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근본
진실한 기쁨과 진실한 슬픔이 진실한 시를 만든다. 아기는 태어나자마자 우는데, 울기를 그치면 웃는다. 여기에는 어떠한 허위도 없는데, 그 까닭은 아무도 모른다. 이것이 시의 근본이다.
동자가 두세 살이 되어서는, 밥을 많이 주면 웃고, 밥을 적게 주면 운다. 느끼는 대로 기쁨과 슬픔이 일어나는데, 여기에는 반드시 그 이유가 있다. 이것이 시의 기미(幾微, 낌새, 우러나와서 자연스레 드러나는 것)이다. 아이가 성장해서는, 귀인(貴人)에게 아첨하여 환심 사기에 애쓰고, 가깝지 않은 사람에게도 슬픈 척 조문한다. 이것이 시의 허위(虛僞)이다.
천하에는 슬픔이나 기쁨이 없는 사람이 없다. 그러므로 시를 짓지 못할 사람이 없으련만, 오히려 그러한 사람(시를 짓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부형(父兄)과 스승이 그를 올바로 인도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가 거짓된 시를 지을 리가 있겠는가? 아이는 마음으로는 깨달았으나 입으로는 말하지 못하는 것이 있고, 손으로는 썼으나 마음으로는 왜 그런지 알지 못하는 것이 있다. 그것을 부형과 스승에게 질문하여 판단해 주기를 요청하면, 그들은 그 자제가 옛사람과 비슷하지 않게 될 것만을 염려한다.
억지로 옛사람을 모방한다고 해서 옛사람이 되지 않음은 알지 못한다. 그들은 참으로 옛사람을 모르는 자들로, 빼어나고 기발한 글은 지우며, "이것은 요즘 것이고, 옛날 것이 아니다." 라 말하고, 진부하고 화려한 글은 비점(批點 시가나 문장 따위를 비평하여 아주 잘된 곳에 찍는 둥근 점)을 치며 "이것은 옛날 것이고, 요즘 것이 아니다."라 말한다.
아이를 부귀로 유혹하고 가난으로 겁을 주고 나서는 끌어다가 과거(科擧, 관료를 뽑는 시험)문장을 익히게 한다. 그 뒤로 자제들은 저들에게 낮은 평가를 받으면 회초리를 맞은 듯이 여기고, 저들에게 비점을 얻으면 떡이나 꿀을 얻은 듯이 여긴다. 날마다 허위에 빠지니, 시가 결국 슬픔이나 기쁨과는 무관하게 된다.(이하생략)
- 이덕무(李德懋, 1741~1793), '선서재시집서(蘚書齋詩集序)' 부분, 『병세집(幷世集)-윤광심(尹光心, 1751~1817)』/文卷之二-
▲번역글출처: 수능평가원(2004년)