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혜강 최한기

[고전산문] 섬김의 세 등급 / 최한기

優拙堂 2018. 9. 29. 18:52

재물로 남을 섬기는 것은 하등(下等)이요, 일로 남을 섬기는 것은 중등(中等)이요, 도리로 남을 섬기는 것은 상등(上等)이니, 남 섬기는 것을 보아서 그 사람됨을 볼 수 있다. 남을 섬기는 것은 결국 남을 위해서 섬기는 것이 아니고 실은 자기를 위해서 남을 섬기게 되는 것이다. 먼저 노력을 들이고 뒤에 성과를 얻는 것은 인도(人道, 사람됨의 도리)의 당연함이요, 겸손과 공손한 태도로써 남에게 굽히는 것은 사세(事勢, 일이 되어가는 상황 혹은 형편)의 순탄한 바이다.

도리로 섬기거나 일로 섬기지 않고 오직 재물로만 남을 섬긴다면 뇌물이 성행하게 되고 사특한 길이 트이게 된다. 남을 섬기는 자는 그 소원을 얻기 위해서요, 섬김을 받는 자는 남에게 매수된 바 되므로, 자기만이 그릇될 뿐 아니라 또한 남으로 하여금 그릇된 길을 걷게 하는 것이니, 이는 하등(下等)으로서의 남을 섬기는 일이다.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일이 있게 마련이요, 일이 있으면 반드시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혹은 재예(才藝, 재능과 기술)로든 혹은 사무력으로든 혹은 노동력으로든 그 장점을 가지고 남을 섬기는 것은 중등인으로서의 남을 섬기는 일이다.

아들이 아버지를 섬긴다거나 신하가 임금을 섬긴다거나 제자가 스승을 섬긴다거나 그 밖의 일체 사무에 있어서 인도(人道, 사람됨의 도리)로 남을 섬기면, 자기만이 인도(人道)를 하는 것이 아니라, 또한 남으로 하여금 인도(人道)를 즐기게 하는 것이니, 이는 상등인으로서의 남을 섬기는 일이다.

그 나머지 비도(非道, 이치에서 아예 도리가 아닌 것)ㆍ외도(外道, 윤리 도덕 등에서 어긋나는 도리)ㆍ사도(邪道, 악한 결과로 이끄는 바르지 못한 도리)ㆍ패도(悖道, 사람의 마음을 미혹시키고 혼란 스럽게 만드는 그릇되고 헛된 도리)는 이름은 비록 도(道)이지만 이것으로 남을 섬기면 자기를 그릇칠 뿐 아니라, 또한 남을 그릇치게 하는 것이다.

-최한기(崔漢綺 1803~1877), 『인정(仁政) 제4권 / 측인문 4(測人門四) - 행사(行事)-

▲원글출처:ⓒ 한국고전번역원 | 이전문 (역) | 19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