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가 친히 밥어 지어 나를 먹였다
내 집에 가장 좋은 물건은 다만《맹자(孟子)》7책뿐인데, 오랫동안 굶주림을 견디다 못하여 돈 2백 닢에 팔아 밥을 잔뜩 해먹고 희희낙락하며 영재(泠齋 유득공(柳得恭)의 호)에게 달려가 크게 자랑하였소.
그런데 영재의 굶주림 역시 오랜 터이라, 내 말을 듣고 즉시 《좌씨전(左氏傳)》을 팔아 그 남은 돈으로 술을 사다가 나에게 마시게 하였으니, 이는 자여씨(子輿氏 맹자(孟子)를 가리킨다)가 친히 밥을 지어 나를 먹이고 좌구생(左丘生 좌구명(左丘明)을 가리킨다)이 손수 술을 따라 나에게 권한 것과 무엇이 다르겠소.
그리하여 맹씨와 좌씨를 한없이 찬송하였으니 우리가 1년 내내 이 두 책을 읽기만 하였던들 어떻게 조금이나마 굶주림을 구제할 수 있었겠는가? 이 참으로 글을 읽어 부귀를 구하는 것이 도대체 요행을 바라는 술책이요,
당장에 팔아서 한때의 취포(醉飽)를 도모하는 것이 보다 솔직하고 가식이 없는 것이라는 것을 비로소 알았으니 서글픈 일이오. 족하는 어떻게 생각하시오?
-이덕무(李德懋, 1741~ 1793), "이낙서(李洛瑞) 서구(書九) 에게 주는 편지" 중에서,『청장관전서/간본 아정유고 제6권/문(文)/서(書)』-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성백효 장순범 이정섭 (공역) ┃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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