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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서치전 (看書痴傳): 책만 보는 바보 이야기

목멱산(木覓山 남산의 별칭) 아래 어떤 어리석은 사람이 살았는데, 어눌(語訥)하여 말을 잘하지 못하였으며, 성격이 졸렬하고 게을러 시무(時務)를 알지 못하고, 바둑이나 장기는 더욱 알지 못하였다. 남들이 욕을 하여도 변명하지 않고, 칭찬을 하여도 자긍(自矜)하지 않고 오직 책보는 것으로 즐거움을 삼아 추위나 더위나 배고픔을 전연 알지 못하였다. 어렸을 때부터 21세가 되기까지 일찍이 하루도 고서(古書)를 손에서 놓은 적이 없었다. 그의 방은 매우 적었다. 그러나 동창ㆍ남창ㆍ서창이 있어 동쪽 서쪽으로 해를 따라 밝은 데에서 책을 보았다. 보지 못한 책을 보면 문득 기뻐서 웃으니, 집안 사람들은 그의 웃음을 보면 기이한 책[奇書]을 구한 것을 알았다. 자미(子美 두보(杜甫)의 자)의 오언율시(五言律詩)를 더..

내가 나를 친구로 삼는다

쇠똥구리는 스스로 쇠똥굴리기를 즐겨하여 여룡(驪龍)의 여의주(如意珠)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따라서 여룡도 여의주를 가졌다는 것을 스스로 뽐내어 저 쇠똥구리가 쇠똥굴리는 것을 비웃어서는 안 된다. 어옹(漁翁)이 긴 낚싯대에 가는 낚싯줄을 거울 같은 물에 드리우고 말도 않고 웃지도 않으면서 간들거리는 낚싯대와 낚싯줄에만 마음을 붙이고 있을 때는, 빠른 우뢰소리가 산을 부수어도 들리지 않고 날씬한 아름다운 여인이 한들한들 춤을 추어도 보이지 않는다. 이는 달마대사(達磨大師)가 벽을 향해 앉아 참선할 때와 같다. 용모에 은연중 맑은 물이나 먼 산의 기색을 띤 사람은 바야흐로 함께 고아한 운치를 얘기할 수 있음은 물론이고, 그의 마음에는 돈을 탐하는 속태(俗態)가 없다. 만약 내가 지기(知己)를 얻는다면 이렇게 ..

깊이 알지도 못하고서 억지로 말할 수는 없다

일이 순조로운 환경 속에서 이루어짐이 좋다는 것은, 아첨하고 연약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아첨하고 연약한 것이 어찌 순조로운 환경이겠는가. 이는 도리어 역경인 것이다. 재주 있고 경박한 사람은 기교(機巧)를 부림이 간사하고 천박하며, 어리석고 둔한 사람은 기교를 부림이 간휼(간사하고 음흉함)하고 노골적이기 때문에, 군자들의 안목을 벗어나지 못하지만, 그 중에 혹 간사하면서도 음침하거나 간휼하면서도 비밀스러우면, 이런 사람은 못할 짓이 없는 것이다. 아아, 고금에 기교 부리지 않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는지. 봄철의 우는 새 소리는 화평하고 가을철의 벌레 소리는 처절한데, 이는 절후(節候)의 기운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당우(唐虞, 중국고대의 요, 순시대) 적의 글은 혼호(渾灝 뒤섞일 혼, 넓을 호, ..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을 모르면서 어찌 안다고 할수 있는가?

도(道)란 지극히 간단하고도 가까운 것이다. 멀리 있는게 아니라 사람의 일상생활 가운데에 있기 때문이다. 마당에 물뿌리고 빗자루질을 하는 것과 사람의 부름이나 물음에 대꾸하고 응답하는 방식만큼 간단한 것이 없고, 부모를 사랑과 존경으로 가까이 대하는 것과 윗어른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대하는 도(道)만큼 가까운 것이 없다. 그런데 훌륭한 사람이 되려고 하는 자들이 대부분 이것을 버리고 높고 큰 것만을 엿본다. 그래서 기본적인 것을 살피는 대신에 먼저 하늘의 도리(天道) 운운하고, 세상사의 이치(易理))를 논하려 한다. 등급을 뛰어 넘고 우선순위를 따르지 않는 폐단이 이러하다. 사람사이에 지켜야할 예와 도리(人道)를 모르는데, 어떻게 하늘의 도리와 이치(天道)를 알겠는가? 사람으로써 마땅히 지켜야할 이치(人理..

겸손해야 보탬을 받는다

선비가 독서를 귀중히 여기는 것은 한 언어(言語), 한 동작(動作)에서 반드시 성현(聖賢)의 행동과 훈계를 이끌어 준칙으로 삼아 전도됨이 없기를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속 사람이 글자 한 자도 읽지 않아 방향 없이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은 거론할 것도 못되거니와, 글을 많이 읽었다고 본디 일컬어진 자까지도 다소 배운 글귀를 과거(科擧) 글에만 사용하고 자기 몸에는 한 번도 시험하여 그 효험을 받지 않으니 매우 애석한 일이다. 또한 옛글을 익히 외워 말끝마다 인용하는 자도 있으나 그 마음씨를 살피면 아첨 교활하고, 소위 인용하는 것이 한갓 입술을 꾸미는 자료로 삼을 뿐이니, 이런 식이면 글을 아무리 많이 읽더라도 어디에 쓰겠는가? 글을 읽어서 부드럽고 아첨한 태도를 짓는 자를 누구나 사랑하니 슬프다. 고반룡(..

