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진난만하게 노는 어린아이와 부끄러워하는 처녀의 심정으로
“고(藁, 글을 기록한 원고)를 영처(嬰處)라고 하였으니 고(藁)를 쓴 사람이 영처인가?” 하므로, “고를 쓴 사람은 20세가 넘은 남자이다.” 하였다. “영처가 고를 쓴 사람이 아닌데도 고를 유독 '영처'라고 하면 옳겠는가?” 하므로, “이는 스스로 겸손한 것에 가까우면서도 도리어 스스로 찬미한 것이다.” 하였다.(옮긴이 주: 영처(嬰處)는 이덕무의 호로 문자적으로 보면, '어린아이의 상태'를 의미한다. 이외에도 형암(炯庵), 아정(雅亭)·청장관(靑莊館)·동방일사(東方一士)·신천옹(信天翁)등이 있다)
“그렇지 않다. 숙성(夙成)한 어린이는 스스로 찬미하기를 ‘장자(長者)’라 해야 할 것이요 지혜로운 처녀는 스스로 찬미하기를 ‘장부(丈夫)’라 해야 할 것이지만, 20이 넘은 남자가 도리어 영처로 스스로 찬미하였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노라.”하였다.
드디어 스스로 찬술(撰述)하기를, “옛적에 영처고의 수편(首篇)에 제(題)하기를 ‘어찌 영아가 오락하여 희롱하는 것과 다르겠는가? 마땅히 처녀의 부끄러워하여 스스로 감추는 것과 같아야 한다’ 했다.” 하였으니, 이는 참으로 스스로 겸손한 것에 가깝지만 실상은 스스로 찬미한 것임이 분명하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천성이 달리 좋아한 것이 없고 문장만을 즐길 뿐이었으며, 또한 문장을 잘하지는 못하였지만 오직 즐기기 때문에 잘하지 못하면서도 때로는 문장을 저술하여 스스로 즐거워하기도 하였다. 또 드러내어 자랑하기를 기뻐하지 아니하고 남을 향하여 명예 구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였으므로 사람들이 더러는 괴이하다고 꾸짖기도 하였다.
대개 나는 어려서부터 몸이 약하여 질병이 많았으므로 독서를 부지런히 할 수도 없어 강론하고 학습하는 것이 고루(固陋, 식견이 좁고 완고함)하였으며, 교도(敎導, 가르치고 이끔)하여 주는 사우(師友, 스승 및 동문수학하는 벗)도 없었고, 또 집안이 빈한하여 장서(藏書)를 갖지 못하였으므로 지식을 기를 수도 없었으니, 제아무리 깊이 즐긴다 하여도 그 학문은 또한 민망할 정도였다.
대저 영아의 오락하여 희롱하는 것은 천진(天眞) 그대로의 것이요, 처녀의 부끄러워하여 감추는 것은 순수한 진정 그대로이니 이것이 어찌 억지로 힘써서 하는 것이겠는가?
영아가 4~5세에서 6~7세에 이르는 동안이면 날마다 재롱을 일삼으니 예컨대 닭의 깃을 머리에 꽂고 파잎[葱葉]을 뚜뚜 불면서 벼슬아치놀이를 하며, 나무로 만든 제기(祭器)나 대나무로 만든 제기를 차려놓고 법도에 맞게 행동하는 등 학궁(學宮 성균관)의 놀이를 하며, 고함치고 부르짖으며 치솟고 날뛰며 눈을 부릅뜨고 손톱을 번쩍들어 달려드는 칡범이나 사자의 놀이를 하며, 정중한 모양으로 읍(揖)하여 나아가고 겸손하게 물러나며 섬돌과 청당에 올라 손님과 주인이 서로 접대하는 놀이를 하며, 가는 대[篠]로 참마[驂]를 만들고, 납(蠟)으로 봉황을 만들며 바늘로 낚시를 만들고 물동이로 연못을 만드는 등 무릇 귀로 듣고 눈으로 보는 것이면 본받아 배우지 않는 것이 없다.
천연으로 자득(自得)하였을 때에는 활짝 웃고 훨훨 춤추며 목청을 돋워 구슬프게 노래도 하며, 때로는 갑자기 엉엉 울기도 하고 홀연히 고함치기도 하며, 까닭없이 슬픔을 짖기도 하여 하루에도 천백 가지 모양으로 변화하여 왜 그렇게 하는 것인지 알지 못한다.
처녀는 실띠를 매기 시작하는 4~5세 때부터 비녀를 꽂는 15세에 이르도록 규문(閨門) 안에서 온화하고 단정한 거동으로 정하여진 예의 법도를 굳게 지키며, 음식을 만든다거나 바느질하고 길쌈하는 일에 대하여 어머니의 법이 아니면 따르지 아니하고, 행동하거나 언소(言笑, 웃으며 즐거이 대화하는 것)는 여스승의 가르침이 아니면 행하지 아니하며, 밤이면 촛불을 밝히고서야 행하고 낮이면 부채로 가리며 운라(雲羅 높이 치는 능라 그물)를 드리우고 무곡(霧縠 가볍고 엷은 비단)으로 가려 엄숙하기가 조정과 같고 멀리 단절된 것이 신선과 같다.
