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연암 박지원

냄새나는 가죽부대 속에 몇 개의 문자

優拙堂 2017. 12. 19. 11:48

그대는 행여 신령한 지각과 민첩한 깨달음이 있다 하여 남에게 교만하거나 다른 생물을 업신여기지 말아 주오. 저들에게 만약 약간의 신령한 깨달음이 있다면 어찌 스스로 부끄럽지 않겠으며, 만약 저들에게 신령한 지각이 없다면 교만하고 업신여긴들 무슨 소용이 있겠소.


우리들은 냄새나는 가죽부대 속에 몇 개의 문자를 지니고 있는 것이 남들보다 조금 많은 데 불과할 따름이오(吾輩臭皮帒中 裹得幾箇字 오배후피대중 과득기개자).그러니 저 나무에서 매미가 울음 울고 땅 구멍에서 지렁이가 울음 우는 것도 역시 시를 읊고 책을 읽는 소리가 아니라고 어찌 장담할 수 있겠소.


-박지원(朴趾源, 1737~1805), '초책(楚幘)에게 보냄(與楚幘)', 연암집 제5권/영대정잉묵(映帶亭賸墨)/척독(尺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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