사람됨의 바탕

대체로 지금 사람의 성품이 착한가 착하지 않은가와 습속이 순박한가 순박하지 않은가에 대하여 나는 이하 세 가지 일로 살펴보겠다. 그들이 《소학(小學)》이나 《근사록(近思錄)》*을 보면 하품하지 않는가? 손을 마주 잡고 단정히 앉아 위의(威儀)를 가다듬는 자를 대하면 비웃지 않는가? 충신(忠信)스럽고 의리(義理)스러운 말을 들으면 싫증내지 않는가? 이 세 가지를 기뻐하고 복종하면 길인(吉人)과 선사(善士)가 될 것이나, 미워하고 어기면 성질이 비뚤어지고 마음이 가볍고 경솔하여 사람된 도리에서 어긋난 무리가 되지 않을 자 거의 드물다. 세상의 이목이나 사물등에 구속받음이 없는 것(放達 방달)은 본래 화통하고 쾌활한 자의 특성이라 앞뒤가 꽉 막히고 융통성이 없는 답답한 자(고루한 자)보다는 나은 듯하다. 그러..

나를 알아 주는 자

내가 우중(雨中)에 누워서 일생 동안 남에게 빌린 물건을 생각해 보니 낱낱이 셀 수 있었다. 내 성품이 매우 옹졸하여 먼저 남의 눈치를 살펴서 어렵게 여기는 빛이 있으면 차마 입을 열지 못하고, 상대방이 내게 대하여 조금도 인색하지 않음을 확실히 안 뒤에야 비로소 말했다. 남의 말이나 나귀를 빌린 것은 단지 6~7회뿐이고, 그 외는 모두 걸어다녔다. 혹시 남의 하인이나 말을 빌리면 그 굶주리고 피곤함을 생각하여 마음이 매우 불안하였으니, 결코 천천히 걸어다니는 것만큼 편치 못했다. 부모님이 병중에 계셨는데도 약을 지을 길이 없어서 친척에게 돈 백 문(文)과 쌀 몇 말을 빌린 일이 있다. 일찍이 아내가 병들어 원기(元氣)가 크게 쇠하였으므로 친척에게 약을 빌었는데 마음이 서먹하여, 부모님의 병환 때에 구(..

이심설[怡心說 ]: 마음을 기쁘게 한다는 것에 대하여

몸이란 본래 하나뿐이고, 마음도 또한 하나뿐이다. 비록 피와 살이 서로를 감싸고 신경과 힘줄, 근육과 피부로 서로 긴밀하게 연락되어 몸을 싸고 보호하고 있으나, 그 견고함은 나무나 돌ㆍ쇠 따위만 못하니 어떻게 오래 갈 수 있겠는가?또 이른바 칠정(七情 희(喜)ㆍ노(怒)ㆍ애(愛)ㆍ낙(樂)ㆍ애(哀)ㆍ오(惡)ㆍ욕(欲)의 정)이란 것이 감정으로 몸에 느껴져서 마음과 몸이 서로 울리고 뒤흔들기를 마지않는다. 그래서 칠정이 과하면 마음에서 몸으로까지 영향을 끼쳐 검은 머리카락은 변하여 희게 되고, 불그레하던 얼굴은 변하여 창백하게 되며 시간이 갈수록 점점 병들어 죽게 되는 것이 모두 이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다.세상에 어찌 칠정이 없는 사람이 있으며, 사람이 또 어찌 칠정이 없는 날이 있겠는가? 또 보통 이하의 ..

면강(勉強): 억지로라도 힘써야 할 것

사람의 마음쓰는 은미한 곳은 쉽게 볼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 일로써 각박한 자를 알아볼 수 있다. 무릇 남이 의외의 요절(夭折, 젊은 나이에 일찍 죽음)과 비상한 액운과 놀랍고 가련한 일을 당한 이야기를 듣고서 조금도 탄식하는 말과 측은해 하는 기색이 없는 자는 인간의 정리(正理)가 아니니, 어찌 남의 재앙(災殃)을 좋아하고 앙화(殃禍, 인과관계로 인해 받는 온갖 재앙)를 즐거워하지 않는다고 보장하겠는가? 이러한 사람들은 남이 패역(悖逆,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도리에 어긋나고 순리를 벗어남)하게 구는 것을 보아도 미워할 줄 모르고 남의 은애(은혜와사랑)를 받고도 감사할 줄 모르면서 으레 있는 일로 여길 뿐이니, 어찌 이들이 효자ㆍ충신이 되기를 바라겠는가? 이러한 점을 가지고 사람을 살펴보면 백에 ..

적언찬병서(適言讚幷序) : 참됨으로 이끄는 8가지

만물(萬物)은 참됨을 통해 이루어지고, 만사(萬事)는 참됨을 통해 행해진다. 그러므로 진짜를 심는 것을 가장 먼저 해야 한다. 이미 진짜를 심은 뒤에 운명을 관찰하지 않으면 꽉 막히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 다음에는 운명을 관찰해야 한다. 이미 운명을 관찰한 다음에는 잡다한 것에 현혹되는 것을 병(病)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방탕에 젖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 다음에는 마음을 다스려 잡다한 것에 미혹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이미 잡다한 것에 미혹되는 것을 경계한 뒤에 다른 사람의 헐뜯음으로부터 도피하지 않으면 상처를 입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헐뜯음으로부터 멀리 도피하는 것을 그 다음에 두었다. 헐뜯음으로부터 멀리 도피했는데도 영혼이 즐겁지 않으면 온 몸이 삐쩍 마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정신에 좋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