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해야 보탬을 받는다

선비가 독서를 귀중히 여기는 것은 한 언어(言語), 한 동작(動作)에서 반드시 성현(聖賢)의 행동과 훈계를 이끌어 준칙으로 삼아 전도됨이 없기를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속 사람이 글자 한 자도 읽지 않아 방향 없이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은 거론할 것도 못되거니와, 글을 많이 읽었다고 본디 일컬어진 자까지도 다소 배운 글귀를 과거(科擧) 글에만 사용하고 자기 몸에는 한 번도 시험하여 그 효험을 받지 않으니 매우 애석한 일이다. 또한 옛글을 익히 외워 말끝마다 인용하는 자도 있으나 그 마음씨를 살피면 아첨 교활하고, 소위 인용하는 것이 한갓 입술을 꾸미는 자료로 삼을 뿐이니, 이런 식이면 글을 아무리 많이 읽더라도 어디에 쓰겠는가? 글을 읽어서 부드럽고 아첨한 태도를 짓는 자를 누구나 사랑하니 슬프다.


고반룡(高攀龍)은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재주가 없는 것을 근심할 것이 아니니, 지식이 진전되면 재주도 진전된다. 도량이 없는 것을 근심할 것이 아니니, 견문이 넓으면 도량도 넓어진다. 모든 것이 배움에서 얻어진다.”


시윤장(施閏章)은 이렇게 말했다. “종일토록 자신의 허물을 발견하지 못하면 성현의 길을 끊는 것이고, 종일토록 남의 허물을 즐겨 말하면 천지의 화기를 상하게 하는 것이다.”


남의 나쁜 글을 외어서 사람들에게 퍼뜨리지 말고, 시문(詩文)의 찬자(撰者, 글을 지은 사람)를 바꾸어서 남을 속이거나 어린아이들에게 주지도 말라. 남의 재주는 추장(推奬,어떤 사람이나 물건 따위의 뛰어난 점을 말하고 추천함)해야 하지 가로막아서는 안 되고, 나의 재주는 수련해야지 자랑해서는 안 된다. 1푼쯤 유명해지려 하면, 벌써 1푼쯤 실속이 없어지는 것이다. 문장[文藻, 글에 멋부리기를 추구하는 것, 글짓는 솜씨나 재주에 집착하는 것]만을 한다면 비록 80~90살을 산다 하더라도 사람의 그림자 구실만 할 뿐이다. (*역자주: 문장[文藻]: 공안국(孔安國)의《상서전(尙書傳)》에 “조(藻)는 수초(水草)로서 문채가 있는 것이니, 문장을 비유한다.” 하였다.)


내게 한 가지 재주가 있거든 남들에게 자랑하려는 마음을 먼저 막으라. 종일 자기 재능을 자랑하기 위한 일들만을 지껄이고 남의 말은 한마디도 듣지 않는다면 성인(聖人)의 경지에 들 수 없으니 역시 딱하다. 전(傳)에, “실(實)해도 허(虛)한 듯하다.” 하고, 《주역(周易)》에는, “겸손해야 보탬을 받는다.” 하였다. 나의 일만을 자랑하면 남의 일은 자연 배척된다.


남보다 유능하다는 마음을 버리면 마음이 겸손해지고, 남보다 나으려는 마음을 버리면 마음이 평탄해지고, 사치스러운 마음을 버리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질투한 마음을 버리면 마음이 화평해진다는 것은 유사천(劉師川)이 마음을 다스리던 좋은 방법이다. 자신을 자랑하는 말, 남을 깎아 내리는 말, 케케묵은 말, 한만한 말, 희롱하는 말, 꾸미는 말, 근거 없는 말 등을 일체 하지 않고 종일 입을 열지 않는다는 것은 유즙산(劉蕺山)이 말을 삼가던 요지(要旨)다.


언어와 행동을 자기의 신심(身心)에 부합되지 않게 한다면 늙도록 허공만 더듬는 격의 인생일 뿐이다. 이는 모두 글을 잘 읽지 못한 데서 연유한 것이니, 참으로 맹랑(孟浪)한 사람이다.


하흠(賀欽)은 이렇게 말했다. “지금 글을 읽는 사람들은 그 글의 내용을 믿지 않는다. 그러므로 한 가지도 소득이 없다.” 글을 읽고 몸을 닦는 데 만일 표준이 없으면 족히 그 효험을 보지 못한다.


강학(講學)ㆍ성찰(省察)ㆍ함양(涵養)ㆍ천리(踐履, 실제로 이행함) 이것은 지행(知行,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 즉 지식과 행함)에 있어서 목표됨이 매우 중요하고 포괄된 바가 매우 넓다. 이것은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의 호) 선생의 학문하는 방법이었다.


-이덕무(李德懋,1741-1793), '가르치고 익혀야할 것(敎習 교습)', 『청장관전서  제27~29권사소절 3(士小節三) - 사전 3』중에서 부분발췌-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김동주 (역) ┃ 1980


*옮긴이 주: "망아지는 길들이지 않으면 좋은 말이 될 수 없고, 어린 소나무는 가꾸지 않으면 아름다운 재목을 이룰 수 없다.그러므로 자식을 두고서 잘 가르치지 않으면 버리는 것과 같다" , '사소절, 童規동규'에 나오는 말이다. 사소절(士小節)은 성인을 포함하여 특히 부녀자와 아동을 대상으로하는 일종의 실천적 교육 지침서로 단지 관념이나 개념적인 이론이 아니라 형암선생이 일상생활을 살아오며 나온 통찰의 결과물이다. 그 요체는 교조적인 규범이 아닌 일상생활에서 인간이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도덕윤리에 기반한 것으로 그가 체험을 통해 통찰한 인간다운 바른 삶에 대한 이해와 실천적 삶에 있다. 사소절은 형암선생이 30대(1775년)에 저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참고로 선생은 16세에 결혼을 했다. 사소한 일상의 삶과 사물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세밀히 관찰하여 기록한 이목구심서는 24~26세 3년에 걸쳐 저술하였고, 비슷한 저술인 선귤당농소(蟬橘堂濃笑)는 그 이전에 저술한 것으로 나온다. 근래에 선생의 글을 틈틈히 읽고 머리를 숙이며 병아리 모이쪼듯 필사하면서  한결같이 드는 생각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유구무언(有口無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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