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대산 김매순

응객(應客): 의견의 병(病), 지기(志氣)의 병, 심술의 병

優拙堂 2017. 12. 25. 09:05

풍서주인(風棲主人 김매순(金邁淳)의 다른 호)이 평소에 사람을 접하는 일이 드물었고 또 사람을 접하더라도 말이 매우 간단하였으며, 시사(時事)를 논하는 일은 특히 크게 금기시하였다. 하루는 손으로 옛날부터 서로 친하였고, 근래에는 요직에 있는 사람들과 익숙한 사람이 길을 지나다가 방문하였는데, 의복과 말과 따르는 종들이 헌출하였다. 


이야기하는 사이에 손이 시사를 말하여[言], 주인이 나는 모르겠다고 사절하니, 손이 노하여 말하기를, “예로부터 친하기 때문에 내가 공에게 숨김이 없는 것인데, 어찌 그리 굳이 거절하는가?” 하였다. 


주인(김매순 본인)이 부득이하여 물음에 대해 응답하기를 여남은 번 오갔는데, 도리어 맞지 않는 것이 많았다. 주인이 웃으면서 손에게 말하기를, “공은 맞지 않는 이유를 아는가?” 하니, “알지 못한다.” 하였다. 주인이 말하기를, “공은 유가의 성과 이와 기에 관한 논[性理氣之論]을 아는가?” 하니, “알지 못한다.”하였다. 


주인이 말하기를, “유가에는 성(性)과 이(理)와 기(氣)에 관한 논(論)이 있는데, 이(理)부터 말하자면, 천하의 성(性)이 같지 않은 것이 없고, 기(氣)로부터 말하자면 천하의 성이 다르지 않은 것이 없으니, 그 같고 다른 까닭을 알면 같다 다르다 하면 같다 하는 것이나 다르다 하는 것이 다 옳지마는, 고집이 있어서 다투기를 즐기는 자가 남이 같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기(氣)를 고집하여 비난하기를, ‘이것이 다르지 어찌 같은가?’ 하고, 남이 다르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이(理)를 고집하여 비난하기를, ‘이것이 같지 어찌 다른가?’ 한다.


그러므로 만번 말해 보았자 만번을 맞지 않으니, 일을 논하는 것도 이와 같다. 이 세상에 살면서 세상을 이야기하는 데에도 피차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은인과 원수가 생기는 것이요, 강하고 약한 것이 상호 작용을 하기 때문에 굽히고 뻗는 것이 생기고, 이해가 서로 걸리기 때문에 향하고 피하는 일이 생기니, 혼잡하여 무리를 이루었다 해서 반드시 그른 것이 아니요, 개결(介潔, 성품이 굳고 깨끗함)하게 홀로 섰다 해서 반드시 옳은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기세(機勢 형세에 구애받는 것)의 설이다. 


또 천고(千古) 이전의 세상으로 올라가 모든 사람 밖으로 초월하여 저와 나를 설정하지 않고, 강한 것과 약한 것을 비교하지 않고, 이익과 손해에 참여하지 않아서 무리를 이루어도 당(黨)이 아니요, 홀로 섰다 하여도 괴상한 것이 아니라 하는 것은 이도(理道 도리가 그러하여 바꿀 수 없는 것)의 설이다.


이 두 설이 서로 없을 수 없는 것은, 또 성(性)에 이(理)와 기(氣)가 있는 것과 같다. 두 설을 서로 섞지 못하는 것은, 성을 논하는 사람이 저것을 고집하여 이것을 비난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지금 나와 그대가 서로 맞지 않는 것은 서로 혼잡함이 있어 고집을 부리는 데 가까운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그대는 드러난 사람이요, 교유하는 사람이 모두 요직에 있는 영웅호걸이니 형세에 구애를 받는 사람들의 설에 대해서는 이미 실컷 들었을 것이다. 지금 수레를 돌려 강호(江湖)에 와서 나를 비루하다 여기지 않고 더불어 이야기하는 것은, 그 실컷 들은 것 이외에 또 다른 말이 있을 것이라 생각해서일 것이다. 


그런데 내가 다시 그 실컷 들은 것을 가지고 이야기한다면, 이것은 강가나 바닷가에 있는 사람에게 물고기를 대접하는 것이요, 또 공이 다시 나의 말을 실컷 들은 것과 다르다 하여 의심한다면, 이것은 채소와 과일을 찾으면서 그 맛이 쌀밥이나 고기와 다른 것을 의심하는 것과 같은 것이니, 어찌 잘못된 태도가 아니겠는가?


또 내가 듣건대, '군자는 자기에게 병폐가 되는 것이 셋이 있다'(君子所病乎已者三)하니, 선을 악으로 알거나 악을 선으로 아는 것은 의견의 병폐(意見之病)요, 선인 줄 알면서도 따르지 못하고 악인 줄 알면서 버리지 못하는 것은 지기(志氣)의 병폐(志氣之病)요, 선을 알면서 그것을 따르지 못하고 그 따르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여, ‘저것은 진실로 선이 아니다.’라고 변명하고, 악을 알면서도 버리지를 못하고 버리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여 ‘이것은 진실로 악이 아니다.’라고 변명한다면 이것은 심술(心術)의 병폐인 것이다. 


의견의 병은 깨달으면 없앨 수 있고, 지기의 병은 힘쓰면 버릴 수 있으나, 병이 심술에 있는 사람은 죽고 말 뿐이니, 나라를 일으킨 왕이 버린 바요, 성스러운 스승[聖師]이 끊었던 것으로, 사람들이 스스로 알지 못하는 것이 괴로울 따름이다. 의견의 병과 지기의 병은 내가 감히 자신하지 못하나, 저 심술의 병이야말로 주야로 전전긍긍 걱정하는 것이다. 고상하고 현명한 공이 어찌 이런 일이 있겠는가?” 하니, 손은 한참을 묵묵히 있다가, “공의 말이 옳다.” 하였다. 


손이 떠나고 문인(門人)이 묻기를, “기세(機勢, 형세에 구애받는 것, 즉 권세,권력, 위세등을 다루고 펼치는 바탕이되는 형세)와 이도(理道, 이치와 도리)는 끝내 하나가 될 수 없습니까?” 하니, “어찌하여 안 되겠는가? 군자가 윗자리에 있으면 이도를 가지고 기세를 삼고, 군자가 아래에 처하면 기세는 버리고 이도를 따르는 것이다. 장자(張子 장재(張載))가 말하기를, ‘기질(氣質)의 성(性)은 성으로 여기지 않는다.(氣質之性 有不性焉)’ 하였으니, 이런 유(類)를 말한 것이다.” 하였다.


“그러면 선생께서는 왜 끝내 손에게 그런 말을 하지 않았습니까?”하니, “묻는데 내가 말을 다하지 않는 것을 입을 다문다 하고, 묻지 않는데 내가 말을 다하는 것을 지껄인다 하는 것이니, 입을 다물면 남과 절교하는 것이요, 지껄이면 자기를 잃는 것이다.” 하였다.


-김매순(金邁淳, 1776~1840),'손님에게 응답함[應客], 여한십가문초 제9권 /왕성순(王性淳) 집(輯),이기소(李箕紹) ,공성학(孔聖學) 참정(參訂)/한 대산 김매순 문[韓金臺山文]-


▲원글출처:ⓒ 한국고전번역원 ┃ 이한조 (역) ┃ 19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