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연암 박지원

비슷하다고 진짜는 아니다

優拙堂 2017. 12. 19. 12:07

이 세상 사람들을 내 살펴보니 남의 문장을 기리는 자는 문(文)은 꼭 양한(전한 시대과 후한 시대)을 본떴다 하고 시는 꼭 성당(당나라 전성시대의 글)을 본떴다 하네. 비슷하다는 그 말 벌써 참이 아니라는 뜻(曰似已非眞) 한당(漢唐)이 어찌 또 있을 리 있소. 


우리나라 습속은 옛 투식 즐겨 당연하게 여기네 촌스러운 그 말을 듣는 자는 도무지 깨닫지 못해 얼굴이 붉어지는 사람이 없군. 못난 놈은 기쁨이 뺨에 솟아서 입을 벌려 웃어 대며 침을 흘리고 약은 놈은 갑자기 겸양을 발휘하고 삼십 리나 피하여 달아나는 척 허한 놈은 두 눈이 놀라 휘둥글 더웁지 않은데도 땀 쏟아지고 약골은 굉장히도 부러워하여 이름만 들어도 향기 나는 듯 심술꾼은 공공연히 노기를 띠어 주먹 불끈 후려치길 생각한다오 


내 또한 이와 같은 기림을 듣고 갓 들을 땐 낯가죽이 에이는 듯싶더니 두 번째 듣고 나니 도리어 포복절도 여러 날 허리 무릎 시큰하였다네 이름이 널리 알려질수록 더욱 흥미 없어 밀조각을 씹은 듯이 도리어 맛이 없더군 


그대로 베껴서는 진정 안 될 말 오래 가면 마치도 실성하여 바보가 된 듯하지 심술쟁이를 돌아보며 얘기하노니 잔재주 따윌랑 우선 버리게 조용히 내가 한 말 들어나 보면 네 마음 응당 너그러워질 터 흉내쯤이야 시새울 게 무엇이 있다고 스스로 야료를 부리다니 무안스럽지 않나? 


걸음을 배우려다가 되려 기어서 오고 찌푸림을 본받으면 단지 추할 뿐 이제 알리라 그려 놓은 계수나무가 생생한 오동만 못하다는 걸 손뼉 치며 초(楚) 나라를 놀라게 해도 마침내는 의관(衣冠)을 빌린 것이며 푸르고 푸른 언덕의 보리를 노래한 것은 입속의 구슬을 몰래 빼내기 위함이라. 


제 속이 속된 줄은 생각 안 하고 아름다운 붓 벼루만 애써 찾거든 육경의 글자로만 점철하는 건 비하자면 사당에 의탁한 쥐와 꼭 같지 훈고(訓詁)의 어휘를 주워 모으면 못난 선비들은 입이 다 벙어리 되네. 태상이 제물을 벌여 놓으니 절인 생선과 젓갈 뒤섞여 썩은 냄새 진동하고 여름철 농사꾼이 허술한 제 차림 잊고 창졸간에 갓끈과 띠쇠로 겉치장한 셈이지. 


눈앞 일에 참된 흥취 들어 있는데 하필이면 먼 옛것을 취해야 하나 한당은 지금 세상 아닐 뿐더러 우리 민요 중국과 다르고말고 반고(班固)나 사마천(司馬遷)이 다시 태어난다 해도 반고나 사마천을 결단코 모방 아니 할걸세. 새 글자는 창조하기 어렵더라도 내 생각은 마땅히 다 써야 할 텐데 어쩌길래 옛 법에만 구속이 되어 허겁지겁하기를 붙잡고 매달린 듯 하나 지금 때가 천근(淺近)하다 이르지 마소 천년 뒤에 비한다면 당연히 고귀하리. 


손자(孫子) 오자(吳子)의 병서 사람마다 읽긴 하지만 배수진을 아는 자는 극히 드물지 남들이 사 두지 않는 물건을 서둘러 산 이는 유독 저 여불위(呂不韋)란 큰 장사치뿐이었네 


이 몸은 음(陰)이 허해 병이 깊어져 사 년째 다리가 쑤시고 아팠다오 적막한 물가에서 그대를 만나니 가을철 쓸쓸한 규방의 미인마냥 얌전도 하이 웃음을 자아내는 광형(匡衡)이 방금 온 듯 몇 밤이나 등잔 심지 돋우었던가 글 평론 약속한 듯 서로 꼭 들어맞으니 두 눈을 빛내며 술잔을 잡네 하루아침에 막힌 가슴 쑥 내려가니 입에 가득 매운 생강 씹은 맛일세.


평생에 숨겨 둔 두어 줌 눈물 싸 두었다 뿌리노라 가을 하늘에 목수장이 나무 깎길 맡았지마는 대장장이를 배척한 일이 없었네 미장이는 제 스스로 쇠흙손 잡고 기와 이는 놈 제 스스로 기와 만드네 그들이 방법은 비록 같지 않지만 목적은 큰 집을 짓자는 거야 저만 옳다 하면 남이 붙지를 않고 지나치게 깔끔을 떨면 복 못 받느니 그대는 아무쪼록 현빈을 지키고 아무쪼록 기저를 장복(長服)하게나 부디 한창 젊을 적에 노력한다면 전문이 동쪽으로 활짝 열리리. 


※[역자註]: 좌소산인(左蘇山人)은 서유본(徐有本 : 1762~1822)의 호이다. 서유본은 그 아우 서유구(徐有榘)와 함께 연암을 종유(從遊)하고 문학적으로 큰 감화를 받았다.


-박지원(1737~1805), '좌소산인(左蘇山人)에게 주다'『연암집 제4권 /영대정잡영(映帶亭雜咏)』-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신호열 김명호 (공역) ┃ 2004


※[옮긴이 참조] 윗글은 시부(詩)의 형태로 써진 글이다. 옮기면서 현대식 산문형태로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