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성호 이익

[고전산문] 배움(學)의 두 측면 / 이익

優拙堂 2018. 9. 29. 18:47

별지를 받고서 질문의 깊이와 득실을 따지지 않고 자세히 그 내용을 살펴보았더니 생각의 치밀함에 감탄하였습니다. 내 생각을 말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학(學)’이란 본받는다〔效〕는 의미입니다. 저 사람에게 아는 것이 많아서 내가 쫓아가 그의 지식을 본받는 것은 마음의 측면에서 ‘학(學)’을 말한 것입니다. 저 사람에게 터득한 것이 많아서 내가 쫓아가 그의 행동을 본받는 것은 몸의 측면에서 ‘학(學)’을 말한 것입니다. 바야흐로 어떤 일을 본받을 때는 반드시 마음의 힘〔心力〕에 의존하게 되는데, 이것 또한 ‘행(行)’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독서(讀書)를 예로 들면, 책 속에 이미 그 의미를 전술(傳述)해 놓았으므로 이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해 보는 것은 마음의 ‘습(習)’이요, 의미를 이해한 다음에 끊임없이 체험해 보는 것은 몸의 ‘습(習)’이니, ‘학’은 이 두 가지를 모두 포괄합니다. 주자(朱子)의 이른바 “지식의 학습과 행동의 학습”이란 것이 바로 이것에 해당합니다. 다만 ‘학’과 ‘행’의 의미를 마주 놓고 비교해 보면 약간의 차이가 있는데, 이것이야말로 유추해서 말한 것이니, 그 요지만 잘 파악하면 나머지는 저절로 알 수 있습니다.

본받고도 깨닫지 않는다면 ‘후각(後覺, 나중에 깨달음)’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깨달음에는 깊이의 차이가 있고 본받음에는 순서의 차이가 있으므로 “뒤에 깨달은 사람은 반드시 앞에 깨닫는 사람의 행동을 본받아야 한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바깥으로 발산되는(發散在外)” 즐거움은 일상생활에서 잘 느낄 수 없습니다. ‘열(悅)’은 “추환(가축의 고기)이 입을 기쁘게 한다.(芻豢悅口)*”라고 할 때의 ‘열’과 같으니 매우 좋아하는 것이며, 마음속에 얻어서 심광체반(心廣體胖, 마음이 넉넉히 너그러워지면 몸에 살이 오르고 편안해진다는 뜻, 즉 부끄러움이 없는 떳떳하고 당당한 상태)*의 경지에 이른다면 즐거움〔樂〕이 저절로 일어날 것입니다. 맛있는 음식에다 비유하자면, 기뻐하면 좋아하게 되고 즐거우면 배불리 먹게 되는 이치와 같습니다. 정자(程子)의 말씀은 단지 다른 사람들과 즐거움을 함께한다는 뜻에 지나지 않습니다. 공자(孔子)가 “덕이 있는 사람은 외롭지 않으니 반드시 이웃이 있다.〔德不孤 必有隣〕”라고 하였는데, 마땅히 벗이 멀리서 찾아오는 것과 비교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남이 알아주지 않는 것〔人不知〕”은 알아주지 않는 쪽의 입장에서 말한 것으로서, 설사 벗들이 찾아왔다 하더라도 그 속에는 반드시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나는 예전부터 생각하기를 ‘온(慍)’ 자는 노여워한다는 뜻이므로 이른바 ‘알아주지 않는다〔不知〕’는 말을 나의 뛰어난 능력을 알아주지 않는다는 의미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보았습니다. 남이 알아주지 않는 것에 대하여 노여워하는 마음을 갖지 않는 정도만 가지고는 덕(德)을 완전히 갖춘 군자라고 말할 수는 없을 듯합니다. 이 정도는 중간 수준 이상의 사람이면 어느 정도 실천할 수가 있습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정자(程子)는 “남들로부터 옳다고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근심하지 않는다.〔不見是而無憫〕*”라는 말을 인용하였는데, 여기서 ‘민(憫)’ 자는 ‘온(慍)’ 자와 서로 다른 뜻이 아닌가 생각되며, ‘시(是)’ 자는 ‘비(非)’ 자의 반대 개념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입니다. “남들로부터 옳다고 인정받지 못했다.〔不見是〕”라는 말 속에는 틀림없이 잘못했다는 실제 비난이 있었다는 것이며, 그런 상황에서도 노여워하는 마음을 품지 않은 것입니다. 이는 이른바 “남이 자신에게 잘못을 범하여도 따지지 않는 것〔犯而不校〕*”에 해당되는 말이지 유유히 자신의 도를 실천하면서 상대방을 의식하지 않고 지내는 것을 가리켜 말한 것이 아닙니다.

