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됨의 바탕

대체로 지금 사람의 성품이 착한가 착하지 않은가와 습속이 순박한가 순박하지 않은가에 대하여 나는 이하 세 가지 일로 살펴보겠다. 그들이 《소학(小學)》이나 《근사록(近思錄)》*을 보면 하품하지 않는가? 손을 마주 잡고 단정히 앉아 위의(威儀)를 가다듬는 자를 대하면 비웃지 않는가? 충신(忠信)스럽고 의리(義理)스러운 말을 들으면 싫증내지 않는가?


이 세 가지를 기뻐하고 복종하면 길인(吉人)과 선사(善士)가 될 것이나, 미워하고 어기면 성질이 비뚤어지고 마음이 가볍고 경솔하여 사람된 도리에서 어긋난 무리가 되지 않을 자 거의 드물다.


세상의 이목이나 사물등에 구속받음이 없는 것(放達 방달)은 본래 화통하고 쾌활한 자의 특성이라 앞뒤가 꽉 막히고 융통성이 없는 답답한 자(고루한 자)보다는 나은 듯하다. 그러나 방달에 전념하고 아무런 꺼리는 바가 없다면 예법의 범위를 벗어나서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사리와 도리에 어긋난 망령된 일(狂妄 광망)을 자행하게 되니 도리어 고루한 자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선비가 이 지경이 되면 역시 한심한 일이다. 


그러므로 호걸스러운 기운이 많은 사람은 스스로 방달(放達)이라 하는데, 역시 때때로 의리에 관한 글을 읽어 방자한 행동을 경계하고, 또 동료 중에서 엄숙한 사람 한 명을 골라 그에게 수시로 경계를 받는다면 좋은 사람이 될 수 있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그 이른바 방달이란 것이 어찌 도적(盜賊) 쪽으로 슬며시 흘러들어가지 않겠는가?


자신이 생각하기를, 너그롭고도 따뜻하고 부드러우며 능히 포용할만큼 여유가 있는 넉넉한 마음(寬裕溫柔 관유온유)이 단지 편안함을 추구하여 번거로움을 피하고자 매사를 태만하고 등한시하는 것(優游怠忽,우유태홀)이 아님을 어떻게 장담하겠는가? 


자신이 생각하기를, 행동함이 단호하여 뜻이 흔들림이 없고 강직한 것 (發剛强毅 발강강의)* 그저 행함이 성급하고 지나치게 독선스럽고 고집스러운 것(躁妄激作, 조망격작)이 아님을 어떻게 장담하겠는가? 


미음 속으로 매우 화가 난 상태는 흐트러짐이 없이 바르고 단정해 보이는 상태와 가깝다(忿戾近齊莊 분려근제장). 좀스러워 자잘하고 사소한 행태는 꼼꼼하여 자세하게 살피는 행태와 유사하다(瑣細密察 쇄세근밀찰)


가식과 거짓으로 꾸민 것은 바르고 참된 것과 비슷하고(矯似正 교사정), 물흐르듯 이리저리 휩쓸려 잘 어울리는 것(流 류사화) 본질을 지키면서 어울리고 화합하여 조화를 이루는 것과 비슷하다. 따라서 조금만이라도 주의하여 잘 구분하지 않으면 진실되고 바른 것(眞 )에서 더욱 멀어진다. 이것이 구양덕(歐陽德)이 몸을 단속하던 방법이다.


남의 진실되고 곧은 점은 취하고 우직하여 융통성이 없음은 용서하며 남의 순박함은 취하고 어리석음은 용서하며, 남이 깨끗한 마음으로 두루 관계를 맺는 점은 취하고 소견이 좁아 너그럽지 못하고 답답스러운 점은 용서하며, 남의 신속히 일을 처리하는 민첩성은 취하고 소홀함은 용서하며, 남의 사리분별이 분명한 점은 취하고 교만하고 오만한 언행은 용서하며, 남의 신실함은 취하고 고집스러움은 용서한다. 단점을 인해 장점을 보아야 하고 장점을 꺼려 단점을 지적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진무경(陳無競)이 남을 포용하던 방법이다.


선현(先賢)의 말씀에, “남과 매우 다른 행동을 해서도 안 되지만 또한 남과 구차하게 합하는 것도 안 된다.” 하였으니, 의미가 있도다 이 말씀이여!


남의 말을 그대로 따라 말하는 것은 그의 말에 단순히 순응하고 동조하는 것이지 자기를 낮추는 겸손이 아니다. 이미 말하고 나서 금방 다른 말을 하는 것은 지조있는 태도가 아니다. 이상의 일은 식견이 없고 특정한 사람에게만 좋은 감정을 가지는 편사(偏私)가 많은 짓이다.


마음에 딴 생각을 품고 말을 하게 되면 그 말이 군색스럽고, 말 내용에 풍자하고 기롱하는 뜻이 많게 되면 마음이 격동되는 법이다. 부러워하는 마음과 꺼리는 마음은 서로 안팎이 되니, 먼저 부러워하는 마음을 제거해야 꺼리는 마음이 따라서 없어질 수 있다. 부끄러워하고, 분발하고, 두려워하고, 뉘우침은 사람이 되는 터전인 것이다.


귀할 때 아랫사람을 생각하고, 부자일 때 남 구제할 것을 생각하고, 천할 때 분수지킬 줄 알기를 생각하고, 가난할 때 자신의 본분지킬 줄 안다면 누가 그를 군자(君子)라 않겠는가? 몸가짐을 깨끗이하고 온화한 마음으로 남을 접하면 길할 것이다.


-이덕무(李德懋, 1741~ 1793), '성행(性行)'부분 발췌,『청장관전서 제27~29권/ 사소절 1(士小節 )』-


▲원번역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김동주 (역) ┃ 1980


※옮긴이 주: 

1. 소학(小學)근사록(近思錄): 소학은 도덕의 형식규범, 즉 도덕이 구체화되는 윤리규범을 가르치는 책으로 유년용 학습서다. 참고로 소학이 규범을 가르친다면 그 다음 학문단계인 대학(大學)은 도덕 자체를 가르친다. 전자가 일신용이라면 후자는 전자에서 가르친 규범을 가지고 세상을 마주하도록 가르친다. 근사록(近思錄)은  주자의 도학(道學) 즉 도덕학이라고도 불리우는 성리학의 개론서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2.관유온유, 발강강의, 제장중정: 이는 중용(中庸章句) 제31장이 그 출전이다. 유학에서 오덕(五德)은 온화,ㆍ양순ㆍ공손ㆍ검소ㆍ겸양을 말한다. 이를 중용에서는 더욱 구체적으로 논하길, 총명예지(聰明睿知), 관유온유(寬裕溫柔)ㆍ발강강의(發强剛毅)ㆍ제장중정(齊莊中正)ㆍ문리밀찰(文理密察)로 풀어 내어 설명한다. 한편으로 이는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신(信)과 그 맥락을 같이 한다.  이를 모두 오덕(五德)이라 칭한다. 

3. 익숙하지 않은 한자어가 우리 말로 풀이되지 않고 그대로 표기된 부분이 의외로 많았다. 특히 개념설명이 안되면 풀이도 물론이거니와 이해자체가 어려운 한자성어가 많았다. 때문에 쉽게 이해되지 않아 어려운 부분이 많은 고로, 상당한 부분을 개인적인 이해의 차원에서 나름 자의적으로 이해하는 글로, 최대한 맥락에 맞게 다시 풀어내고 의역하여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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