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산문, 에세이

[에세이] 이상적인 글쓰기 / 벤 야고다

優拙堂 2018. 9. 29. 18:58

글쓰기에서 가장 유명한 세 가지 좌우명이 있다.  그중 하나는 "Kill your darlings"다. 이 문장은 일반적으로 작가 윌리엄 포크너(William Faulkner)와 여러 다른 작가들에 의해 알려졌다. 이러한 감상(感想)은, 원래 20세기 초반 작가 아서 퀘일러 코치(Sir Arthur Quiller-Couch)가 쓴 글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아주 뛰어나게 훌륭한 글을 쓰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마다, 전심전력을 다하여 그 충동에 복종해라. 그리고 원고를 보내기 전에 그러한 충동에 사로잡혀 쓴 문장들을 삭제해 버려라. 'Murder your darlings.'" (※옮긴이 주: 개인적인 취향에서 나오는 충동적인 감정이나 정서를 글에 개입시키지 말라는 의미.)

이 말의 의미는 '죽여라'(kill, murder)는 동사와 상관없다. 글에서 비유를 제거한다거나, 한 문장의 내용을 다른 방향으로 변형한다거나 혹은 재치 있는 표현으로 바꿈으로써, 때때로 글에 담긴 정서와 내용이 개선될 수 있다는 의미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내 경험상, 표현을 멋지게 바꾼 문장들 때문에 글의 내용을 크게 훼손시키는 문제는 그리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두 번째 좌우명은 "Show, don’t tell(말하지 말고 보여주라)"이다. 이 말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 의미가 깊을 뿐만 아니라 내 경험상으로도 마땅히 옳은 말이다. 어떤 장면을 묘사할 경우, 가장 우선해야 할 것은, 독자들이 간접적으로 전해 듣는 것보다는, 바로 그 순간 그 장소에서 독자가 직접 보고 느끼는 것처럼 묘사할 수 있도록 항상 노력해야 한다. 더 일반적으로, 어떤 종류의 논쟁을 할 때 잘 선택되고 잘 구성된 사실들은 의견과 일반화를 뛰어넘는 강한 호소력과 설득력이 있다. 더 나아가, 뜻이 분명하고 명확한 명사와 동사는 좋은 글쓰기의 주요 원동력이며, 부사와 형용사는 문장을 고상하게 만드는 보조 역할을 한다.

세 번째는 "Write what you know.(아는 것을 쓰라)"이다. 이 좌우명은 약간 더 복잡하다. 내가 "Write what you know."라고 강조하면, 이 말을 1학년 교사들은 1학년 교사로 사는 것에 대해서만 써야 한다고 해석한다거나,  브루클린에 사는 단편 소설 작가들은 브루클린에서 살아가는 그들의 단편적인 이야기들에 대해서만 써야 하는 것으로 이해할 때 문제가 발생한다. 그러한 생각은 모든 것을 자기중심적인 사고로 이해하는 '문학적 유아론'을 이끈다는 비난을 받는다. 실제로, 수많은 단편 소설, 소설, 수필, 회고록 전시회 같은 것들이 이에 해당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좌우명은 참된 것이다. 특정 주제에 경험이 많고 익숙한 작가들은, 그 주제와 관련한 더 많은 지식과 정보가 있기 마련이고, 익숙한 주제의 글쓰기에 더욱 자신감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 결과로 더 강력한 결실을 맺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만약  조(Joe)라는 평범한 작가가 있다고 가정하자.  그는 주로 비디오 게임에 관한 주제로 글을 쓴다. 그는 비디오 게임 분야에 종사하면서 직접 경험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쓰는 글의 주제에 관해 아주 세세하게 알고 있다. 한편으로 바다에 관련된 어떤 분야에서 뛰어난 작가로 알려진 제인(Jane)이 있다. 그녀는 지금 자기가 잘 아는 분야가 아닌 지구 온난화의 타당성에 관한 글을 쓴다. 

(Joe)의 에세이는 직접 경험한 사실에 입각하여 글을 쓰기 때문에, 날이  갈수록 점점 더 글이 좋아질 것이다. 내용이 구체적이고, 사실의 표현에서 빈틈없이 정확하며, 그리고 종종 사실과 내용에 어울리는 재치 있는 표현을 할 것이다. 반면에 제인은 수동적인 목소리와 추상적인 어휘를 사용하여, 뭔가를 숨기는 듯한 어렵거나 애매모호한 글을 쓸 것이다. 제인이 구체적이고 명확한 글을 쓰지 않고, 수박 겉핥기 식으로 주제의 주변을 맴도는 글을 쓰는 이유는, 자신이 잘 모른다는 사실을 무의식적으로 감추려 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제인의 글을 읽는 독자는, 당연히 피곤하고 힘들어한다.


자신이 정통한 분야를 주제로 글을 쓰는 유명 작가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통계학자·분석 전문가로 뉴욕타임즈의 저널리스트인 네이트 실버(Nate Silver), 야구 작가이자 통계학자인 빌 제임스(Bill James), 영화평론가·작가인 데이비드 톰슨(David Thomson), TV 프로그램에 관해 글을 쓰는 작가 에밀리 너스바움(Emily Nussbaum) 등이다. 이들은 모두 자신의 분야에 일가견이 있고, 자신이 정통한 분야와 관련된 주제로 글을 쓴다. 이 저널리스트들은 글의 마지막 문장에 마침표를 찍을 때까지 글의 주도권을 놓치지 않는다.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글의 소재를 풀어내는 그들의 생각이 아주 설득력이 있기 때문에, 마땅히 기쁜 마음으로 그들의 의견에 이끌린다.