무본장(務本章)*에 나오는 ‘위인(爲仁)’은 실천의 측면에서 말한 것이고 교언장(巧言章)*에 나오는 ‘선인(鮮仁)’은 이치와 실천의 측면을 아울러 말한 것입니다. ‘진기(盡己)*’라는 말은 나의 본분에 최선을 다하여 어떤 일에 응하는 것입니다. ‘이실(以實)’이란 말은 이른바 “있는 그대로 고한다.”라는 말과 같으니, 흰색을 희다 하고 검은색을 검다고 하여 그 대상에 따라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입니다.(이하생략)

[역자 주]
1. 추환이 입을 기쁘게 한다〔芻豢悅口〕 : 추환은 소나 양, 개, 돼지와 같은 가축의 고기를 말한다. 《맹자》 〈고자 상(告子上)〉에서 “의리(義理)가 내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이 마치 추환이 내 입을 기쁘게 하는 것과 같다.[義理之悅我心 猶芻豢之悅我口]”라고 하였다.
2. 심광체반(心廣體胖) : 마음이 느긋해지고 어깨가 펴진다는 뜻으로, 마음속에 부끄러울 것이 없는 당당한 군자의 모습을 표현한 말이다. 《大學章句 傳6章》
3. 남들로부터 옳다고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근심하지 않는다〔不見是而無憫〕 : 이 말은 《주역(周易)》 〈건괘(乾卦) 문언(文言)〉에 나오는 내용으로 그 전문은 다음과 같다. “초구에서 ‘잠겨 있는 용이니 쓰지 말라.’라고 한 것은 무슨 말인가? 공자(孔子)가 말하기를 ‘이는 용(龍)의 덕을 가지고 은둔한 자로서 세상에 따라 변하지도 않으며 명성을 이루려고도 하지 않아, 세상에 은둔하되 근심하지 않으며, 남들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여도 근심하지 않는다. 좋은 세상을 만나면 도(道)를 행하고 좋지 않은 세상을 만나면 은둔하여 자신의 뜻을 확고히 지키는 것이 잠겨 있는 용(龍)이다.’라고 하였다.[初九曰 潛龍勿用 何謂也 子曰 龍德而隱者也 不易乎世 不成乎名 遯世无悶 不見是而无悶 樂則行之 憂則違之 確乎其不可拔 潛龍也]”
4. 남이 자신에게 잘못을 범하여도 따지지 않는 것〔犯而不校〕 : 증자(曾子)가 일찍이 이미 죽은 안회(顔回)를 회상하며 말하기를 “유능하면서도 무능한 이에게 묻고, 많이 알면서도 조금 아는 이에게 물으며, 있어도 없는 것처럼 하고, 꽉 차 있어도 텅 빈 것처럼 하며, 누가 자신에게 잘못을 범하여도 따지지 않던 것을, 옛날 나의 친구가 일찍이 여기에 종사했었다.[以能問於不能 以多問於寡 有若無 實若虛 犯而不校 昔者吾友嘗從事於斯矣]” 하였다. 《論語 太伯》
5. 무본장(務本章) : 《논어》 〈학이〉에 수록되어 있으며 그 전문은 다음과 같다. “유자가 말하기를 ‘그 사람됨이 효도하고 공경하면서 윗사람에게 대들기를 좋아하는 자는 드물며, 윗사람에게 대들기를 좋아하지 않으면서 난을 일으키기 좋아하는 자는 있지 않다. 군자는 근본에 힘을 쓴다. 근본이 서야 도가 생겨나는 법이니, 효도와 공경은 아마도 인을 행하는 근본일 것이다.’라고 하였다.[有子曰 其爲人也孝弟而好犯上者鮮矣 不好犯上而好作亂者未之有也 君子務本 本立而道生 孝弟也者 其爲仁之本與]”
6. 교언장(巧言章) : 《논어》 〈학이〉의 “말을 번드르르하게 하고 얼굴빛을 좋게 꾸미는 사람치고 어진 사람이 드물다.[巧言令色 鮮矣仁]”를 가리킨다.
7. 진기(盡己) : 이 단락은 《논어》 〈학이〉의 “증자가 말하기를 ‘나는 매일 세 가지로 내 몸을 반성한다. 남을 위해 일을 하면서 최선을 다하지 않았는가? 벗들과 사귀면서 진실하게 대하지 않았는가? 스승에게 배운 것을 익히지 않았는가?’라고 하였다.[曾子曰 吾日三省吾身 爲人謀而不忠乎 與朋友交而不信乎 傳不習乎]”에 대한 주희의 집주(集註)에서 ‘충(忠)’ 자를 ‘진기(盡己)’, 즉 자신의 최선을 다한다는 의미로 해석하고, ‘신(信)’ 자를 ‘이실(以實)’, 즉 있는 그대로 진실하게 대한다는 의미로 해석한 것에 대해 말한 것이다.


-이익(李瀷, 1681~1763), '우대래에게 답하는 별지 계유년(1753, 영조29)〔答禹大來別紙 癸酉〕', 『성호전집 제31권 / 서(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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