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 /안씨가훈

[고전산문] 글을 쓰는 일 / 안씨가훈

優拙堂 2018. 9. 29. 18:39

심약(沈約)이 말했다. “문장은 마땅히 삼이(三易, 쉬운 것 세가지)의 원칙을 따라야 한다. 첫째는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易見事), 둘째는 글자를 쉽게 알아볼 수 있어야 하며(易識字), 셋째는 낭독을 쉽게 할 수 있어야(易讀誦) 한다.”(※옮긴이 주: 독통(讀誦)은 그냥 단순한 읽기가 아니라, 소리내어 읽음으로써 외우는 것을 의미한다.)

글을 쓰는 일은 사람이 준마(駿馬)를 타는 것과 같아서, 준마가 비록 빼어난 기상이 있다 해도 재갈과 고삐로 제어해야지, 함부로 날뛰어 발자취를 어지럽히고 멋대로 구덩이에 빠지게 해서는 안 된다.

문장(文章)은 마땅히 이치를 핵심이 되는 심장이나 콩팥으로 삼고, 기운(氣韻, 문채에 담긴 기운과 정취)과 재주를 뼈와 근육으로 삼고, 내용을 이루는 소재를 피부로 삼으며, 화려한 수사(修辭)를 관(冠)으로 삼아야 한다. 오늘날 너나 할 것 없이 말단을 좇고 근본을 내버리면서 다들 실속없이 겉만 아름답다. 수사와 이치가 다투면 수사가 이겨서 이치는 숨어버리고, 내용을 이루는 소재들이 작가의 재기(才氣)와 다투면 내용은 번잡해지고 재기(才氣)는 손상을 입는다.

멋대로 쓰는 이들은 방탕으로 흘러 돌아올 줄을 모르고, 용사(用事, 인용하는 것)에 천착하는 이들은 이것저것 덧대어 꿰매고서도 만족하지 않는다. 시속(時俗)이 이와 같으니 어떻게 혼자 거스를 수 있겠는가? 다만 지나치고 심한 것만이라도 없애려고 애쓸 뿐이다. 반드시 문장(文章)의 체재를 개혁할 뛰어난 재주와 명망을 지닌 이가 나오는 것이, 실로 내가 바라는 바이다.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 것이 백이(伯夷)와 숙제(叔齊)의 절개였고, 누구를 섬긴들 임금이 아니겠느냐고 한 것이 이윤(伊尹)과 기자(箕子)의 뜻이었다. 춘추시대 이래로 망해 달아난 집안도 있었고 멸망한 나라도 있었으니, 군신(君臣) 관계가 반드시 일정하고 변함없는 관계인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군자는 사귀다가 절교를 했어도 뒷소리가 없는 법, 일단 무릎을 굽히고 남을 섬기게 되었다면 어찌 상대의 존망에 따라 생각을 바꾸겠는가?

진림(陳琳)은 원소(袁紹) 밑에서 글을 쓰면서는 조조(曹操)를 일컬어 승냥이라고 해놓고, 조조(曹操)의 위(魏)나라에서 격문(檄文)을 쓰면서는 원소(袁紹)를 지목하여 독사라 하였다. 그 당시 임금의 명령이라 마음대로 할 수는 없었겠지만, 역시 문인들의 큰 걱정거리이니 마땅히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

예로부터 붓을 잡고 글 쓴 사람들을 어찌 이루 다 말할 수 있을까마는, 뛰어나고 멋진 작품은 수십 편에 불과할 따름이다. 다만 기본적인 글의 형식에 어긋나지 않고 내용이 볼 만하다면 재주 있는 문사(文士)라 할 만하다. 시속(時俗)을 흔들고 세상을 뒤덮을 만한 글이 나오려면 아무래도 황하(黃河)가 맑아지기를 기다려야 하리라!

-안씨가훈(顔氏家訓)* 제9편 文章 부분 발췌-

▲번역문출처:
동양고전종합DB

※옮긴이 주: 안씨가훈(顔氏家訓)은 중국 6조시대(六朝時代, 3~6세기 말)의 학자인 안지추(顔之推)의 저서로 총 20편이다. 안지추는 서문에서, "내가 이제 다시금 이런 책을 짓는 까닭은 감히 사물에 법도(法度)를 세우고 세상에 모범(模範)을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집안을 바로잡고 자손을 이끌고 타이르는 일을 하기 위해서이다."라고 이 책의 저술 목적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