優拙堂 2017. 12. 19. 12:14

옛날에 붕우(朋友, )를 말하는 사람들은 붕우를 ‘제 2 의 나’라 일컫기도 했고, ‘주선인(周旋人)*’이라 일컫기도 했다. 이 때문에 한자를 만드는 자가 날개 우(羽) 자를 빌려 벗 붕(朋) 자를 만들었고, 손 수(手) 자와 또 우(又) 자를 합쳐서 벗 우(友) 자를 만들었으니, 붕우란 마치 새에게 두 날개가 있고 사람에게 두 손이 있는 것과 같음을 말한 것이다.


그런데도 “천고의 옛사람을 벗 삼는다.(尙友千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너무도 답답한 말이다. 천고의 옛사람은 이미 휘날리는 먼지와 싸늘한 바람으로 변해 버렸으니, 그 누가 장차 ‘제 2 의 나’가 될 것이며, 누가 나를 위해 주선인이 되겠는가. 


양자운(揚子雲, 양웅)*은 당세의 지기(知己)를 얻지 못하자 개탄하면서 천년 뒤의 자운(子雲)을 기다리려고 했는데, 우리나라 사람 조보여(趙寶汝)가 이를 비웃으며, “내가 지은 《태현경(太玄經)》을 내가 읽으면서, 눈으로 그 책을 보면 눈이 자운(子雲)이 되고, 귀로 들으면 귀가 자운이 되고, 손으로 춤추고 발로 구르면 각각 하나의 자운이 되는데, 어찌 굳이 천년의 먼 세월을 기다릴 게 있겠는가.”하였다. 


나는 이런 말에 또다시 답답해져서, 곧바로 미칠 것만 같아 이렇게 말하였다. “눈도 때로는 못 볼 수가 있고 귀도 때로는 못 들을 수가 있을진대, 이른바 춤추고 발 구르는 자운(子雲)을 장차 누구로 하여금 듣게 하고 누구로 하여금 보게 한단 말인가. 아, 귀와 눈과 손과 발은 나면서부터 한몸에 함께 붙어 있으니 나에게는 이보다 더 가까운 것이 없다. 그런데도 오히려 믿지 못할 것이 이와 같은데, 누가 답답하게시리 천고의 앞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어리석게시리 천세의 뒤 시대를 굼뜨게 기다릴 수 있겠는가.”


이로 말미암아 본다면, 벗이란 반드시 지금 이 세상에서 구해야 할 것이 분명하다.

아, 나는 《회성원집, 청나라  문인 곽집환의 문집》*을 읽고서 나도 몰래 속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눈물을 마구 흘리면서 속으로 이렇게 자문자답했다.


“나는 봉규(𡊋圭,  곽집환) 씨와 더불어 이미 이 세상에 같이 태어났으니, 이른바 나이도 서로 같고 도(道)도 서로 비슷하다 하겠는데, 어찌 서로 벗이 될 수 없단 말인가. 기필코 장차 서로 벗을 삼을진대 어찌 서로 만나볼 수 없단 말인가. 두 지역의 거리가 만리(萬里)인즉, 지역이 멀어서 그런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아아, 이미 서로 만나 볼 수 없는 처지라면 그래도 벗이라 이를 수 있을 것인가? 나는 봉규 씨의 키가 몇 자인지, 수염과 눈썹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지 못한다. 용모도 알 수 없다면 한세상에 같이 사는 사람이라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렇다면 나는 장차 어찌해야 할 것인가? 나는 장차 천고의 옛사람을 벗 삼는 식으로 벗을 삼을 것인가?”


봉규의 시(詩)는 성대하도다! 장편의 시는 소호(韶頀) 풍악*이 일어나듯 하고, 짧은 시들은 옥이 부딪치듯 맑게 울린다. 시가 차분하고 기품이 있으며 따뜻하고 우아함은 낙수(洛水)의 놀란 기러기*를 보는 것 같고, 깊이 있고 쓸쓸함은 동정호(洞庭湖)의 낙엽 지는 소리*를 듣는 듯하다. 그러니 나는 또 이 시를 지은 이가 자운(子雲)인지, 읽는 이가 자운인지 모르겠다.


아, 언어는 비록 다르나 문자는 똑같으니, 그가 시에서 즐거워하고 웃고 슬퍼하고 우는 것은 통역을 안 해도 바로 통한다. 왜냐하면 감정을 겉으로 꾸미지 않고, 소리가 충심에서 우러나왔기 때문이다. 


나는 장차 봉규 씨와 더불어 한편으로는 후세의 자운을 기다리는 이를 비웃고, 한편으로는 천고의 옛사람을 벗 삼는 이를 위문할 것이다.


