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성소 허균

[고전산문] 마땅한 이유가 있어 통곡한다 / 허균

優拙堂 2018. 9. 29. 18:02

무릇 통곡(痛哭)에도 역시 도(道)가 있다. 대체로 사람의 칠정(七情) 중에서 쉽게 사람의 감정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슬픔 만한 것이 없다. 슬픔이 일어나면  반드시 울음(哭)이 터져 나오기 마련이다.  그러한 슬픔이 일어나는 것 역시 그에 얽힌 사연 또한 복잡하고도 다양하다.

그런 까닭에, 가의(賈誼)는 세상사를 바르게 잡을 방도가 없어 크게 상심하여 통곡했다. 묵자(墨翟, 묵적)는 흰 실이 그 바탕 색을 잃은 것을 크게 슬퍼하여 통곡했다.  양주(楊朱)는 동서로 나뉜 갈림길을 싫어하여 슬피 울었으며, 완적(阮籍)은 가던 길이 가로 막혀 더 이상 갈 수 없음에 크게 울었다. 당구(唐衢)는 좋은 시대를 만나지 못하고 자신의 운명이 불우함을 슬퍼하여 스스로 자신을 세상 밖으로 내치고는, 크게 소리내어 울어 자신의 정과 뜻을 세상에 드러내었다.

이 분들은 모두 마음속에 품은, 깊은 생각이 있어서 울었을 뿐이다. 하찮은 일로 인하여 구차스럽게 통곡하지 않았다. 한갓 이별에 상심하거나 사사로운 마음에 굴욕과 원망의 한을 가슴에 품고서 제 감정에 겨워 우는 아녀자의 통곡을 흉내낸 사람들이 아니다.

오늘 날의 시대는 그 분들이 통곡하던 시대에 비교하면 더 말세다.  나라의 정치는 날로 그릇되어 가고, 선비들의 행실도 허위와 가식에 빠지고 그 정(情) 또한 날로 야박해져서 친구들 사이에도 사리사욕때문에 배신하며 대적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니, 갈림길이  나뉜 것보다 더 심하다. 어진 선비들이 수모를 당하고 고생을 겪는 상황도 비단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막다른 길에 봉착한 것 보다 더 심하다. 이러니 생각이 깨인 사람들이라면 누군들 이 혼탁한 인간 세상을 피해 숨어 살 생각을 하지 않겠는가.

만약 앞서 통곡하신 저 몇 분의 옛 군자들로 하여금 이 시대를 직접 목격하게 한다면, 그 분들은 어떤 생각을 하실지 모르겠다. 아마도 통곡할 겨를도 없이, 그 분들 모두 팽함(彭咸)이나 굴원(屈原)처럼 돌을 끌어안거나 모래를 품고서 물에 투신하지 않을까 생각한다.(이하생략)(※옮긴이 참조: 번역문을 나름 이해하는 글로 다시 윤문하였다)

-허균(許筠,1569~1618), '통곡헌기(慟哭軒記)',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 제7권/ 문부(文部) 4 /기(記)-

▲원글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김명호 (역) ┃ 1983

"사람들은 단지 칠정 가운데서 오직 슬퍼야 울음이 나오는 줄 알 뿐 칠정이 모두 울게 할 수 있는 줄은 모른다. 기쁨이 지극하면 울 수가 있고, 분노가 사무쳐도 울 수가 있다. 즐거움이 넘쳐도 울 수가 있고, 사랑함이 지극해도 울 수가 있다. 미워함이 극에 달해도 울 수가 있고, 욕심이 가득해도 울 수가 있다. 가슴 속에 답답한 것을 풀어버림은 소리보다 더 빠른 것이 없거니와, 울음은 천지에 있어서 우레와 천둥에 견줄만 하다 하겠다. 지극한 정이 펼쳐지는 바인지라 펼쳐 보면 능히 이치에 합당하게 되니, 웃음과 더불어 무엇이 다르리오? 사람의 정이란 것이 일찍이 이러한 지극한 경지는 겪어보지 못하고서, 교묘히 칠정을 늘어놓고는 슬픔에다 울음을 안배하였다. 그래서 죽어 초상을 치를 때나 비로소 억지로 목청을 쥐어짜 ‘아이고’ 등의 말을 부르짖곤 한다. 그러나 진정으로 칠정이 느끼는 바 지극하고 참된 소리는 참고 눌러 하늘과 땅 사이에 쌓이고 막혀서 감히 펼치지 못하고 만다. 저 가생(賈生, 가의)이란 자는 그 울 곳을 얻지 못해 참고 참다 견디지 못해 갑자기 선실(宣室, 황제의 집무실)을 향하여 큰 소리로 길게 외치니, 어찌 사람들이 놀라 괴이히 여기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박지원, '호곡장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