부끄러워 요도(夭桃)나 사균(死麕)의 시를 읽지 못하고, 한(恨)하여 탁문군(卓文君)이나 채문희(蔡文姬)의 일을 말하지 아니하며, 이모나 고모의 친척 여자 동기간이 아니면 한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소원한 친척이 먼 곳에서 오면 부모가 명하여 보게 한 뒤에야 형제를 따라 간신히 절하고 등불을 등지고 벽을 향하여 부끄러움을 스스로 이기지 못한다. 혹 때에 따라 중문 안에서 거닐다가도 멀리서 발자국소리나 기침소리가 들려오면 달아나 깊이 몸을 감추기에 여념이 없다.
아, 영아여 처녀여, 누가 시켜서 그러한 것인가? 그 오락하여 재롱하는 것이 과연 인위(人爲)이겠는가? 그 부끄러워하여 감추는 것이 과연 가면이겠는가? 이 원고를 쓴 사람이 문장을 저작하고도 보이려고 하지 않으니 또한 이것과 비슷하다.
대저 한 덩이의 먹을 갈아 세 치쯤 되는 붓을 휘둘러 아름다운 문장을 따오고 주워모아 화공(畫工)처럼 흉중에 있는 것을 그려내어, 답답하게 서린 근심을 기쁘게 풀기도 하고 서로 배치된 감정을 합하기도 한다. 휘파람 불고 노래하며 웃고 꾸짖어 산수의 밝고 아름다운 것과 서화(書畫)의 기이하고 고상한 것과 구름ㆍ안개ㆍ눈ㆍ달의 변화하고 고우며 희고 조촐한 것과, 꽃ㆍ풀ㆍ벌레ㆍ새의 예쁘고 아름답고 부르짖고 나는 모든 것이 붓에서 표현되었다
다만 그 천성이 강포하지 않아 과격하거나 괴팍하거나 꾸짖고 비방하는 따위의 언사를 쓰지 않으며 또한 스스로 만족하지 않다 하여, 문득 찢어 버리지도 아니하고 그저 갑집(甲集)ㆍ을집(乙集)으로 만들고는 붉고 푸른 색깔로 포장하여 표제(標題)를 붙이어 질(帙)을 만들고 주머니에 넣어 봉합하여 베고 깔고 휴대하여, 찬송(贊頌)도 하고 외어 노래하기도 하는 등 붕우와 같이 친하고 형제와 같이 사랑하였다. 이것은 모두 스스로의 성령(性靈)에 자적(自適)하는 것으로서 타인의 눈에 보일 만한 것은 못 되었다.
일찍이 불행히도 손님에게 발견되어 면대해서 칭찬하는 소리를 듣게 되면 홀연히 얼굴빛이 붉어져 사양하는 정도를 지나 마음이 아주 불안하였다. 손님이 물러간 뒤에도 부끄러움이 깊어지니, 도리어 스스로 노하여 아까운 생각없이 수화(水火)에 던져 버리려고 하였다. 분노가 약간 사라지자 다시 스스로 웃으며 이르기를,
“옛적에 상자에 단단히 봉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하고는 이에 열 겹 종이로 싸서 목감(木龕 나무로 만든 상자)에 넣어 자물쇠로 채우고는 정색하여 맹세하기를, “지금부터 만약 다시 남에게 발견되어 빼앗긴다면 마땅히 수화 속에 던져버려도 진실로 아까워하지 않으리라.” 하였으니 참으로 괴상한 사람이다.
그렇지만 어찌 감히 거칠고 편협하여 반딧불의 희미한 빛과 우마의 발자국에 고인 물방울 정도의 문장을 가지고 방자스럽게 스스로 교만하여 부끄러움 없이 자기 스스로 자기 자랑을 하고 공손하지 않게 뽐내며 망령되이 생각하기를, “내 이전에 이미 나만한 사람이 없었으니 내 이후에 어찌 있을 수 있겠는가?” 하여 식자의 꾸지람을 취하랴?
예부터 문장을 잘하는 사람치고 교만하여 높고 훌륭한 체하지 않은 사람이 없어, 질투하는 자가 사방에서 일어나 부당한 훼방(毁謗)을 당하며 이로 인하여 전도가 막히고 심지어는 몸과 명예를 잃고 부모마저 욕을 당하게 되는데, 하물며 문장을 잘하지도 못하는 자이겠는가? 아, 두려워할 따름이다.
나는 이미 오락하여 재롱하고 부끄러워 감추는데다가 겸하여 스스로 찬미하고 있으니, 오락하여 재롱하는 것은 어린아이의 일이므로 어른이 꾸짖지 아니할 것이요, 부끄러워하여 감추는 것은 처녀의 일이라 외부의 사람이 감히 의론하지 못할 것이다.
