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성호 이익

[고전산문] 심은대로 거두기 마련이다 / 이익

優拙堂 2018. 9. 29. 18:49

(...)요즘 어떤 경전(經典)을 읽고 있습니까? 지난번 그대에게 《주자대전(朱子大全)》에 전적으로 매달리지 말라고 권고를 했는데 얼마 후 그렇게 말한 것을 다시 후회했습니다. 주자서(朱子書)를 읽는 것 역시 유보해서는 안 됩니다. 다만 성인의 경전은 읽지 않고 지엽적인 책만 보면서 근본적인 것을 놓치고 있는 시속(時俗)을 염려한 것입니다.

지금의 《주자서절요(朱子書節要)》는 매우 훌륭한 책입니다. 그 밖에도 《주문작해(朱文酌海)》와 《절작통편(節酌通編)》이 있어 빠진 내용을 매우 많이 보충하여 거의 물 샐 틈이 없을 정도로 내용을 잘 갖추고 있으므로 굳이 주자의 문집(文集) 전체를 다 읽어서 남을 이겨 보려고 하는 것은 너무 지나친 일입니다. 온 마음을 다해 시속의 요구에 부응하고 지식 자랑으로 남들에게 군림하려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너무 멀리 나간 유기(遊騎, 유격대 기병의 줄임말)*가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하는 꼴이 될 것입니다.

인간이 가진 총명과 역량은 마치 되(升)와 말(斗)에 표준 용량이 있는 것처럼 원래부터 정해진 양이 있다고 나는 사람들에게 늘 말해 왔습니다. 만약 말 속에 먼저 진흙이 한 되 들어가 있으면 쌀이 들어갈 자리는 아홉 되를 넘지 못하고, 진흙이 아홉 되 들어가면 쌀은 반드시 한 되 밖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군자는 반드시 심신(心神)을 아껴서 사용하였으며, 한 푼이라도 이를 낭비하여 혹 원대한 뜻을 실현하는 데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 늘 염려하였던 것입니다.

나의 경험으로는 어릴 적에 즐겁게 놀던 사소한 일들이 우연히 마음속에 자리를 잡게 되면 이것이 일생 동안 잊히지 않고 도리어 다른 일들만 모두 달아나 버리곤 하는데, 이 일을 지워 버리고 다른 생각을 하려고 아무리 노력해 보아도 그리되지 않습니다. 이를 두고 콩 심은 곳에 콩 나고 팥 심은 곳에 팥 난다고 하는 것이니 어찌 두렵지 않겠습니까. 이 세상이 생겨난 지가 오래되어 경전(經典)들이 많이 남아 있고 게다가 주 선생(朱先生)이 이들 경전에 집주(集註)를 거의 다 해 놓았거늘, 학문의 초기 단계부터 어찌 《주자대전》에만 온 힘을 집중한단 말입니까. 이러한 나의 의견에 대해 그대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앞 편지에서 《시경(詩經)》ㆍ《서경(書經)》ㆍ《논어(論語)》ㆍ《맹자(孟子)》를 강조한 것은 다름 아닌 옛 경전을 학습하라는 말입니다. 옛글을 읽다 보면 ‘시에 이르기를〔詩云〕’ 또는 ‘서에 이르기를〔書云〕’이라는 말이 반드시 등장하는 것을 매번 보게 되는데, 이것은 그 책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믿고 따르게 하는 효과를 발휘합니다. 과거의 역사서들을 두루 살펴보았더니 《전한서(前漢書)》와 《후한서(後漢書)》에는 그러한 경향을 여전히 보이고 있으나 《진서(晉書)》와 《당서(唐書)》에 이르러 점점 드물게 나타나더니 그 뒤의 역사서에는 거의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는 말하는 사람들도 경전을 싫어하고 듣는 사람들 또한 경전을 신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당시의 풍토가 퇴락하고 세도(世道)가 회복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공자(孔子)는 시를 배우면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말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말할 때 시를 인용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의 경우에는 나이가 젊고 정력이 왕성할 때 민간에 전하는 야사류(野史類)의 책들에 미쳐 지냈습니다. 머리가 다 세고 죽을 나이가 되어 그제야 일찍부터 경전 공부에 매달리지 않은 것을 후회하였으나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논어》의 경우 그 내용이 매우 좋습니다. 책 첫머리의 첫 번째 주제는 ‘배움〔學〕’에 대한 것입니다. 배움이란 다른 사람에게 가르침을 받는 것입니다. 사람이 ‘생지(生知)’, 즉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것이 아닌 이상 반드시 배움에 의존해야 합니다. 가르침과 배움이 있는 곳에는 사도(師道)가 존재합니다. 대개 가르쳐 주어도 배우지 않는 경우는 있어도 배우려는데 가르치지 않는 경우는 없습니다. 이것이 세상의 첫 번째 이치입니다. 때문에 예로부터 통치를 논할 때는 언제나 이것을 최우선으로 삼았습니다.