나는 앞서 소개한 유명 작가들의 사례와 그 외에 수백 명의 다른 작가들로부터 영감을 받아서,  세 번째 좌우명을
"Write what you wonk."(당신이 원하는 것을 쓰라)라고 다시 고쳐 쓴다. 하지만 이 좌우명은 완벽하지 않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쓴다는 사실은, 결과적으로 그 내용이 한 사람의 열정에 제한되어 있다는 것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주어진 주제에 대해 열정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기 마련이다. 이러한 사실은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들을 산문의 세계에 무작정 격리시킬 수는 없는 일이다. 

다행히도, 이 난감한 문제에는 탈출구가 있다. 당신은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서 실제로 다양하거나 혹은 특정한 지식을 습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널리즘에서는 이것을 "보도(reporting)"라고 부르고, 논픽션에서는 "연구(reserch)"라고 한다. 나는 비록 소설을 쓰지는 않지만, 관찰, 심사숙고한 반영, 연출된 상상력의 엄격한 조합이 비슷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 생각한다. 어떤 경우든, 그 주제에 대해 자신감과 나름 확신하는 권위를 가지고 글을 쓸 수 있을 때까지 그 주제를 조사하고 자료를 수집하는 것이 중요하다. 연재 글의 전문가가 된다는 것은, 사실 진취적으로 글 쓰는 직업에서 멋진 일들 중의 하나다. 당신이, 미처 모르거나 관심이나 열정이 없는 지식이나 주제는 자료를 수집하고 조사하여 배우면 해결된다.  그리고 활용한 후에 그것들로부터 미련 없이 떠나면 된다.


따라서 철자를 달리하여 다음에 나올 좌우명은 다음과 같다.
"Write what you own, K?(당신이 가진 것을 쓰시오, K?)"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가야 할 길이 멀다. 어떤 사람들이 그들이 알고 있는 것에 대해 쓰거나, 관심 있는 원하는 것을 쓰거나, 혹은 자신들이 소유한 것에 대해 쓸 때, 결과가 그리 썩 좋지 않다는 사실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빌 제임스라는 야구 전문가의 설득력 있는 글과는 대조적으로, 이 사람들은, 은유적 표현으로 말하자면, "내부 야구(inside baseball)"에 해당되는 죄를 종종 짓는다. 이 말의 의미는 '해당 현장에서 이해관계자들끼리만 사용하는 말', 아니 최악의 경우, '작가 자신에게만 의미가 있는 말'이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한정된 사람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일상에서 보편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어휘를 습관적으로 사용한다는 말이다.

그들과 야구 저널리스트 제임스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두 가지다. 어떤 사람들은 정말 운이 좋게도 분명하고 명확한 글을 쉽게 쓸 수 있는 선천적인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거나, 혹은 최소한 그러한 기술을 빠르게 습득하고 자연스럽게 발전시킬 수 있는 소질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렇다면 선천적으로 재능을 타고나지 못한,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글쓰기를 '의사소통으로 이해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양방향 거리'(two-way street)라는 어휘로 사용한다. 이 말은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양측이 동등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훌륭한 번역가처럼 훌륭한 작가들은 그들의 말을 읽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항상 의식한다.


로버트 그레이브스(RobertGraves)와 앨런 호지(AlanHodge)는 그들의 글쓰기 지침을 일컬어, "The Reader over Your Shoulder(당신의 어깨너머에서 지켜보는 독자)"라고 하였다. 이 말은 아주 적절한 비유로, 마치 어떤 작은 남자가 당신의 어깨너머에서, 당신의 글을 보며, 가상의 독자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반응한다는 것을 상상하게 한다. 나는 실제로, 은유적 표현이 마치 얼굴과 얼굴을 직접 대면하는 것처럼 서로의 눈을 마주하는 듯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더 좋아한다. 서투른 번역가들과 서툰 글을 쓰는 작가들은 거리를 두거나 또는 바닥에서 내다보기 때문에, 그들의 말을 듣는 사람들의 얼굴이 얼마나 당황스럽고, 짜증이 나며, 지루한지를 알지 못한다. 훌륭한 작가들은 독자들의 반응을 의식하고 또 반응한다. 그리고 최고의 작가들은 이러한 반응을 예상하고 결과적으로 취약한 부분을 개선함으로써 나쁜 상황을 피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이상적인 글쓰기는, 당신이 생각하고 느끼는 바 그대로, 독자들이 똑같이 따라 하도록 이끄는 글쓰기다. 이는 뛰어난 이야기꾼들의 말을 들을 때, 우리가 우리의 감정을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이야기 속으로 빠져드는 것과 비슷하다. 이러한 이야기를 하는 뛰어난 이야기꾼의 얼굴을 보면, 역설, 빈틈없는 지식, 매서움 등 모든 종류의 태도와 정서 등이 더해져 온갖 감정이 얼굴과 태도에서 풍부하게 드러나고 또 느껴진다.

다시 글쓰기 좌우명으로 돌아가서, 눈을 마주치는 것의 중요성을 반영할 수 있도록  철자를 바꾸는 방식을 갖는 것이 좋을 것이다. 내가 제시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우리는 당신에게 윙크를 한다"(WE THROW A WINK T’ YOU)"는 의도가 분명하게 드러나도록, 자신이 쓴 모든 글들을 다시 고쳐쓰기 하는 것이다.

-벤 야고다(Ben Yagoda, 영문학 교수, 미국 델라웨어 대학, 작가)

▲원문출처: ☞뉴욕타임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