슬프다, 누군가가 나를 보고 ‘널리 남에게 구하여 스스로 밝히고 빛내라’ 하는 자가 있으면 비록 통절하게 풍자하여 규간(規諫)하더라도 나는 더욱 깊이 두려워하여 견고하게 감출 것이며, 또 누군가가 나를 보고 ‘다만 스스로 즐거워하고 남과 더불어 한가지로 즐거워하지 말라.’ 하는 자가 있으면 이에 대해서는 변명을 하지 않으리니, 이것은 참으로 스스로 그러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경계하고 삼가며 자세히 살피어 영아(嬰兒)와 처녀(處女)로 자처하여도 오히려 남의 꾸지람을 면치 못하니 참으로 부끄럽고 또 부끄럽다. 그러나 만약 이것으로써 자거(自居)하지 않는다면 그 비방을 어찌 이루다 말할 수 있겠는가?
다시 자위(自慰)하여 이르기를, “오락의 지극한 것은 영아만한 것이 없으니 그러므로 그들의 재롱하는 것은 애연(藹然)한 천진이고, 부끄러워하기를 지극히 하는 것은 처녀만한 것이 없으니 그러므로 그들이 감추는 것은 순수한 진정이다. 문장을 즐기는 사람으로서 오락하여 재롱하기를 지극히 하고 부끄러워하여 감추기를 지극히 하는 것도 또한 나만한 이가 없을 것이니, 따라서 그 고(稿)를 영처라 한 것이다.”하였다.
혹은 이르기를, “대개 이것을 즐기는 자는 이것을 잘하는 자이니 그대는 과연 이것을 잘하면서도 짐짓 스 스로 겸손하는 것이겠지?” 하였다.
나는 이르기를, “청컨대 음식을 가지고 비유하겠다. 대저 요리사가 아름다운 찬수(饌羞)를 장만함에 있어 큰 곰[封熊]의 발바닥과 살찐 닭[翰音]의 발바닥과 잉어의 꼬리와 성성(猩猩)의 입술과 금제옥회(金虀玉膾)에 생강과 계피(桂皮)를 섞고 소금과 매실(梅實)을 조화하여 삶고 볶기를 알맞게 하며 신맛과 짠맛으로 간을 맞추어 공후(公侯)에게 바치면 배부르도록 맛있게 먹지 않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대저 공후는 비록 아름다운 요리를 기호(嗜好)할 줄은 알아도 어찌 요리사와 같이 아름다운 요리를 만들 줄이야 알겠는가? 내가 문장을 기호한다는 것도 또한 공후의 요리를 즐기는 것과 같은 것이리라. 초에 담그면 응당 시고, 간장에 절이면 응당 짠 것쯤은 아무리 공후라 하여도 대략 짐작할 것이니, 내가 약간 문장을 지을 줄 안다는 것도 마땅히 이와 같을 것이다. 어찌 일부러 스스로 겸손만 하고 스스로 찬미하지 아니함이 있겠는가?” 하였다.
혹은, “그러면 영아와 처녀는 장부가 되고 부인이 될 날이 없겠느냐?” 하기에 나는 그래서 빙긋이 웃으면서 이르기를, “비록 장부가 되고 부인이 된다 하여도 천진 그대로의 애연(藹然,온화하고 부드러움)함과 진실 그대로의 순연(純然, 순수한 자연스러움)함은 백발이 되어도 변함이 없으리라.”하였다.
경진년(1760, 영조 36) 3월 곡우(穀雨)에 서(序)한다.
<역자 주>
1. 요도(夭桃), 사균(死麕)의 시 : 모두 《시경》국풍(國風)의 편명. 요도는 복사꽃이 필 때 처녀가 시집가는 것을 읊은 시이며, 사균은 사춘기(思春期)의 처녀를 남자가 유혹하는 시이다.
2. 탁문군(卓文君), 채문희(蔡文姬)의 일 : 둘 다 문학(文學)으로 유명하였으나 개가(改嫁)한 것을 두고 한 말. 탁문군은 한(漢)의 탁왕손(卓王孫)의 딸로 글을 잘하였다. 일찍이 과부가 되었는데 사마상여(司馬相如)가 탁씨집에서 술을 마시면서 거문고를 타 유혹하니 그날 밤으로 상여에게로 도망왔다.《史記 卷117, 漢書 卷57 司馬相如傳》 채문희(蔡文姬)는 후한(後漢) 채옹(蔡邕)의 딸로 역시 글과 음률(音律)을 잘하였다. 처음에 위중도(衛仲道)란 사람에게 시집갔으나, 남편이 죽자 친정에 와 있다가 난리를 만나 흉노에게 사로잡혔다. 흉노 땅에 12년 있다가 조조(曹操)의 주선으로 돌아와 동사(董祀)란 사람에게 개가하였다.《後漢書 卷84 董祀妻傳》
3. 금제옥회(金虀玉膾) : 생선회요리. 중국 동남지방인 오중(吳中)에서는 생선으로 회를 치고 과채(瓜菜)로 국을 끓여 곁들여 먹는다. 생선은 옥같이 희고 나물은 금같이 누른 빛이 나므로 이렇게 이른다.《春秋佐助期》
-이덕무(李德懋,1741-1793), ' 영처고 자서(嬰處稿自序)',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제3권/ 영처문고 1(嬰處文稿一)/서(序)-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이종술 (역) ┃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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