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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산문] 두 갈래 길

내 소싯 적에 사서(史書)를 읽으면서, 옛 분들이 고난의 시기를 당하여서도 훌쩍 떠나지 못하고 두리번거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음을 보아왔는데, 아부 잘하고 속세에 푹 빠진 자야 말하잘 것도 없지마는 명현(사리가 밝고 어진 사람, 明賢 또는 名賢)이라는 이도 준사(俊士, 재주와 슬기가 매우 뛰어난 사람)ㆍ철인(哲人,품성이 어질고 사리에 밝은 사람)도 가끔은 그 오욕을 면하지 못한 이가 있었으며, 더러는 불결한 세상이 싫어서 매미처럼 청고하게 속세 밖을 떠돌면서 자기 자신을 세상 밖에다 내놔 버린 이도 있었다. 따라서 그들이 취한 길은 비록 각기 다르지만 그들 세상살이가 불행했던 점은 같은 것으로 그 마음과 자취를 더듬어 볼 때 사실 슬픈 점이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내 저으기 그 두 길을 놓고 혼자서 말을..

[고전산문]군자와 소인의 나뉨은 성(誠)과 위(僞), 실(實)과 명(名)의 차이

공자(孔子)가 말하기를 “너는 군자유(君子儒, 자기를 수양하고 자아실현을 위한 학문, 즉 위기지학(爲己之學)을 하는 사람)가 되고 소인유(小人儒, 남에게 보이려는 학문, 즉, 위인지학(爲人之學)을 하는 사람)가 되지 말아라.” 하였는데, 군자와 소인의 나뉨은 성(誠)과 위(僞), 실(實)과 명(名)의 차이에 불과할 뿐이다. 성(誠)이란 천리(天理)에서 발현되어 자연스럽기 그지없는 것이요 속 마음에서 우러나와 아무 꾸밈이 없는 것이다. 말은 무슨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닌데도 행동을 돌아보아야 하고, 행동은 어떻게 하려는 의식이 없는데도 이목구비가 모두 바르게 되어야 한다. 성의가 넘쳐 돈후(인정이 두텁고 온후함)하게 되면서 거추장스러운 형식은 없어져 버리고 아름다운 위의(威儀,, 태도나 몸가짐이 바르고 위엄..

[고전산문] 오직 선한 것을 보배로 삼는다

(상략) 내가 생각하건대, 정금(精金, 순금)ㆍ양옥(良玉, 티없이 완벽한 옥)은 천하에 지극한 보배이나 모두 몸 밖의 물건으로서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으니, 없다고 해서 손해될 것 없으나 있으면 해를 가져 오기에 적합하니, 이 어찌 귀중한 것이 되겠는가. 옛 성인들은 임금의 자리를 큰 보배로 삼아 인(仁)으로써 지켰으니, 복희(伏羲)ㆍ신농(神農)ㆍ요(堯)ㆍ순(舜)ㆍ우(禹)ㆍ탕(湯)ㆍ문왕(文王)ㆍ무왕(武王)이 다 그 법이 같았고, 우리 부자(夫子 공자) 같은 이는 그런 덕은 있으나 그 자리를 얻지 못하였고, 보배를 품었으나 시행하지 못하게 되매, 글로 써서 백왕(百王)에게 모범을 보이되 “보배로 여기는 것은 오직 어진(賢)이다.(所寶惟賢)” 하였고, 증자(曾子)는 도를 전하여《대학장구(大學章句)》에..

[고전산문] 버리고 없애야 할 것

겨를 눈에다 뿌리면 하늘과 땅의 위치가 바뀌며 한 손가락으로 눈을 가리면 태산도 보이지 않는다. 겨가 하늘과 땅의 위치를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며 손가락이 태산을 보이지 않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닌데도 눈이 가림을 받으면 하늘과 땅처럼 큰 것도 그것에게 어두워지고 태산처럼 높은 것도 그것에게 가리워지고 마는데 무엇 때문인가? 하늘ㆍ땅ㆍ태산은 먼 데 있고 겨와 손가락은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임금의 옆에도 겨와 손가락이 있는데 안으로는 측근자, 총애를 받는 자와 밖으로는 중요한 인물, 권력을 쥔 자가 이것이다. 저 측근자, 총애를 받는 자, 중요한 인물, 권력을 쥔 자들이 그의 임금을 고혹하려면 반드시 먼저 헤아리고 칭찬하고 견지하여 그의 임금이 즐기는 것, 하고 싶어하는 것, 사랑하는 것, 싫어하는 것을..

[고전산문] 졸(拙)이란 것은 남이 버리는 것을 내가 취하는 것

(상략) 졸(拙, 옹졸할 졸)은 교(巧, 공교할 교, 교묘함)의 반대이다. ‘임기응변을 교묘하게 하는 자는 부끄러워할 줄 모른다. 부끄러움이 없는 것은 사람의 큰 병통이다.’ 하였으니, 남들이 이욕을 탐내어 나아가기를 구하면 나는 부끄러운 것을 알아서 의리를 지키니 졸(拙)한 것이요, 남을 교묘하게 속이기를 즐기는 데 나는 부끄러움을 알아서 그 참된 것을 지키니 이 또한 졸한 것이다. 졸이란 것은 남이 버리는 것을 내가 취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아가는 자가 반드시 얻는 것이 아니고 교묘한 자가 반드시 이루는 것이 아니다. 교묘한 자는 정신이 날로 피로하여 한갓 스스로 병이 될 뿐이다. 어찌 나의 참된 것을 버리고 교묘와 허위에 의탁하여 이익을 구할 것인가. 만약 의리에 나아가고 참됨을 지키는 자라면 스스..

