
예찬 1. 식진(植眞 : 진짜를 심다)
석록(石綠)으로 눈동자를 새겨 넣고 유금(乳金)으로 날개를 물들인 나비가 붉은 꽃받침에 앉아 펄럭펄럭 긴 수염을 나부끼고 있다. 영악한 날개깃을 드러나지 않게 엿보며 총명한 어린아이가 오랫동안 도모하다가 갑자기 때리고 문득 낚아챘지만 살아 있는 나비가 아니요 저 그림속의 나비였도다. 아무리 진짜에 가깝고 몹시 닮아 거의 같다고 해도 모두 제이(第二)의 위치에 자리할 뿐이네. 또한 진짜에 가깝고 몹시 닮아 거의 같은 것이 어디에서 기원(起源)하는지 살펴보라! 본바탕을 먼저 엿보아야 가짜로 인해 구속당하지 않으니 만 가지 종류의 온갖 사물은 이 나비의 비유를 본보기로 삼을 만하다.
예찬 2. 관명(觀命 : 운명을 관찰하다)
이름은 현부(玄夫)라고 부르고 자(字)는 조화옹(造化翁)이라 일컫는 분이 거대한 양조(釀造) 기관을 주관하여 하늘을 항아리 속으로 삼았다. 기운을 체로 쳐서 시고 삼삼하고 진하고 묽은 술이 잠기고 스며들어 각각 운명을 부여하였으니 그 심오한 공력을 순순히 받아들여야 한다. 진하다고 은혜라고 할 수 없고 묽다고 어찌 상심하겠는가? 몰래 미리 운명을 엿보면 조급해지고 교묘하게 도피하면 흉사(凶事)를 겪게 된다. 오늘은 오늘이고, 어제는 어제이고, 봄은 봄이고, 겨울은 겨울이다. 이와 같이 하고 이렇게 하여 처음처럼 끝을 마무리한다.
예찬 3. 병효(病殽 : 미혹을 경계하다)
사람이 가진 커다란 근심은 혼돈이 뚫린 때부터 꾸미거나 다듬는 것은 넘쳐서 드러나는 반면 진실하고 순박한 것은 깎아내고 가두어버렸다. 색상과 재물을 탐하고 눈짓으로 말하며 이마로 깜짝이고 혀를 살찌우며 달콤하게 빚어내어 뱃속과는 반대되는 말로 칼날을 감추고 있다. 손님 앞에서는 인사하고 뒤에서는 혹평하며, 벗을 끌어들여 면전에서 거짓말을 한다. 뛰어난 기상은 환난(患難)을 품고 있고 빼어난 재주는 횡액(橫厄)을 매개한다. 선비가 장사꾼의 돈꿰미에 미혹되고, 사내대장부가 부녀자의 머리꾸미개를 감내한다. 어찌하여 품성의 배양을 멀리하는가? 아! 복록을 해칠까 두렵구나.
예찬 4. 둔훼(遯毁 : 헐뜯음으로부터 도피하다)
재주는 명성을 부르지 않지만 명성은 반드시 재주를 따른다. 재앙은 재주에 기대지 않지만 재주는 반드시 재앙을 잉태한다. 재앙을 어찌 스스로 빚어내겠는가? 사실은 헐뜯음이 빚어내는 것이다. 훌륭한 거문고는 쉽게 망가지고, 뛰어난 말은 다른 말보다 먼저 쇠약해지고, 기이한 서책은 좀 벌레가 망가뜨리고, 아름다운 나무는 딱따구리가 꺾어 넘어뜨린다. 화려한 재주를 자랑하니 해코지를 재촉하고 소리를 막으니 어리석음에 가깝다. 즉시 나아가지도 말고 물러서지도 말라. 복된 대지가 별도로 열릴 것이다. 자연의 바탕을 지키고 무고한 시기(猜忌)를 떨쳐버려야 할 것이다.