※[역자 주] 

1.회성원집(繪聲園集) : 청 나라 산서인(山西人) 곽집환(郭執桓 : 1746~1775)의 문집이다. 곽집환은 자가 봉규(𡊋圭)ㆍ근정(勤庭)이며, 호가 반오(半迂)ㆍ동산(東山)ㆍ회성원(繪聲園)으로, 시를 잘 지었으며 그림과 글씨에도 뛰어났다. 곽집환은, 홍대용이 1766년 북경에서 돌아오는 길에 교분을 맺게 된 그의 친구 등사민(鄧師閔)을 통해, 자신의 시고(詩稿)인 《회성원집》에 대해 조선 명사들의 서문을 요청하였다. 이에 홍대용과 아울러 연암이 《회성원집》의 발문을 짓게 되었다. 《熱河日記 避暑錄》 《湛軒燕記 鄧汶軒》 《湛軒書 內集 卷3 繪聲園詩跋》

2. '제 2의 나' ,주선인(周旋人)마테오 리치의 《교우론(交友論)》의 첫머리에 “나의 벗은 타인이 아니라 곧 나의 반쪽이요 바로 제 2 의 나이다.〔吾友非他 卽我之半 乃第二我也〕”라고 하였다. 주선인(周旋人)은 보통 시중드는 사람이나 문객(門客)을 뜻하는데, 당(唐) 나라 이전에는 한때 붕우의 뜻으로 쓰이기도 했다. 《晉書 卷99 陶潛傳》 《宋書 卷89 袁粲傳》

3. 벗 붕(朋)자, 벗 우(羽)자 : 마테오 리치의 설을 취한 것이다. 《교우론》의 원주(原註)에 “우(友) 자는 전서(篆書)로는 ‘㕛’로 쓰니 이는 곧 두 손으로서, 꼭 있어야지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붕(朋) 자는 전서로는 ‘羽’로 쓰니 이는 곧 양 날개로서, 새가 이를 갖추어야 바야흐로 날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붕(朋) 자에 대해서는 붕(倗) 자의 가차자(假借字)라는 설, 봉(鳳)의 옛글자라는 설, 두 개의 월(月) 자, 또는 육(肉) 자, 또는 패(貝) 자를 합친 것이라는 설 등 정설이 없다. 우(友) 자는 손을 뜻하는 우(又) 자 2개가 합쳐진 회의자(會意字)이다.

4. 양자운(揚子雲) : 자운(子雲)은 양웅(揚雄)의 자이다. 자신이 저술한 《태현경(太玄經)》에 대해 사람들이 모두 비웃자, 양웅은 “세상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상관없다. 후세에 다시 양자운이 나와 반드시 이 저술을 애호할 것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한서》 권87 양웅전(揚雄傳)에는 보이지 않으며, 한유(韓愈)의 여풍숙논문서(與馮宿論文書)에만 나온다. 이어서 한유는, “양웅이 죽은 지 거의 천년이 되었으나 끝내 아직도 양웅이 나오지 않았으니 한탄스럽다.”고 했다.

5. 소호(韶頀) : 은(殷) 나라 탕(湯) 임금 때의 궁중음악이라는 설도 있고, 소(韶)는 순(舜) 임금 때의 궁중음악, 호(頀)는 탕 임금 때의 궁중음악이라는 설도 있다. 옛날 태평성대의 음악을 가리킨다.

6. 낙수(洛水)의 놀란 기러기 : 낙수는 지금의 중국 하남성(河南省) 낙하(洛河)를 말한다. 삼국 시대 위(魏) 나라 조식(曹植)의 낙신부(洛神賦)에서 하수(河水)의 여신(女神)을 묘사하기를 “경쾌한 모습이 마치 놀라서 날아오르는 기러기 같다.〔翩若驚鴻〕”고 하였다.

7. 동정호(洞庭湖)의 낙엽 지는 소리 : 남북조 시대 북주(北周) 유신(庾信)의 애강남부(哀江南賦)에 “낙엽 지는 동정호를 떠난다.〔辭洞庭兮落木〕”고 하였다. 이는 굴원(屈原)의 구가(九歌) 중 ‘상부인(湘夫人)’에 “동정호에 파도 일고 낙엽이 지네.〔洞庭波兮木葉下〕”라고 한 구절에 전고(典故)를 둔 것이다.


-박지원(1737~1805), '회성원집 발문(繪聲園集跋)', 『연암집 제3권/ 공작관문고(孔雀館文稿)』-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신호열 김명호 (공역) ┃ 2004


"나의 벗은 타인이 아니라 바로 나의 반쪽이니, 바로 '두번 째의 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마땅히 벗을 자기처럼 여겨야 한다. 때로는 평소에 아무 일 없을 경우 벗의 진위를 가려 내기 어렵지만 어려움이 닥쳤을 때 벗의 진실이 드러난다. 대체로 일이 급할 때 진실한 벗은 더욱 가까워지고, 거짓된 벗은 더욱 소원해진다...벗을 사귀기 전에 마땅히 먼저 그 사람의 사람됨을 살펴야만 하고 사귄 후에는 마땅히 그를 믿어야 한다....오늘의 벗이 나중에 변해서 원수가 되기도 하고, 오늘의 원수가 변해서 벗이 되기도 한다. 어찌 삼가고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벗과 사귀면서 만약 오로지 자기의 이익만 알고 보탬에 재차 마음 쓰지 않는다면,그 벗은 장사치일 뿐이지 벗이라고 말할 수 없다...자신이 벗이 되게 할 수 없다면 어떻게 다른 사람을 벗할 수 있겠는가?(마테오리치 1552~1610, '교우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