[고전산문] 모르는 것이 있으면 물어서라도 배워야 한다

학문의 길은 다른 길이 없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길가는 사람이라도 붙들고 물어야 한다. 심지어 동복(僮僕, 나이어린 하인)이라 하더라도 나보다 글자 하나라도 더 많이 안다면 우선 그에게 배워야 한다. 자기가 남만 같지 못하다고 부끄러이 여겨 자기보다 나은 사람에게 묻지 않는다면, 종신토록 고루하고 어쩔 방법이 없는 지경에 스스로 갇혀 지내게 된다. 순(舜) 임금은 농사짓고 질그릇을 굽고 고기를 잡는 일로부터 제(帝)가 되기까지 남들로부터 배우지 않은 것이 없었다. 공자(孔子)가 말하기를, “나는 젊었을 적에 미천했기 때문에 막일에 능한 것이 많았다.” 하였는데, 여기에서 말하는 막일 또한 농사짓고 질그릇을 굽고 고기를 잡는 일 따위였을 것이다. 아무리 순 임금과 공자같이 성스럽고 재능 있는 분조차도, ..

[고전산문] 있고 없음의 유무

이 세상에는 있지만 없는 것이 있다. 없지만 있는 것도 있다. 있음에도 가지지 못해서 없는 것은, 있지만 없는 것이다. 없음에도 가질 수 있어서 본래부터 있는 것은, 없지만 있는 것이다. 진실로 그 있는 것에서부터 미루어 헤아려 있는 것을 없이할 수 있다면, 이 세상에 있고 없음의 유무는 모두 자신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여기 한 사람이 있다. 세상 모든 것을 가지려 하지 않는다. 많이 가진 것은 오직 옛사람들의 책뿐인 사람이 있다. 어려운 시절을 만나 후미지고 외진 곳에 살게 되니, 예전에는 있던 것들이 지금은 많지 않다. 선비 중에 책이 없는 사람은 갖고 싶지만 얻지 못한다. 있지만 그가 사는 지역에는 없는 까닭이다. 있지만 없는 이것은 마치 세상의 것에 어두운 것과 같다. 이 어찌 애석하지 않은가...

[고전산문] 죽어있는 말(語)

유교와 불교가 어찌 처음부터 다른 도였겠는가. 요(堯)임금은 ‘넉넉하고 부드럽게 하여 스스로 깨닫게 한다’고 하였다. 맹자는 ‘사람의 본성(本性)으로 돌이켜 그것을 구하면 능히 스승으로 삼을만한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오늘날의 배우는 자들은 마음에서 구하지 않고 문장(章句)의 부분만을 취하여 도리(道)를 추구하려고 하니, 어찌 대도(大道)와의 거리가 이미 까마득하지 않겠는가? 중용(中庸) 책 한 권을 읽고 중용을 지키는 성인(聖人)의 경지를 이룬다면, 어떤 사람인들 자사(子思)가 되지 못할 것이며, 대학(大學) 책 한 편을 읽고 치국평천하(治國 平天下)의 도를 얻는다면 어떤 사람인들 증삼(曾參)이 되지 못하겠는가? 성인(聖人)의 말은 간략하고, 현인( 賢人)의 말은 상세하다고 하였다. 그렇지만 상세..

[고전산문] 졸(拙)이라는 글자에 담긴 뜻(용졸당기)

백마강(白馬江)이 서남쪽으로 흐르다가 가림군(加林郡) 남쪽 지점에 이르러 남당강(南塘江)이 되는데, 이 강 연안에 당우(堂宇) 한 채가 자리잡고 있다. 이곳은 산림이 울창하게 우거진 데다 너른 들판 또한 볼 만한 경치를 제공해 주고 있는데, 이 집이 바로 민 관찰 사상(閔觀察士尙,사상은 민성휘(閔聖徽)의 자(字)임)씨의 별장(別莊)이다. 사상이 호남에서 치서(馳書, 급히 보낸 편지)하여 나에게 부탁하기를, “내가 세상살이에 서툰 것으로 말하면 비둘기* 정도일 뿐만이 아니다. 벼슬살이 20년에 왕명을 받들고 방백(方伯)이 되기까지 하였는데, 달팽이 껍질 같은 집이라도 몸을 가릴 만한 처소 하나 여태 마련하지를 못하였다. 그러다가 지난해 영남 지방의 관찰사를 그만두고 나서야 비로소 이곳에 터를 잡고 집을 지..

[고전산문] 오직 내 마음을 따를뿐

조정에서 사론(士論)들이 서로 편을 나누고 가르는 까닭에 벗을 사귀는 도리가 그 처음과 끝을 한결같이 보전할 수 없게 되고 말았다. 벗을 사귀는 도리는 오직 하나다. 그런데 어찌하여 하나가 둘로 갈라지게 되었나? 하나가 둘로 갈라진 것도 오히려 불행인데 어찌하여 넷이 되고 다섯으로 갈라져 버렸는가? 하나인 도리가 넷으로 다섯으로 갈라지고 제각각 한통속이 된 것은 모두 사사로운 이해관계를 따른 것일 뿐이다. 그런즉 사람의 의리를 어찌 쉽게 저버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편당에 휩쓸리지 않고 홀로인 사람은 어느 한편에 붙지않고 혼자라는 그것 때문에 다른 네 다섯과 적이 되고 만다. 그러하니 혼자인 사람이 어찌 외롭지 않겠는가? 하나의 세력이 성하면 다른 하나의 세력이 쇠하고, 하나를 지키고 나아가면 다른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