그 다음은 ‘벗을 사귀는 도리〔友道〕’입니다. 지식을 배우고 익힌 뒤에는 배고픈 사람이 밥을 찾고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듯 벗들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부족함을 보완하되, 행여 배운 것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할까 걱정합니다. 때문에 벗들과 함께 토론하여 그 의미를 밝혀내면 이른바 “배운 지식이 나의 것이 되고〔所學在我〕”, 이에 따라 행동하면 실제 몸으로 체득하게 됩니다. 실제로 체득한 학문에 대해서는 어떠한 외부의 평가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남이 알아주어도 태연하고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태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내지 아니한다.〔不慍〕’라고 함은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마음속에 성내는 마음이 싹트지 않는 것을 말하며, 이 경지에 이르면 덕(德)을 완성한 사람이라 일컫습니다. 이러한 사람에게서 우리는 학문(學問)의 절실함과 사변(思辨)의 분명함 그리고 내행(內行)의 독실함을 볼 수 있습니다. 한 권의 《논어》를 이러한 방식으로 읽어 나가면 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그와 반대로 가르치기도 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궐당(闕黨)의 동자(童子)*가 처음 공자의 문하에 들어왔을 때, 그가 윗사람에 대한 존경심도 없고 학문과 사변을 할 줄도 모르면서 버릇없이 방 한가운데 앉아 있거나 윗사람과 나란히 걷는 등 학문에 도움을 받으려는 생각을 전혀 보이지 않았으므로 공자가 그에게 먼저 명령을 전달하는 예법을 가르침으로써 이러한 태도를 억누른 것입니다.

그리고 《맹자》 수장(首章)의 경우 필부(匹夫)의 자격으로 존귀한 만승(萬乘)의 군주를 만났는데 군주의 첫마디 말에서 원로를 공경하여 가르침을 청하였고 맹자(孟子) 또한 존경의 예모(禮貌)를 갖추었습니다. 당시는 진(秦)나라의 분서갱유(焚書坑儒)를 겪지 않았으므로 아직까지 우신(友臣, 덕있는 신하를 벗으로 대함)과 상현(尙賢, 어진이를 존경으로 대함)의 미풍이 남아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선비들은 자부심이 강했고 군주들은 자신의 권력을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이를 통해 미루어 나가면 나머지도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그대가 처음 나의 문하에 들어왔을 때 공손하게 예의를 갖추고 조리 있게 말을 하여 앞으로 진보가 있을 것이라는 것을 이미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의 수준을 돌아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내 생각을 말해 준 것이니, 부디 더욱더 노력하고 부단히 진보하여 세상의 습속에 휩쓸리지 말기 바랍니다.

보내온 편지에서 자신에 대해 “경솔하고 천박하다.〔輕躁浮淺〕”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는 단지 젊은 나이에 기운이 뻗치고 생각이 지나쳐서 사소한 기분도 조절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무릇 배운 것이 완전히 익지 않으면 누구나 이 정도의 문제는 가지고 있습니다. 이미 이 점을 알고 있으니, 그것을 없애는 것 또한 무엇이 어렵겠습니까.

옛 성현의 말씀에 “병통이 있음을 알아서 제거하고자 한다면 단지 제거하고자 하는 그 마음이 바로 병통을 제거하는 약이 된다.”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그대에게 무슨 병통이 있는지 분명하게 인식하기 바랍니다. 비유컨대 그대의 몸에 지저분한 점(點) 하나가 있다고 합시다. 그대가 이 점을 없애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어찌 평생토록 이것을 그대로 놓아둘 리가 있겠습니까. 단지 염려스런 점이 있다면 주변에서 검은 피부를 가진 사람들을 자주 보다 보니 이 정도의 지저분한 점이야 문제될 것이 없다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학문을 성취하지 못하는 것은 필시 ‘그쯤이야 문제될 것이 없다.〔也不妨〕’라는 생각이 일을 그르치기 때문입니다.