예찬 5. 이령(怡靈 : 영혼을 즐겁게 하다)
물고기는 지혜롭고 새는 영험하다. 바위는 빼어나고 나무는 어여쁘다. 자연의 풍경과 더불어 정신은 즐겁고, 감정은 정경을 따라 옮아간다. 법이 어찌 옛것을 답습하랴? 양식은 속된 것에 끌려 다니지 않고, 별도로 오묘함과 빼어남을 갖추어 통쾌하게 장애와 얽매임에서 벗어난다. 대지를 흐르는 가을철 물과 하늘에 떠 있는 봄철 구름과 같이 마음의 지혜가 샘솟는 구멍과 눈동자는 영롱하기 끝이 없다. 술은 술잔을 재촉하지 않고, 거문고는 현(絃)을 번거롭게 하지 않는다. 손으로 턱을 바치고 낭랑하게 읊조리면 앓고 있던 병이 말끔히 사라진다.
예찬 6. 누진(耨陳 : 진부함을 제거하다)
표범은 이미 말을 생산하고, 말은 또한 사람을 생산하는 것처럼 변화의 기미는 거리낌이 없고 혁신의 과정은 항상 새롭다. 구애받는 선비는 협소한 견문으로 옛사람이 내뱉은 말만 진귀하게 여겨 추종한다. 하나의 법식(法式)을 뛰어넘지 못하고 항상 몇 세대 뒤떨어져 있다. 절름발이의 비틀거리는 걸음걸이를 따라하면 절뚝거리게 되고 서시(西施)를 흉내 내 찡그리다보면 주름살만 잡히게 된다. 석학(碩學)은 활달하여 속된 것을 벗어난 높은 식견으로 낡고 썩은 것을 내던지고 진부한 것을 씻어낸다. 말의 겉모습만 보지 않아 기린(騏驎 : 천리마)을 잃지 않은 것처럼 옛것을 저울질하고 지금 것을 측량하는 눈동자가 진귀하고도 진실하다.
예찬 7. 간유(簡遊 : 교유하는 벗을 선택하다)
앞선 시대의 사람은 보지 못하고 후대의 현인(賢人)은 뒤따라가 붙잡지 못한다. 아득하게 거리를 두느라 무리와 어울리지 못하면 나의 충정(衷情)을 누구에게 열어 보이나? 거대한 인연을 맺어서 이 세상에 나란히 태어난 벗과 온화하게 수염과 눈썹을 맞대고서 심폐(心肺)를 활짝 내비친다. (벗이란) 방을 함께 쓰지 않는 아내이고, 피를 함께 나누지 않은 형제이다. 살아 있는 동안에는 백안시(白眼視)하지 않고 죽은 다음에는 뜨거운 눈물 참아낸다. 학문은 길러주고 재주는 칭찬하며 잘못은 경계하고 가난은 구제한다. 그러나 기생충 같은 무리는 시기심을 뱃속 가득 채우고 등 뒤에서 헐뜯는 짓이나 할 뿐이다.
예찬 8. 희환(戱寰 : 우주 안에서 유희하다)
내 앞에는 내가 없고 내 뒤에도 내가 없다. 이미 무(無)에서 왔건만 다시 무(無)로 되돌아간다. 많지 않은 소수(少數)이니 얽매임도 없고 구속받을 것도 없다. 얼마 전까지 젖 먹던 내가 갑자기 수염이 나고 잠깐 사이에 늙더니 또한 문득 죽음에 이른다. 마치 거대한 바둑판에서 효로(梟盧)를 핍박하거나 침범하는 듯, 거대한 놀이마당에서 물고기 가죽을 입은 사내처럼 조급하지도 않고 허둥지둥하지도 않으며 하늘을 좇아 즐거워한다.(안대회 역)
-이덕무(李德懋, 1741~ 1793), ‘적언찬병서(適言讚幷序)’ 『병세집(幷世集)/윤광심(尹光心)著』-
▲원글출처: 『고전산문산책』안대회 지음, 휴머니스트,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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