이는 마음가짐이 혹 중후하지 못한 데에서 비롯되기도 합니다. 공자가 이르기를 “중후하지 않으면 위엄이 서지 않아 배운 것이 견고해지지 않는다.〔不重則不威 學則不固〕”라고 하였으니, 병통을 제거하는 약을 성인이 이미 다 말씀해 놓았습니다. ‘충신(忠信)’ 즉 최선을 다하는 자세와 진실하게 임하는 자세는 그 가운데 가장 적합한 약제입니다. 혹 최선을 다하지도 않고 진실하게 임하지도 않았는데 어느새 제거되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이는 의도적으로 제거하지 않아도 저절로 없어지는 병통들입니다.

이른바 “자기와 같지 않은 사람을 벗하지 말라.〔無友不如己者〕”라고 하는 말은 나와 뜻이 같지 않은 사람을 벗하지 말라는 것이지 학문이 나보다 못한 사람을 벗하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나와 뜻이 같지 않으면 틀림없이 나를 그르치게 하여 배운 것이 견고해지지 않습니다. 앞에서 말한 “신중히 처신하여 시속에 물든 선비들과 어울려 다니지 말라.〔愼無從俗士遊〕”라고 한 것이 바로 이 말입니다. 말을 가려서 할 줄 몰라 너무 길어지고 말았으나 그대가 내 뜻을 이해하여 탓하지는 않으리라 믿습니다.

※[역자 주]
 1. 유기(遊騎): 유기는 정규전이 아닌 불규칙적으로 출몰하며 전투를 벌이는 유격대 기병을 뜻한다. 《사서혹문(四書或問)》에 “치지(致知)의 요체는 마땅히 지선(至善)이 있는 바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인자한 데에 그치고, 아들은 효도에 그쳐야 하는 따위와 같다. 만일 여기에 힘쓰지 않고 부질없이 범범하게 만물의 이치를 살피고자 한다면, 마치 대군의 유기(遊騎)가 너무 멀리 나가서 돌아오지 못하는 것처럼 될까 우려된다.[致知之要 當知至善之所在 如父止於慈 子止於孝之類 若不務此 而徒欲汎然以觀萬物之理 則吾恐其如大軍之遊騎 出太遠而無所歸也]”라고 하였다. 여기에서는 이지승이 주자서(朱子書)에 너무 깊이 빠져서 기본 경전의 공부를 소홀히 하는 것을 경계한 말이다.
2. 시를 배우면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말할 수 있다 : 《논어(論語)》 〈계씨(季氏)〉에, 공자가 아들 백어(伯魚)에게 시를 배웠느냐고 물으면서 “시를 배우지 않으면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말할 수 없다.[不學詩 無以言]”라고 하였다.(※옮긴이 주: 논어 양화편에는, 공자가 아들 백어에게 묻기를, "너는 시경(詩經)의 주남과 소남을 공부했느냐. 사람으로서 주남과 소남을 공부하지 않는 것은 마치 담장에 얼굴을 맞대고 서 있는 것과 같다.(女爲周南召南矣乎 人而不爲周南召南 其猶正牆面而立也與)"라고 하였다)
3. 궐당(闕黨)의 동자(童子) : 《논어》 〈헌문(憲問)〉에 “궐당의 동자가 공자의 명령을 전달하는 일을 맡아보자 어떤 이가 ‘학문이 진전이 있어서 맡긴 것입니까?’라고 묻자 공자가 ‘나는 그가 방 한가운데 앉아 있는 것을 보았고 어른들과 나란히 걸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그는 학문의 진전을 구하는 자가 아니라 자신의 목적을 빨리 이루려는 사람이다.’라고 하였다.[闕黨童子將命 或問之曰 益者與 子曰 吾見其居於位也 見其與先生竝行也 非求益者也 欲速成者也]”라는 말이 나온다. 여기에서 궐당은 공자의 고향 궐리(闕里)를 가리킨다.

-이익(李瀷, 1681~1763), '-이익(李瀷, 1681~1763), '이경조 지승 에게 주는 편지 신사년(1761, 영조37) 〔與李景祖 祉承 辛巳〕', 『성호전집 제31권 / 서(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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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고전번역원 | 최재기 (역) |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